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신론자이지만 옛날부터 ‘신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내린다.’라는 말을 좋아했다. 초자연적인 대 의지가 깔아둔 대전제에 의해 어떤 괴로운 일이 일어나더라도 감당해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 가면서 점점 그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너무나도 큰 시련을 감당해내지 못하고 결국 쓰러져가는 사람들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내 삶에도 무수히 많은 시련이 내려왔었다. 그중에서 도저히 감당해낼 수 없을 것 같은 대형 시련이 내려올 때마다 마침내 내 차례가 왔구나 하는 참담함을 느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시련을 넘어설 수 있었다. 이제 꼼짝없이 죽었구나 싶을 때마다 누군가가 와서 도와줬기 때문이었다.
가까운 사람이 도와줄 때도 있었지만 처음 보는 사람이 도와줄 때도 있었다. 아무런 맥락도 없이 불쑥 등장하여 도움을 주고 가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도움으로 위기를 넘기고 나면 ‘다... 당신은 혹시 신 입니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 정도로 경이로운 감사함을 느낀다.
나는 여전히 무신론자이다. 하지만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타인의 모습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신의 정체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은 틀림없이 타인에게 깃드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위기의 순간마다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민 타인들의 감사함을 항상 잊지 않는다. 타인을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최대한 돕고자 노력한다. 어쩌면 나도 누군가의 신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