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목사님의 오래전 경험담이다. 목회자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교를 다니면서 전도사로 일하고 있던 젊은 시절 겪은 이야기란다. 그땐 인터넷 같은 게 당연히 없었다.
어느 날 부친상을 당한 교회 장로님의 장례식장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마침 담임목사님이 급한 일정이 생겨 전도사님이 대신 예배 인도를 하게 되었다. 장례기간 중간중간 성도님 가정을 위해 드리는 예배라서 양해를 구하고 전도사님이 직접 설교를 했다. 모든 순서가 잘 진행되었고 설교말씀을 마치며 전도사님이 가족들을 향해 축복의 말을 해주었다고 한다.
"000 장로님은 아버님부터 자손들까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셨으니 모두가 축복입니다. 돌아가신 아버님도 어디에서든지 축복을 받으실 것입니다. 제 성심껏 돌아가신 고인의 명복을 삼가 빌어 마지않겠습니다. 아멘"
설교를 마친 뒤, 장로님이 조용히 불러서 한마디 하셨다고 한다.
"전도사님 덕에 우리 아버님이 졸지에 불교신자가 되어 버리 셨네요. 허허. 불교에선 죽은 자가 지옥에서 심판을 받는 곳이 명복인데 그 심판받는 지옥의 여러 단계에서 잘 심판받아 극락에 갈 수 있도록 복을 빈다는 뜻입니다. 잘 기억해 두셨다가 다음 예배인도 때에는 천국으로의 축복을 기도해 주십시오"
장로님은 어쨌거나 돌아가신 아버님을 축복해 주셔서 감사하다면서 전도사님이 당황해하지 않도록 잘 가르쳐주셨고 전도사님은 너무 부끄러웠지만 이때의 가르침을 가슴에 담았다고 한다.
상을 당한 지인에게 가서 혹은 지인들의 온라인 부고장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함부로 얘기하면 안 된다고 글을 썼더니 누군가 쪽지를 보냈다.
불교교리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명복은 죽은 자가 심판받는 지옥인 명부에서 고인이 복을 받아 극락에 갈 수 있게 해달라고 비는 말이다. 상을 당한 사람들에게 위로하는 말로 보통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얘기한다. 이 말이 요즘은 상식적인 문구가 되어서 많이들 사용한다. 기독교인들의 숫자가 줄어들면서 사회적으로 큰 고민 없이 사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온라인 등에서 상을 당한 사람이 기독교인지 불교인지 다 따져 가면서 위로의 댓글을 달아야 하냐는 불편함도 있을 수 있다. 그래도 기쁜 축하의 말이 아니라 슬픔에 처한 사람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과 글이니 상대방한테 초점을 맞추어주면 어떨까 싶다.
고인의 종교를 나타내기 위해 부고장이나 장례식장의 안내판에는 불교표시나 기독교의 십자가 표시로 안내한다. 또 고인의 사회적 지위도 넣긴 하지만 '권사 000', '집사 000', '성도 000' 이런 식으로 고인의 이름을 명기하기도 하니 한 번쯤 위로의 말을 건네기 전에 고인의 종교를 봐두는 것도 좋겠다. 돌아가신 분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상갓집에 가거나 온라인 부고장에 접속했을 텐데, 오랫동안 고인이 믿어온 종교적 대상을 확인하는 정도의 수고는 모두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인으로 살았고 기독교 영성과 믿음 생활을 하시다가 돌아가신 분들에게는 아래와 같은 말이나 추모의 글을 남기면 좋을 것이다. 내가 목사님도 아니고 정확한 기독교적 인사법이 이렇다고 얘기할 순 없지만, 보통 이렇게 위로의 말을 건네면 큰 실수와 불편함이 없었다.
"하나님의 큰 은혜와 위로가 돌아가신 000님과 귀 가정에 임하시길 기도드립니다(기원합니다)."
"사랑하는 000님은 천국 가셨으리라 믿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하셔서 나중에 천국가시면 000님이 활짝 맞아 주실 겁니다"
"은혜 가득한 천국 가셨을 겁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귀한 위로가 함께 하실 겁니다."
"주님의 위로와 평안이 000 가정에 넘치시기를 기도합니다."
서로를 위로하는 자리에서 명확한 종교 교리를 따지거나 종교식 예법을 정확하게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조선의 유교시대가 아닌 바에야 현대 상갓집에서 복잡한 예법을 따라가거나 강요하지는 않으니까. 다만 어느 정도의 상식선에서 서로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말과 글, 행동들을 미리 알아두고 준비해 가면 불편함이 없을 것이다. 슬픔에 처한 사람들과 유가족들에게 진심 어린 위로의 말을 건네보자. 그들의 종교적 신념도 고려해 주면 더욱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