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수요일 오전에는 야채, 빵, 고기를 무인판매하는 Store 청소 담당이다. 조안이 야채를 교체하고 빵만 채워 달라고 했는데, 갑자기 대청소를 시작하게 되었다. 먹거리를 판매하는 곳에 거미줄이 있고 먼지가 잔뜩 쌓여 있는 것이 며칠 전부터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조안~ 기다리면서 청소하고 있을게요.”
“엄마. 왜 청소해요?”
“응. 지민이가 물건을 사는 사람이라면 어떤 곳이 좋겠니? 깨끗한 곳, 지저분한 곳?”
“음. 깨끗한 곳이 좋죠~ 근데.. 나 청소하기 싫어요. 심심해요.”
며칠 전부터 밭에서 일을 해 보고 싶다던 민서가 조나단을 따라가고, 오늘은 지민이랑 둘이서 오전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혼자서 엄마 곁을 지키니 심심하다고 자꾸 보채는 지민이... 하는 수 없이 핸드폰을 내줬더니 혼자서 사진을 보며 낄낄 거리며 웃고 있다.
빗자루로 천장에 있는 거미줄과 먼지를 쓸어내리고 걸레질을 하기 시작한다. 이 Store는 일반 고객들이 오는 곳이니 조금 더 깨끗했으면 좋겠다. 이 건물은 공들여 지은 집은 아닌가 보다. 구멍이 많이 뚫려 있고, 오래된 재활용 목재로 지어서 여기저기 거미가 정말 많다. 이 공간이 밝고 깨끗해질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시골이라서 그런지 우리 방에도 거미줄이 많다. 한두 번 거미줄을 치우다가 지금은 그냥 내버려 두게 된다.‘거미는 사람을 해치지 않잖아. 모기를 잡아먹을 텐데. 치우지 말자~ ' 시골마을의 모기, Tick이라는 벌레, 거미에게 여전히 적응 중이긴 하지만, 긴장이 조금씩 풀리는 듯 하다. 제일 무서운 Tick이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추운 지역에 사는 벌레라고 한다.
오늘은 야채 풍년이다. 냉장고를 정리하다가 한국 배추 1통, 중국 배추 5통, 시금치, 순무, 파까지 발견했다. 팔리지 않은 물건이라 시들해지기는 했어도 버리기는 아깝다. 하는 수 없이 우리 집으로 가져왔다.
“이걸 언제 다 정리하지?” 조급함이 몰려온다.
짧은 점심시간 동안 시금치를 무쳐놓고, 중국 배추 3통을 데쳐 놓는다. 오후 작업이 끝나고 가서 한국 배추 1통으로 제대로 된 배추 김치를 담그려고 소금에 절이고, 순무랑 파도 다듬었다.
“Ray~ 뭐해요?”
“네. 김치를 만들어요. 3가지 종류예요.”
“우리 엄마는요. 집에서는 절대로 김치를 안 만들어요. Never”
엄마가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한다고 민서가 고자질을 한다.
“맞아요. 친정 엄마와 시어머니께서 주로 만들어 주세요. 저는 워킹맘이라 바쁘거든요.”
앞집 사는 엘리는 채식주의자이고 동양 음식에 관심이 아주 많다. 음식에 대한 얘기를 하다 보니 멸치액젓도 가지고 있단다.
“Ray, 미국에서는 한국 김치가 젊은 사람들에게 요즘 트렌드예요.”
“아. 그래요?”
“시내에 있는 한국 마트에 가끔 가는데요. 그때 Ray에게 얘기할게요.”
“네. 좋아요. 여기 한국 배추가 나오던데요. 한국에서는 김치를 한꺼번에 많이 만들어놓고 먹거든요. 김치만 따로 보관하는 냉장고가 있어요. 2년, 3년씩 보관하면 그 기간에 따라 느껴지는 맛이 달라요.”
“맞아요. 자주 만들어 먹으려면 귀찮아요.”
“그러면 한국 배추가 많이 나올 때 우리 같이 김치 만들어 볼까요?”
제대로 된 김치를 담가 본 적도 없고, 배추를 절여본 적이 없는데 약속을 하고 말았다. 한국 음식이 인기가 많아서 다행이긴 한데, 내 손이 고생을 좀 한다.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다. 볼티모어에서 형&선 부부가 양념들을 더 챙기라고 했을 때 괜찮다고 했는데 후회된다. 머지않아 한국 마트에 가서 액젖과 고춧가루를 사야 할 것 같다.
저녁에 김치를 만들고 있는 나를 조이가 쳐다본다.
“조이~ 오늘은 김치데이예요. 3가지 종류의 김치를 만들었어요. 하루나 이틀 정도 지나서 익으면 같이 먹어요.”
“그래요? Ray가 만든 김치를 한번 맛보면 안 될까요?”
“지금 먹어봐도 돼요. 이건 파김치예요. 어때요?”
“음. 맛이 좋아요.”
내가 해주는 음식은 모두 맛있다고 하는 조이~ 그녀 덕분에 음식에 자신감이 생긴다. 고맙다.
인터넷 레시피에서 파김치랑 배추김치는 찹쌀죽이 들어가야 한다고 쓰여 있어서 나름 쌀을 믹서기에 갈아서 죽을 끊였다. 파김치 색은 대충 괜찮아 보이는데, 배추김치 색이 좀 이상하다. 민서가 단박에 알아본다.
“엄마. 배추김치 색깔이 이상해요. 쌀죽 너무 많이 넣은 거 아녜요?”
“그러게 말이다. 너무 많이 넣었나 봐. 고춧가루를 아꼈더니 더 그렇게 보이네~”
“어떻게 해요?”
“음. 익으면 괜찮겠지~ 기다려보자. 백김치도 먹는데 설마 이상하겠어?”
김치를 다 해놓고 사진을 찍어보니 웬지 더 그럴듯해보여 기분이 좋다.
수요일에 시작된 김치데이는 어쩌다보니 금요일까지 이어졌다. 매주 수요일이면 집집마다 배달되는 야채 박스에 한국 배추가 3포기나 있었던 것이다. 처음만든 김치에 대한 반응이 나름 괜찮으니 괜스레 욕심이 났다. 아이들에게 매일 무엇을 먹일까 고민하는 것도 힘이들고 말이다. 김치라도 만들어 놓으면 반찬 걱정이 덜할 것 같다. 목요일 밤부터 절임 작업을 하기 시작해서 금요일 점심시간까지도 쉬지 않고 겉절이를 했다. 한국의 김치를 이왕이면 공동체 여러 집들이랑 나누고픈 마음이다. 앞 집 Alt하우스, 저기 멀리 있는 Morning하우스, 조나단네 집까지 해서 세 집을 나눠주고 저녁 포트락 파티에도 가져갔다.
아이들은 그런 엄마곁에서 도와주며 뿌듯해 한다. 우리가 만든 음식을 공동체 식구들과 나누면서 자연스레 친해지고, 함께 나눌 이야기들이 쌓여가리라고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