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하는 현대인이라면 대부분 육체 피로와 정신 피로를 피해 갈 수 없다. 이 두 가지 피로가 겹쳐서 복합적으로 작용하면 우울, 불안, 분노, 자기혐오, 절망 등의 이젠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증상들이 발현된다. 이것이 단독으로 발현될 때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는데 두 개, 세 개씩 동시에 터지면 감당하기가 어려워진다.
얼마 전 근 며칠 동안 좋지 않은 일이 겹쳐서 일어나고 그 일들이 과거의 나쁜 기억까지 불러내 대여섯 개의 증상이 한꺼번에 터졌던 적이 있다. 아내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퇴근하자마자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어깨 위에 쌓인 천근 같은 감정의 무게를 버티기 위해 온몸에 힘을 주고 꼿꼿하게 섰다. 하지만 그럼에도 버티지 못하고 발끝 손끝이 바들바들 떨렸다. 목 안쪽이 간질간질하며 의도치 않은 소리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고함이 될지, 울음이 될지, 한숨이 될지 예측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 것도 내가 원하는 소리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대 여섯개의 증상이 발현시킨 감정의 농도가 곧 역치를 넘었다. 이제는 더 이상 입 밖으로 나오려 하는 소리를 제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것도 목소리로 토해내어 이 좋지 않은 상태를 명확하게 확정 짓는 것을 허락하고 싶지 않았다.
기어이 학... 하고 뭔가가 튀어나오려는 순간. 나는 고함도, 울음도, 한숨도 부정하기 위해 억지로 다른 소리를 냈다. 그러자 내 목에서 아우우우 하는 늑대 울음소리가 튀어나왔다. 왜 하필 늑대 울음소리였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감정 상태가 목 밖으로 튀어나와 스스로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만 있다면 산비둘기 소리든, 오리 소리든 아무거나 상관없었다.
그때 방 밖에서 나를 따라 아우우 하고 우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한 번 더 울자 아내는 또다시 따라서 울었다. 그렇게 잠시 동안 서너 번을 같이 울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감정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인간 둘이 동시에 아우우 하고 우는 그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놀라울 정도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줬다.
괴롭고 외로워도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 나를 이해하고 있다는 소리의 공명.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도 곁에 있어 주려는 마음. 돌아와도 괜찮은 곳을 알려주는 신호. 확고한 유대의 선언. 그런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따뜻한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스며들어 흔들리던 마음을 다시 안정화시켜 주었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다.
야생에서는 우두머리 늑대가 울면 다른 늑대들이 따라서 운다. 그 연쇄 하울링은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거나 적의 침입을 알리는 등의 의사소통이 목적이라고 한다. 그 의사소통에는 틀림없이 서로에 대한 강한 유대감을 표현하며 너는 고립된 단수가 아니라고 알려주는 효과 또한 있을 것이다. 어떤 생물학적인 근거도 없지만, 분명히 그럴 것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