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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y Dec 30. 2019

거기 어때?

달라도 너무 달라 -Community Homestead2

“엄마, 어젯밤에 끙끙대면서 자던데~ 괜찮아요?”

민서가 걱정되는 표정으로 묻는다. 새로운 곳에 와서 신경 쓰고 벌레들 때문에 놀라서 몸이 많이 힘들었나 보다.  피곤했는지 오늘 아침에 늦잠을 잤다. 거실에서 윌을 만나니 오늘 일과를 설명해 준다.

“Ray~ 여기는 농장일 때문에 바쁘고 다들 스케줄이 달라서 아침은 각자 먹고 가요. 냉장고에 우유가 있고, 빵은 식탁에 있어요. 저는 새벽에 목장에 일 나갔다가 지금 들어와서 또 나가요. 이따 봐요. 참 9시에 오리엔테이션 해주러 잭이 올 거예요. 잭은 자폐인데 아주 똑똑하고 약간 기분이 들떠 있어요. 잘 설명해 줄 거예요.”


순간 실망스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그동안 연락을 주고받았던 사람은 얼굴도 볼 수 없고, 첫 투어를 장애인과 하게 되었다는 것이 어리둥절하다. 잭은 빠르게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여기가 과수원이에요. 저기 있는 게 사과나무, 체리나무이고... 이건 블루베리, 라즈베리, 크랜베리예요. 여기 이 호스 보이죠? 여기서 물이 나와요. 여기는 소 먹이를 위한 공간이고, 여기는 옥수수 밭이예요.”

쉴 새 없이 얘기하는 잭에게 “아~ 그래요?”로 반응한다.

민서가 묻는다. “엄마~ 다 이해해요?”

“당연히 못하지~ 그래도 열심히 얘기하는데 반응은 해야지?”

저 쪽에 농장이 보인다. 세상에나 햇볕이 따가운데 모자도 쓰지 않고 나시를 입고 야채를 뜯고 있다. 월, 화요일은 추수하는 요일이라서 아주 바쁘다고 한다.


“엄마~ 아기 고양이 언제 봐요?”

지민이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묻기 시작하더니, 30분 간격으로 계속 그런다.

“아기 고양이 보고 싶단 말이에요. 아기 고양이~”

달래고 달래서 조안이 사는 집까지 왔는데, 아무도 없다. 집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현관문으로 힐끔 보니 개가 낯선 우리를 보고 짖는다.

“지민아. 주인이 없는데 못 들어가잖아. 오후에 보는 건 어떨까?”

“싫어요. 지금 보고 싶어요. 지금~”


지민이를 달래다가 순간 아차 싶다. 지금 못 보면 하루 종일 시달릴 텐데 조안을 찾아 나서야겠다는 결심이 섰다고 할까? 잭은 우리를 조안이 일하는 농장에 데려다주고 오리엔테이션이 다 끝났다면서 금새 사라져 버렸다. 잭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면서 그가 왜 오리엔테이션 담당자가 되었을지 이해가 된다. 일반인이라면 그냥 지나쳐 버릴 것들을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조안에게 아기 고양이 얘기를 했더니 자기 집으로 가서 7주 된 아기 고양이 릴라를 보여준다. 민서와 지민이는 서로 릴라를 안겠다고 티격태격한다. 아이들이 릴라와 노는 사이, 야채를 담을 종이 박스 닦기 작업에 나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홈스테드 7개의 집에는 각각의 이름이 있는데, 우리가 살게 된 집은 Orion 하우스이다. 점심식사 시간에 맞추어 집에 왔더니 빵에 치즈, 샐러드로만 점심을 먹고 있다. 단품 메뉴를 보고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민서의 표정을 애써 외면했지만, 나도 앞날이 험난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Ray~ 오늘 저녁에는 야간작업이 있어서 제이 외에는 다 늦게 와요. 저녁 식사 준비를 좀 해주고, 음식을 조금 남겨놓으면 돼요~”

냉장고에 그 흔한 계란, 과일도 없고, 문드러진 야채만 지저분하게 굴러다니는데 도대체 무엇으로 식사 준비를 할지 답답하다.  

“얘들아. 안 되겠다. 우리 오늘 저녁에 라면 먹자~”

“정말요? 좋아요. 라면에다가 밥 말아먹으면 되죠~”

쌀만 씻어 놓으려고 하는데 배고파하는 두 딸을 보니 마음이 약해진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시금치가 있고 배추가 보인다. 내친김에 야채들을 씻어서 데치기 시작한다. 그 흔한 소금, 설탕 어디에 있는지 찾느라 한참을 애 먹었다.


한 4시쯤 되니 제이가 집에 오더니 식탁에 접시와 포크, 물을 떠 놓는다. 조금 있다가 사라지더니 6시 넘어서 다시 나타났다.

“제이, 밥 먹을래요?”

“오늘 저녁은  morning하우스에서 먹고 왔어요.”

“그래요? 우리 라면 끓일 건데. 조금이라도 맛볼래요?”

제이는 40대 후반 남자로 발달장애인 같다. 여기서 생활한 지 14년 되었고, 마샬아트에 푹 빠져 있다. 중국에 대해 얘기하고, 젓가락으로 밥 먹기를 좋아한다고 한다면서 라면을 맛있게 먹는다. 방안이 온통 건담 피규어로 가득하다.

“나는 쿵후 펜더 만화를 좋아해요. 중국 영화, 태권도.. 음 이룡~”

아이들은 제이의 선량한 표정에 즐거워한다.


여기서는 와이파이가 완전히 잘 터진다. 덕분에 남편과도 통화를 편하게 한다.

“거기~ 어때?”

“응... 아직 잘 모르겠어”

“그래도 와이파이 잘 터지니 좋네. 부르더호프에 있을 때는 통화도 못하고 맨날 제인할머니에게 잔소리만 들었는데.. 거긴 좀 자유롭지 않아?”

“글쎄.. 잘 모르겠어. 나중에 얘기해줄게~”

정말 설명하기가 곤란하다. 내가 어디에 온 것인지, 완전 이상한데 온 것 같기도 하고... 생각 정리가 되지 않아 남편에게 설명하기도 힘들다.


이곳은 너무 자유로워서 문제인 것 같다. 아침에 빵을 먹고도, 커피를 마시고도 정리를 안 해 놓고 나간다. 주방이 지저분한데 뒷정리를 하는 사람이 없다. 이곳에 비하면 우리 집은 무척 깨끗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르더호프는 정말로 깨끗한 곳이었는데, 어쩜 이렇게 정반대 분위기인 곳에 오다니 정말 아이러니하다. 여기서는 비위가 강해져야겠다. 모기에,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에 혹시 건강에 이상이 오는 것은 아니겠지? 앞날을 생각하니 걱정이 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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