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stead에서는 1년에 한번 대규모 모금행사가 열린다. 주중에도 계속 청소를 하고, 토요일에 잔디를 깎고, 본격적으로 행사장 세팅에 들어갔다. 나도 무엇이라도 도와야 할 것 같아 조안에게 물었더니, 테이블보랑 냅킨 다림질을 해 달란다. 나는 커뮤니티센터 지하에서 다림질을 하고, 아이들은 1층에서 피아노 연습을 하기로 했다. 피아노 소리가 울려 퍼지니 마치 연주회에 온 것 같다. 아이들은 엄마를 기다리느라 피아노 연습을 끝내고 문제집까지 풀었다.
“엄마~ 아직 멀었어요? 다림질 우리 엄마 평소에 안 하는데... 아빠가 하는데”
“아빠가 다림질을 잘하잖아. 근데 아빠가 하면 더 오래 걸려. 꼼꼼하게 하잖아.”
“엄마 5시가 다 되어가요. 위에 아무도 없어요.”
“응. 엄마가 이거 도와준다고 했으니까 끝내고 가야지. 힘들면 먼저 갈래?”
“싫어. 같이 가야지. 혹시 조안은 자기 집에 가서 밥 먹고 쉬는 거 아냐?”
“설마 그렇겠니~ 이것저것 바쁜 게 많을 거야.”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꼬박 4시간 동안 서서 다림질을 했다. 막상 시작하니 일은 안 끝나고 아이들은 배가 고프단다. 설마 우리만 빼놓고 가서 자기는 쉬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갈 때는 인사라도 하고 했으면 좀 좋았겠어? 내 마음에도 이런 저런 생각이 오고간다. 다행히 아이들이 테이블보를 잡아당겨주고 정리해줘서 제시간에 끝났다. 민서는 항상 든든하게 나를 챙겨준다. 얼마나 이쁜지 고맙다~~
일요일에는 아침 일찍부터 일손이 더 분주해 졌다. 나에게 할당된 일은 없는데 눈치껏 행동하려고 집을 나섰다. 첫 번째 일은 행사에 참석하는 손님들을 위해 코사지를 만드는 일이다. Morning하우스에 새로 온 봉사자, 캐서린의 딸과 며느리랑 작업을 했다. 나는 지민이의 작업을 보조하는 도우미였다고나 할까?
“엄마~ 가위 좀 주세요~ 거기.. 꽃 좀요.”
“엄마. 이거 어때요? 이쁘죠~ 응... 빨리~~ 내 꽃한테 뽀뽀해줘요~~”
“엄마~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 줄 알아요? 아.. 힘들다~~”
어리광 겸 떼를 쓰는 지민이가 이쁘기도 했다가 귀찮기도 하다. 자신의 수고가 대단한 것이라고 믿으며, 열심히 새로운 일에 참여하는 아이들...
모두들 바쁜 와중에도 점심 때 켈리의 생일파티를 했다. 캘리는 지난주부터 자기 생일이라고 어찌나 자랑을 하고 다니던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정원에 모여서 아이스크림 케이크, 초콜릿 케이크를 나누어 먹었다. 두 아이는 케이크 접시를 나르느라 바쁘다.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을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며 감사하게 된다. 생일 축하가 마음에 들었는지 캘리의 표정이 밝아졌다. 장애인들에게도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 생일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자신이 세상에 왔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로부터 확인 받고 싶고, 축하 받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본능적인지 매번 느낀다.
오후가 되니 두 아이들은 테이블 세팅을 돕느라 바빠졌다. 아침에 빵 한 조각 먹고, 낮에 케이크 한 조각 먹은 것이 다인데 배도 안 고픈가 보다.
“엄마~ 이거 어디다 놔요? 여기~~~?”
“우리 밥 안 먹어도 되니까 준비 다 할 때까지 도와줘요.”
“엄마~ 또 뭐 하면 돼요?”
