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즐거움
얼마 전 아내가 어두운 표정으로 집에 돌아왔던 적이 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퇴근길에 다이소에 들렀다가 다른 손님이 선반에 올려놓은 케이크 상자를 모르고 쳐서 떨어트렸다고 했다.
케이크의 주인은 이십 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여자분이었는데 들으라고 하는 혼잣말로 “짜증 나! 짜증 나!”를 연신 중얼거렸다고 한다. 아내는 일단 사고를 냈기 때문에 어떻게든 보상을 하기 위해서 인근 빵집에 가서 다른 케이크를 사오겠다고 말했으나, 그분은 이 주변에 맛있는 케이크 가게가 없다며 거부하고는 남자 친구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어떤 사람이 케이크를 떨어트려서 짜증 나 죽겠다고 한참 이나 통화를 했다고 한다.
아내는 죄인처럼 주눅이 든 표정으로 그분이 통화를 끝낼 때까지 한참이나 우두커니 그 옆에 서 있다가, 그분이 전화를 끊은 후 에야 케이크 값 전액을 현금으로 보상하는 조건으로 겨우겨우 그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근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케이크 주인한테 당한 처사가 너무나 모욕적이고 서러워서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고 울적해졌다는 것이다. 나는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 만신창이가 되어 집에 돌아온 아내를 달래며 케이크 상자를 열어보았는데, 티라미수로 추정되는 케이크가 원래 형태를 추정하기 힘들 정도로 곤죽이 되어 있었다(아마도 살아생전에는 동그란 형태였 겠지…). 그 처참한 케이크를 본 아내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지길래 나는 애써 웃으며, “이왕 생긴 케이크 이니 맛있게 먹자”고 말하며 먼저 한 포크 떠서 입에 넣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게 맛이 엄청 좋은 것이었다. 그냥 맛이 좋은 게 아니라 진짜 엄청나게 맛이 좋았다. 아내가 위로하기 위해 억지로 맛있는 척할 필요 없 다고 하길래 내가 아니라며 먹어보라고 했더니, 아내도 한번 먹어보고는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감탄했다. 아니 무슨 케이크이길래 이렇게 맛이 좋은 거지 싶어 상표를 검색해봤더니 꽤 유명한 케이크 전문점의 상품이었다. 게다가 놀랍게도 우리 동네에도 점포가 하나 있었다. 지나가면서 자주 보기는 했으나 간판이 너무 수수해서 이렇게 맛있는 케이크를 파는 가게인지 미처 몰랐던 곳이었다. 그렇게 곤죽이 된 티라미수를 주말 동안 다 먹어치우고 또 생각이 나서 새로 하나를 더 사 먹었다(역시 살아생전의 모습은 예상대로 원형이었다).
그 이후로 기념일이나 연휴 때마다 항상 여기서 케이크를 사 먹고 있다. 꽤 많이 사 먹었는데도 질리지 않고 항상 맛있다. 이제는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중의 하나가 되었다. 아마도 아내가 그날의 그 모욕적이었던 사건을 겪지 않았더라면 평생 이 맛을 모르고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런 고통스러웠던 경험이 이런 반영구적인 즐거움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몹시도 아이러니하다. 그날 아내가 만났던 그 케이크의 주인은 어쩌면 우리에게 새로운 맛 의 세계를 알려주기 위해 찾아온 케이크의 요정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