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아니라 이제 데이터가 전문가다.
얼마 전 외부 토론회에서 발표할 일이 있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의 현재와 미래 방향성에 대해 사례발표의 요청이 와서 진행되었는데 오랜만에 대중 앞에 서는 자리였다. 발표자료도 꼼꼼히 만들고 제시할 내용과 미래방향도 멋지게 보여주고 싶었다. 남들 앞에 서서, 특히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여러 동종 기관의 직원들과 이해관계자들 앞에서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얘기를 한 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주최 측에서 보내준 토론회 취지에 맞게 발표 주제와 내용들의 흐름을 우선 정했다. 그리고 대략 도출된 내용을 a4 2장 정도의 개조식 문장으로 만들어서 발표얼개를 만들었다. 다음은 기관의 팀장들과 얘기하면서 주요 키워드를 뽑아 발표 흐름에 맞게 수정과 보완을 거쳤다. 여러 사람의 생각과 의견을 추가하니 좋은 발표 안이 나와서 만족스러웠다. 이제 이걸 한눈에 볼 수 있는 파워포인트로 만들기만 하면 되었다.
작업에 들어가기 전, ai 도구인 챗GPT는 이 발표주제를 어떻게 보여줄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주최 측에서 보낸 토론회 주제와 행사취지, 목적, 내 발표 주제만 챗GPT에 입력한 뒤 10분 정도의 발표자료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20초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ai가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결과물은... 내가 팀장들과 정리한 발표초안과 80% 정도 동일했다. 이것저것 막 써 내려간 초안 내용보다 훨씬 간결하고 핵심에 접근한 텍스트들을 바로 보여주었다. 굳이 바쁜 팀장들과 회의를 할 필요는 없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서 25년간 일한 나의 경험과 우리 팀장들의 경험, 직업분야에 대한 고민과 미래방향을 녹인 발표초안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논의를 같이한 우리 머릿속에서 나왔겠지만,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경험과 고민들, 생각들, 자료들이 인터넷에 다 있다. 온갖 세미나와 토론회 자료, 학술논문, 관련서적, 블로그 등에 명시되어 있겠지. 오히려 같이 논의한 나와 팀장들, 이 3명의 경험과 생각은 업무범위에 따라 편협하고 제한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ai는 나보다 훨씬 잘 알고 전문적일 수 있다. 모든 데이터를 학습하고 추론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내가 작업한 발표초안과 거의 동일한 결과물을 도출해 주는 것이리라.
요즘 간단하고 명료하게 파워포인트를 만들어 주는 ai도구들이 많다고 들었다. 오랜만의 발표이니 좀 잘해보고 싶어서 처음에는 외부의 전문인력들한테 파워포인트 작업을 맡기려고 했더니 비용이 꽤 비쌌다. 10분 발표하는데 굳이 그런 비용을 들이는 게 필요 없을 듯하여 ai 도구를 활용해 보기로 했다. 개조식으로 만들어진 a4 2장 정도의 한글문서를 업로드하니 금방 결과물이 나왔다. 일부 명확하지 않은 표현이나 디자인, 글씨크기 등을 재차 수정했다. 20번 정도 계속 ai를 돌렸다. 옆의 직원한테 부탁했으면 2번 이상 불가능할 일이었을게다. 편하고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
최근 이슈들을 통해 대략 느끼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발표 준비를 하면서 체험해 보니 놀라우면서도 당혹감이 컸다. 앞으로는 20년, 30년 전문 인력의 경험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겠구나 싶었다. 그 사람의, 혹은 그 분야의 전문지식과 분석, 심지어 지혜도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언변이 좋아 발표를 잘하는 사람, sns와 미디어 등에서 잘 보일 예쁘고 멋진/개성 있는/젊은 사람, ai도구들을 잘 다루면서 콘텐츠를 잘 만들어내는 사람이 전문가로 대접받는 시대가 오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1~2년 차 직원도 데이터를 잘 다루면 전문가 대접을 받는 사회가 곧 오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이미 우리 사회에 성큼 와있는데 내가 이제야 체감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앞으로 내가,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서야 할 자리는 어디일까? 현장의 경험과 지식들이 ai를 넘어서지 못하는 임계점이 오면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ai열풍이 사회 전반을 휩쓴 2025년, 내년에는 더욱 강하고 센 ai 파도가 넘쳐올 텐데 계속 고민이 든다. 이제야 조금씩 배워가면서 현업과 생활에 ai들을 적용해나가고 있는데 저 먼바다에선 이미 큰 쓰나미가 일어나 현실 세계로 몰려오고 있다.
뒤쳐짐과 생존가능성의 부족, data로 구성될 미래가 버겁다.
두렵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