아이들 덕에 나도 덩달아 바빠진다. 주방에 요리사들이 도착해서 만찬 음식을 만드느라 바쁘다. 세팅을 하다가 젊은 여자 친구랑 말을 하게 됐는데, 내 영어 표현에 대해 조금 놀라는 듯하다. “Your english is good~!!”이란다. '그래 외국인이 이 정도 표현하면 됐지, 앞으로 움츠러들지 말고 당당해져야겠다.' 스스로에게 한마디 해 본다.
행사장 셋팅은 4시가 넘어서야 마무리 되었다. 나도 100달러 내고 스테이크랑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공연을 보는 행사에 참여해보고 싶다. 하지만 두 아이와 정신없이 저녁식사를 할 생각에 포기하고 말았다. 게다가 앨리가 자기 아이를 돌봐달라는 부탁을 해서 행사 시간에 집에 있어야 한다. 아쉬운 마음에 행사장 구경이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외부에서 손님이 오고 하니 우리 집 아이들도 마음이 한껏 들떴다. “엄마. 저 뭐 입어요? 고민되네요.”
옷을 입고 다시 행사장 쪽으로 가니 손님들이 보이고, 마치 다른 곳에 와 있는 느낌이다. 과수원 옆 거름 밭이 정말 깨끗해졌다. 가든은 분위기 있는 곳으로 변해서 사람들이 와인을 마시고 다과를 먹고 있다. 인근 지역에 사는 요리사들이 음식을 만들고, 외부 봉사자들이 서빙을 하고 있다. 아이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음식에 향한다. 아이들이 먹고 싶다고 해서 덕분에 나도 시식을 했는데 맛도 있다. 접수대를 지키고 있는 홈스테드 봉사자들, 귀여운 렉스가 오늘은 나비넥타이를 하고 왔다. 오늘 행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40%는 이곳에서 생활하는 식구들의 가족이란다. 앨리네도 친정엄마와 여동생이 와 있고, 빌도 오늘은 가족이 온다고 와이셔츠에 타이 차림을 하고 있다.
행사장 곳곳에 홈스테드에 사는 식구들의 사진과 말이 프린트되어 세워져 있다. 아이들은 자기 얼굴이 없다고 난리다.
“우리도 여기 사는데 왜 우리는 없어요? 엄마”
“응~ 우리가 오기 전에 사진을 찍었나 보지~~”
사실 아이들에게는 눈치가 별로 없다. 그래서 난 항상 아이들을 자제시키고 기다리게 해야 한다. 특히 민서는 ‘누가 맛있는 걸 먹는다, 놀러 간다, 타운에 간다, 누가 온다’는 말은 정말 잘 알아듣고, 꼭 나에게 물어본다. 어쩜 이렇게 자기가 관심 있는 것에 잘 반응할까 싶다. 민서가 질문을 할 때 난처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엄마! 오늘 저녁에 모임이 있다는데~ 우리는 왜 안 가요?”
“민서야~ 엄마도 몰라. 아는 게 없어서 너한테 대답을 못 해줘~~”
“나도 가고 싶단 말이에요. 엄마가 물어봐주면 안 돼요? 응응~~ 제발~~”
“엄마한테 자꾸 묻지 말고, 네가 직접 물어보렴~ 이제부터~~”
엄마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깨트려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된다. 아이들의 조바심, 궁금함을 전적으로 해결해주지 못하는 엄마가 되기도 힘들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엄마도 영어 리스닝이 잘 안되고, 배워야 할 것들이 아주 많다는 것을 계속 얘기하는 수 밖에 없다.
행사장 구경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장애인, 어린이, 봉사자는 모두 우리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다과를 먹고 저녁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오늘 행사는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한다. 윌의 말에 의하면, 100명 목표였는데 105명이 와서 10,500달러를 모금했다. 이번 행사의 후원금은 소를 키우고 농사지을 땅 구입을 위해 사용될 거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