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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환 Aug 15. 2022

생존형 실전 요리

내가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한 것은 20대 후반 자취를 시작할 때부터였다. 요리의 목적이 처음부터 생존이었기 때문에 요리를 즐길 여유가 없었다. 무조건 적은 비용으로 가성비 높은 요리를 만드는 방법을 찾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식에 집중하게 되었다. 맛이 없으면 먹는 것이 고통이었기 때문에 맛을 개선하려는 노력도 꾸준히 이루어졌다. 그런 수동태 적인 노력으로 익숙한 한식들은 대부분 그럭저럭 먹을만한 수준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파티용 요리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너도나도 예쁘게 꾸민 특별해 보이는 음식 사진을 올렸다. 고급스럽기도 하고 먹음직해 보이기도 해서 나도 한번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막상 하려고 하니 내가 음식을 예쁘게 꾸미는 것에는 딱히 관심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요리하고 남은 재료들이 특별하다 보니 다른 음식으로 회전시켜 소진하는 것도 어려워 보였다. 지나치게 비싼 재료는 ‘이거 사 먹을 바에야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을...’ 같은 척추 반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래서 한번은 해봐야지 해봐야지 하면서도 아직까지 한 번도 시도해본 적이 없다. 생존형 실전 요리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자의 말로 같아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얼마 전 아내의 지인들이 집에 놀러 온 적이 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요리 중에서 제일 자신 있는 경상도식 소고기국밥을 대접하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역시 전문직 도시 여성분들이 모이는 자리에 국밥은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브런치를 주문해 먹었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되었을 때. 지나가는 말로 오늘 눈치 없이 소고기국밥 만들 뻔했다고 농담을 건넸다. 그랬더니 손님들이 몹시 진지한 표정으로 어째서 소고기국밥을 만들지 않았느냐고 항의를 하셨다. 

이러저러한 이유를 설명했지만 손님들은 대부분 1인 가구인데다 출퇴근을 하기 때문에 집밥을 차려 먹을 일이 잘 없다며 아쉬워하셨다. 혹시 접대용 요리를 만들지 못하는 나를 배려해 주시는 건가 싶어 눈치를 봤지만 아무래도 다들 진심으로 소고기국밥을 원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다음번에 놀러 오셨을 때는 소고기국밥을 끓여 드리기로 했다. 

구질구질한 나의 생존형 실전 요리로도 손님을 대접할 기회가 찾아온 것 같아 몹시 기쁘다. 다음에 놀러 오실 때는 다들 각오를 하고 오시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소고기국밥을 엄청 맛있게 끓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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