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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y Jan 13. 2020

홈스테드 생활 10일 차 푸념

왜 엄마만 일 해요? -Community Homestead8

요즘 김치를 담그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늘도 점심시간에 배추 된장국을 끓여 놓고 배추를 잘라서 소금에 절여 놓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없어졌다. 일하러 갔나 싶어서 오후 작업하는 곳에 갔는데 아무도 없었다. 한참 기다리니 사람들이 오길래 물어 봤더니 주말에 떠날 자원봉사자 설리번의 송별 파티가 있었단다. 뭐라고?


속이 상한채 크랜베리 밭 잡초를 뽑고 있었다.

“엄마~ 힘들어요. 사람들이 없어졌어요. 우리만 일하고 있어요.”

“그래? 무슨 일이 있겠지~”

“왜? 우리만 이렇게 힘든 거 해야 해요?”

“우리는 말도 잘 못 알아듣고, 이곳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으니까 그렇겠지~”

“그래도 맨날 엄마만 혼자 일하잖아요. 짜증 나~”

“이게 엄마 일 인걸~ 남들 생각하지 말고, 내가 할 일만 생각하면 되는 거야~”


그렇게 짜증을 내던 민서도 조금 있다가 토끼풀 꽃 화관을 만든다고 자리를 떴다. 민서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내 안에도 답답함이 몰려온다. 말이 많고 아는 척하기를 좋아하는 빌도 저쪽에서 느리게라도 풀을 뽑고 있었는데 또 없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매주 목요일 오후 4시에는 타이치이 연습이 있단다. 정말 그런 시간 칼 같이 지킨다니까ㅠ.ㅠ 그렇다고 인사도 안 하고 가다니... 괴씸하기도 하고, 퇴약볕 아래 혼자 남아서 풀을 뽑자니 내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진다. 어제부터 김치를 담그느라 쉬는 시간에도 못 쉬었고, 지금도 쪼그리고 앉아서 일을 하니 어지럽기까지 하다. 간간히 지민이가 와서 “엄마~ 언제 끝나요? 심심해~ 왜 엄마만 혼자 해요?”라는 말을 연달아하니 기분이 더 나빠진다.


그래서 오늘은 본격적으로 푸념을 좀 해 보련다.

평소에도 손 관리를 하지 않았는데 여기 와서 손이 더 엉망이 됐다. 여기에서는 사람들이 일할 때도 면장갑 혹은 고무장갑을 끼지 않고 한다. 함께 따라 하다 보면 여기저기 손에 상처가 나고 아프다. 맨손으로 흙을 만지니 손톱도 지저분하다. 안 되겠다 싶어서 풀을 뽑을 때 장갑을 챙기기 시작했다. 설거지도 항상 맨손으로 한다. 자기가 먹은 음식은 자기가 해야 하는데 그대로 쌓아 놓고 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답답한 사람이 지는 거라고 그 모습을 못 견뎌서 내가 설거지를 하게 된다. 주방 싱크대가 어질러져 있으면 짜증이 확 몰려온다. 음식 하면서 그릇, 도마, 칼을 사용해 놓고서 제대로 치우지도 않는다. 살림을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걸까? 하긴, 우리 남편도 뭐 하나 만들라면 정신없이 이리저리 올려놓으니까... 남자들은 치우면서 하는 걸 못하잖아?


Orion하우스에 살면서 간간히 그런 생각이 몰려온다.

‘내가 어떻게 하다가 이 집에 오게 된 걸까?’

‘캐서린은 왜 나에게 연락을 한 거지?’

‘여기에 살림하는 아줌마가 필요했던 걸까?’

‘그녀가 기대하는 건 무엇이었을까?’

‘내가 이 집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맛난 밥을 많이 해 줘야 하나? 청소를 더 해야 하나? 장애인들을 더 챙겨야 하나?’

자꾸 물음들이 올라온다.


‘그냥... 내 페이스대로 즐기면 되나? 다른 봉사자들처럼?’ 에구.. 내가 그들의 고민도 모르는데 뭘 또 아는 척을 하나 싶다.

어떤 때는 ‘내가 파출부인가?’라는 생각이 들고, 또 어떤 때는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분 좋게 해야지’ 생각하게 된다.

내가 모범을 보인다면, 이 친구들에게 내 마음이 전달이 될까? 생활태도가 조금은 변하려나?

부르더호프에서 핵심 키워드는 청소였다. 그런데 여기 홈스테드에서도 그 키워드는 바뀌지 않았다. 청소랑 내가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미국에 와서 청소 때문에 고민하다니... 삶을 살아가며 정말 떼려야 뗄 수 없는 청소와의 관계...


그리고 이 놈의 영어가 잘 안되니까, 타향살이의 설움이 간간이... 아니 자주 몰려온다. 간단한 영어야 되지만, 이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말하고 복잡한 얘기를 하게 되면... 눈치껏 알아듣거나 멍한 표정을 짓게 된다. 브루더호프야 워낙 종교적인 사람들이라서 친절하고 사람을 잘 챙기는데 여기 사람들은 별로 그런 마음이 없다. 내가 한두 번 더 물어보면 당황하고, 답답해한다. 그런 상황이 되면 나도 긴장을 하는지라 표정이 밝지 못하다.


이 Orion하우스는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 아주 어설프다. 따로국밥식으로 생활하는 모습이 내 눈에 띈다. 어린 봉사자들의 이기적인 모습을 보면서, ‘그럴 거면 무엇하러 여기에 왔어?’ 묻고 싶다. 단순하게 농사를 지으러 왔니? 그래도 장애인들과 어울려 사는 곳이잖아. 공동체를 표방하고... 그러니 구성원들이 좀 더 함께 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집안일에 대한 역할 분담도 그렇고, 저녁식사의 경우에도 늦게 일하고 오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다. 내가 음식을 해서 저녁밥을 남겨 놓으면, 먼저 들어오는 사람이 다 먹어버린다. 일하느라 늦게 오는데 밥도 없으면 얼마나 짜증이 날까 싶다.


주말에 장애인들에게 나름대로 문화활동을 제공하지만, 평일에는 거의 각자 알아서 생활하는 느낌이다. 밤에는 봉사자와 직원끼리만 게임을 하거나 놀고, 장애인들은 TV를 보거나 혼자 방에 있고... 그나마 일을 할 때 장애인들도 섞여서 하는데 대부분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챙기고, 보호하고, 아주 작은 일이라도 함께 할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제 조금씩 적응이 되어가니 보이는 것들이 많아져서 그런가?

꽤 넓은 방에서 마음 편히 생활하고 있고, 공동체 전체적인 분위기도 자유롭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이제 적응해가기 시작한 것 같다. 10일 차 이 느낌이 앞으로 두 달 동안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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