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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마 Apr 07. 2020

요구르트와 아가씨


“호떡 하나 먹고 갈까요?”

   

겨울 어느 저녁 무렵. 비가 부슬부슬 오고 있었다. 저녁으로 아들과 돼지국밥을 먹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입이 궁금했던 아들과 함께 들어간 호떡가게에는 은 곳이었지만 사람이 많았다. 좁은 공간에 5명이나 있었으니 많다고 할 수 있다.


호떡을 굽는 그릴에는 여러 개의 호떡이 기름을 먹으며 지글지글 익고 있었다. 고소한 기름 냄새가 풍겨왔다. 주인 아주머니 주위로 각기 어묵꼬치를 먹는 사람, 호떡을 먹는 사람 등이 있었다. 우리가 들어가자 호떡집은 그야말로 손님이 더 들어올 수 없는 가득 찬 상태였다.    

 

호떡을 2천 원어치, 3개를 주문하고 기다렸다. 가게 주인은 정신없이 바쁜 눈치였다. 가게에서 바로 먹고 또 집에 있는 가족을 생각해 따로 포장해서 가져갈 것까지 합쳐서 호떡 주문량이 많이 밀려있었다.  조금 있으니 호떡집 옆 공인중개사 가게에서 직원이 호떡을 먹으러 왔다. 많은 손님들을 보더니 들어오다가 흠칫 놀란다. “호떡집에 불났네. 호호호” 하고는 어묵꼬치를 집어 든다.     


그 사이 내 옆으로 젊은 사람 한 명이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올 수 없어서 밖과 연결된 호떡을 굽는 그릴 바로 앞에 서 있다. 학생으로 보이기도 하고 스물을 갓 넘긴 듯한 하얀 피부를 가진 키가 큰 여자분(이하 아가씨)이다. 호떡집 사장님과는 잘 아는 눈치다. 사장님을 보며 인사를 큰소리로 시원스럽게 한다. 그리고는 사장님과 여러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사장님과 잘 아는 사이인가 봐요.”


호떡집 사장님을 보며 내가 말을 했더니 사장님이 말하는 대신, 그 아가씨가 “나, 태어나서부터 알았어요.”했다. 말소리는 컸으나 뭔가 얼굴 표정과 말에서 어눌한 느낌을 받았다.‘가족을 이렇게 말하는가?’ 생각했으나 물어보진 않았다. 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막 시작해서였다.     


호떡집 바로 앞길에 ‘요구르트 수레’가 있었다. 웬일인지 요구르트를 파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요구르트 파는 아주머니가 없네요.” 했더니 호떡집 사장님이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꺼내 가세요.” 하였다.    


요구르트가 담긴 수레의 뚜껑을 열었다. 다양한 요구르트가 있었다. 작고 귀여운 달짝지근한 추억의 요구르트도 눈에 들어왔다.


‘** 야쿠르트’.  

어릴 적 냉장고에 넣어 뒀다가 갈증이 나면 꺼내 먹곤 했다. 얇은 뚜껑을 분리할 겨를도 없이 오른쪽 검지 손가락으로 구멍을 퐁 내었다. 시원하게 한 입에 털어 넣었는데 양이 적어서 서운했던 적이 많았다. 그럴 땐 서너 개를 먹은 적도 있었다.


우리 아이들도 어릴 적 요구르트를 먹을 때 아래에 구멍을 뚫어 조금씩 오래 빨아먹었다. 달고 시원한 이 음료를 오래 먹고 싶은 생각에서 일 것이다. 그 심정을 알면서도 행여 플라스틱에 입술이 베일까 요구르트 통 위에 인쇄된 페인트가 입에 들어갈세라 만류하던 기억이 다.


더운 여름철이 되면 어릴 적 나나 우리 아이들이나 공통적으로 하는 일이 있다. 요구르트를 냉동실에 미리 얼려 놓는 것이다. 필요할 때 요구르트의  뚜껑을  살살 떼어 내어 작은 찻스푼으로 파 먹었다. 밖에서 놀고 와서 목이 탈 때 먹는 요구르트는 참 달면서 시원했다.


어릴 적 부모님이 슈퍼를 잠깐 했을 때 요구르트를 먹었던 기억이 많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우유와 요구르트 등마음껏 먹게 하셨다. 아마 키를 조금이라도 키워주려고 했나보다. 유제품을 먹은 덕에 핏기없이 노랗기만 했던 얼굴은 제 혈색을 찾게되었다.  

  

이제 가족 중에는 요구르트를 얼려서 파 먹을 사람도, 달디 단 요구르트를 좋아하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난 야채와 함께 갈아먹으면 좋을 것 같아 사려고 했다. 평상시엔 이것마저 남편이 너무 달다고 반대를 하였지만 누가 뭐래도 이번에는 이것을 각종 과일과 야채를 넣어 갈아먹고 말리라 생각하며 “ 이 요구르트는 얼마일까?”라고 혼잣말을 했다. 가격이 얼마인지 몰라서 몇 개를 집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만원에 7개예요.”


아까 그 아가씨가 언제 따라왔는지  내 뒤에서 큰소리로 알려주었다. 일러준 대로 필요한 요구르트를 종류별로 골랐더니 양이 많아졌다. 비닐봉지가 필요했다. “봉투가 어디 있지?” 둘레를 훑어보았다. 잘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내가 요구르트 고르기를 기다린 듯 아가씨가 수레 앞 쪽에 걸어둔 비닐봉지를 툭 뜯어서 내 앞에 “여기 있어요.”하며 주었다. 빨대와 스푼 얘기를 하자마자 또 “여기요.” 말하며 바로 찾아서 건네주었다.     


땅거미가 질 무렵,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있었다. 옛 먹거리가 생각나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아가씨가 곧바로 해결해주어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친밀감이 들어서 일을 잘한다는 칭찬과 함께 여러 가지를 물어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말은 어눌했지만 맑은 표정과 거침없고 시원한 말소리에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무엇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물어보는 것마다 횡설수설 말하던데, 좀 이상한 아이 같죠? 왜 자꾸 물어보았어요?”

집으로 가는 길에 아들이 말하였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도움만 주는 친절한 사람이잖아. 나는 이런 사람이 좋더라.”


자신의 일이 아니지만 이익을 계산하지 않고 도와주는 예쁜 마음씨를 가진 아가씨다. 그녀가 장애를 가졌다 하여 사회에서 배척을 당하지 않고 또 이용당하지 않으면 좋겠다. 좋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선한 곳에 능력껏 쓰임 받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였다.   

 

호떡집에서 보았던 그 아가씨는 이상하지 않다. 자신과 친한 호떡집 아주머니가 바빠 보여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 낯선 상황에서 손님이 서툴게 물건을 고르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냥 나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진 인정있는 사람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일 뿐이다.


요구르트를 먹었다. 야채와 함께 갈아먹기도 했지만 그냥 마시기도 했다. 밑창에 구멍을 내어 쭉쭉 빨아먹거나 얼려서 파 먹지는 않았지만 어릴 적 생각이 많이 났다. 친절한 그 아가씨의 얼굴도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요구르트의 가격을 어찌그리 상세히 알까? 설마 나처럼 요구르트를 좋아해서 많이 사 먹다 보니까 잘 아는 건 아닐까? 그녀 부모나 자신이 직접 판매를 했을 수도 있다는 터무니 없는 상상까지 했다. 다음에 만나면 꼭 물어봐야겠다. 친절한 아가씨 덕분에 요구르트에 또 하나의 따뜻한 추억이 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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