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성탄이 더 특별한 이유

이집트, 요르단, 튀르키예 여행에서 만난 믿음의 역사

by 구르는 소

2025년 성탄예배의 찬송가는 역시 123장이었다.

'저 들 밖에 한밤중에 양 틈에 자던 목자들~~'

찬송가에 나온 동방의 박사들이 설교말씀에도 나왔다. 황금과 몰약과 유황을 아기 예수께 선물해서 동방박사가 3명으로 알려졌지만 성경에 3명이라고 나오진 않았다. 그 동방의 박사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잠시 생각하면서 아기 예수의 탄생에 대해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2025년도 이렇게 저물고 있다.


"지금부터 2,000년 전 이스라엘의 먼 땅에 아기 예수님이 탄생했어요! 동방박사들이 황금과 몰약, 황금을 예물로 준비하여~~"

5살 때쯤이었을까? 교회 유년부 시절, 성탄전날 행사무대에서 성탄축복 시를 읊던 기억이 가물가물 떠올랐다. 아기 예수님이 오신 것이 그때도 2천 년 전이고 지금도 2천 년 전이다. 2천 년이 얼마나 긴 세월이던가. 인간 수명 70세로 보면 내 위로 선조들이 300명가량 줄 서 있을 모양새다. 수많은 세대가 외치며 경배했었을 아기 예수의 성탄이 올해는 새롭게 느껴졌다. 새해에는 모두에게 기쁨과 평안이 찾아오기를...




2025년 가을의 끝자락에서 이집트와 요르단, 튀르키예 여행을 다녀왔다. 업무일정과 가족상황, 경제적 부담 등으로 고민이 많았지만 아내와 여행날짜를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언제 내 인생에 피라미드를 보겠냐라는 마음에 설렘과 흥분 속에서 진행한 여행이었다. 이집트 카이로와 튀르키예 이스탄불만 둘러보자고 했던 것이 요르단의 페트라 방문까지로 발전하여 엉겁결에 3개국을 돌아보게 되었다.


카이로 기자의 피라미드와 국립박물관, 룩소르의 신전 등에서 만난 여행의 감흥은 실로 놀라웠다. 와서 직접 눈으로 봐야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을 글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누구나 느낄 법한 고대 건축물 앞에서의 감동은 당연히 가슴이 벅찼다. 그리고 감동과 함께 그 안에 녹아진 수많은 사람들의 고생과 인생흔적을 같이 느껴보고자 하였다. 당시 권력자의 무덤을 만들기 위해 한평생 노동자와 기술자, 관리자로 투입되었을 사람들의 땀과 수고, 회한과 아픔들은 무엇이었을까? 박물관의 파라오 앞에서 사진도 찍었지만 고대 이집트 노동자 조각상과 노예선 앞에서 사진을 찍어 보았다. 아울러 그들과 연결된 당시의 가족들은 이 황량한 땅에서 어떤 삶들을 살았는지, 저 피라미드와 신전, 나일강과 어떻게 삶의 끈이 이어져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상형문자에서 파라오의 모습은 크고 선명하게 조각되었지만 당시 서민들의 모습은 소소하게 주변인으로 조각된 것들을 볼 수 있었다. 강한 권력자의 영생에 대한 욕망, 그 욕망을 신앙화한 이집트인들의 신념이 시대를 앞서간 문명을 만들었지만 결국 그로 인해 스스로 무너지는 모래성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평생 권력자의 건축작업에 동원되었을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브라함과 요셉과 모세와 같은 메시아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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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찾아간 카이로 공중교회(행잉처치)는 종교적인 볼거리와 체험거리들을 충분히 제공해 준 곳이었다. 초기 기독교(콥트교)의 모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장소와 그곳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기 예수와 동시대적 연결성을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을 가서야 이집트가 기독교 성지순례로 중요한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금만 더 공부하고 갔으면 좋았을 것을 후회스러웠다. 하지만, 꼭 알아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잖은가! 예배당에 가만히 앉아 2천 년 전 아기예수의 탄생과 안전, 그리고 지금의 나의 여행이동과 가족들의 안녕에 대해 묵상하고 기도함이 나에게 충분한 감동과 만족감을 선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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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페트라의 풍광은 또 다른 감동이었다. 어렸을 적 보았던 인디아나존스 영화시리즈의 추억팔이와 함께 고대 나마테아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야간페트라의 체험은 그 옛날 동방 박사들의 밤길도 이랬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달빛아래 페트라 알카즈네 신전으로 향하는 계곡길은 너무 아름다웠다. 뜨거운 태양아래 알데이르 수도원 전망대에 올라 바라본 광야지역은 신에 대한 물음과 답을 찾기에 충분한 공간이었겠구나 싶었다. 돌밖에 없을 저 광야에서 40일을 굶주리면서 헤매다 보면 인성이 영성을 만날 가능성이 커질 것이었다. 동방의 박사들이 이 요르단 광야를 지나갔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근방에 거주하던 점술가들이었을 수도 있을 테고. 매년 찬송가로만 부르던 동방 박사들을 떠올리며 요르단 풍광 앞 잠시 기도를 통해 미리 아기예수의 탄생을 경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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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괴레메지역에서 만난 지하도시에서는 선배 기독교인들의 애환과 삶,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로마의 핍박을 피해 지하로 숨어 들어간 초기 기독교인들이 있었다.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신앙의 의미, 한평생 지하에서 살면서 두려움과 불안, 고독과 불편함을 극복하고 번성하고자 했던 인간의 본성, 그리고 지하와 바위 속에 만들어둔 교회와 벽화들을 보면서 신에 대한 갈급함에 대해 느껴보고자 했다. 박해를 피해 숨어든 바위산속에서도 바위 안을 파내어 정교한 조각과 그림을 그린 종교적 성취가 놀라웠다. 이들의 신앙은 과연 무엇을 위해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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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른 카이로의 동굴교회는 왜 카이로가 성지순례로 가봐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슬람 사회에서 기독신앙을 지키고자 카이로 시내의 쓰레기를 처리해 주며 삶을 지속하는 콥트교인들의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파리가 날리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삶을 일궈나가며 신앙을 지켜온 이들의 모습에서 아기 예수 탄생의 의미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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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굴교회는 지금도 카이로에 거주하는 콥트교인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곳이라고 한다. 바위산을 파고 들어가 그 안에 거대한 예배당을 만들어 놓았다. 거대한 피라미드만큼이나 그 웅장함에 입이 벌어지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렇게 까지 지키고자 했던 저들의 신앙심은 어떤 의미였을까? 기독교인으로서 선배들의 발자취를 따라 부끄럽게 살고 있지는 않는 것일까? 쓰레기마을 때문에 들어오고 나가기가 힘들어서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카이로에 왔다면 한번 들러볼 만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꼭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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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을 불문하고 전 세대에 걸쳐 많은 문화권에서 각자의 모습대로 기독신앙을 지켜왔다. 조금씩 교리가 달라 정파색을 달리 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경배하는 신앙심은 다르지 않다. 하루하루 힘든 삶을 살아가는 인생에서 메시아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이 인간의 본성은 아닐까? 어렵고 불편한 해석은 잠시 던져두자. 오로지 아기 예수의 탄생을 믿음으로 축하하고 내 삶 속으로 받아들이는 시간을 만들면 좋겠다. 나를 위해 십자가를 대신 짊어진 2천 년 전의 그 역사가 지금껏 살아 있음을 여행을 통해서 느끼고 온 사람의 2025년 마지막 희망사항이다. 누구나 평안한 2025년 연말과 행복 가득 2026년을 맞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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