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존댓말은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다. 반대로 반말은 하대하거나 동등하거나 편하게 대해도 되는 상대에게 사용한다. 사회화 코스를 크게 탈선하지 않고 평범하게 거쳐온 한국인이라면 처음 보는 상대에게는 대체적으로 존댓말을 사용할 것이다. 그리고 연인이나 친구처럼 관계가 가까워짐에 따라 딱히 존댓말을 사용하지 않아도 서로를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단계에 도달하면 친밀감을 느끼기 위해 반말을 사용하게 된다. 이때의 반말은 초면에 다짜고짜 내뱉는 무례한 반말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게 되어 마음을 놓게 되는 편안함의 표현에 가깝다.
20년간의 사회생활을 거치며 나는 이 안전한 반말이 허용되는 단계에 대한 기준이 비교적 높은 타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 만남부터 말을 놓으려 하거나 아직 충분히 관계가 친밀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은근슬쩍 반말을 꺼내면 명확하게 불편하다는 의사를 표현하는 편이다. 물론 충분히 친밀해졌다고 생각하는 상대가 반말을 시도하는 것은 나이나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그래서 반말을 트는 것으로 시작해서 관계의 거리를 빠르게 좁혀 나가고 싶어 하는 타입과 만나면 양쪽 다 힘들어진다.
그래도 꾸준한 노력으로 야만인 수준의 사회성 단계는 넘어섰기에 반말을 허용하는 상대는 많다. 주관적인 기준이기는 하지만 꽤 많다. 진정으로 희귀한 것은 나도 반말을 하는 관계다. 웬만큼 가까워진 상대라고 해도 반말을 하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다. 반말을 꺼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상대를 덜 존중하게 되거나 하대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좀처럼 반말을 할 수가 없다. 말을 놓을까를 고민하는 상대라면 이미 상당히 가까운 관계이기 때문에 더욱더 조심스럽다. 그래서 인생을 망칠 뻔한 위기를 서너 번 정도 함께 넘어간 전우 정도쯤 되지 않는 이상에는 반말을 하지 못한다.
현재 지구상에 살아있는 사람들 중에서 상호반말을 하고 있는 사람의 수는 한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다. 반말을 허용하는 친밀도의 기준이 평균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고 인지는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다. 반말 정도야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해도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어째서인지 자신은 쉽게 할 수 없는 일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법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반말이 그렇다.
그러니 지금도 앞으로도 충분히 친해진 것 같은데 말을 놓지 않는다고 섭섭해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상심하기 전에 한 번만 설명할 기회를 주셨으면 한다. 단지 내가 겁쟁이라서 그런 것뿐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