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환 Dec 15. 2020

로즈메리 일병

아끼던 생물의 죽음

군 생활을 하던 시절에 내 보직은 행정병이었다. 어느 부대나 마찬가지겠지만 내가 근무하던 곳도 사람은 부족한데 업무는 과도하게 많아서 매일매일 야근을 하며 쉴 새 없이 워드프로세서로 문서를 찍어내야 했다. 


어느 날 내가 근무하던 부서를 총괄하던 간부 장교가 그런 내 모습이 딱해 보였던지 휴가를 다녀오면서 선물이라며 조그만 로즈메리 화분 하나를 건네주었다. 평소 허브에 대한 로망도 있었고 로즈 메리 자체가 워낙 향이 강한 허브라 대단히 기분이 좋았다. 


즉시 로즈메리에 이름표를 붙여주고 선물 받은 날짜를 부대 전입일로 계산해서 계급도 부여하였다. 육군 규정에 의한 진급 날짜가 될 때마다 계급장을 바꿔서 붙여줄 정도로 로즈메리를 극진히 대우하며 보살폈다. 내가 상병쯤 되니 로즈메리는 일병이 되어 있어서 신병이 전입해 올 때마다, 


“이 식물이 너보다 계급이 높단다” 


하고 신병들에게 소개해주곤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부대에 로즈메리 일병보다 계급이 낮은 인간 병사들이 잔뜩 늘어났을 무렵, 한겨울에 일주일 동안 추위를 견디는 훈련을 하게 되었다. 행정병도 훈련에 열외가 없기 때문에 나도 당연히 일주일간 산 에서 먹고 자며 지냈다. 로즈메리 일병이 걱정되긴 했지만, 허브가 일주일 물 안 준다고 죽거나 하진 않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훈련을 마치고 부대에 복귀한 나는 충격적인 현실을 마주하고 말았다. 로즈메리 일병이 얼어 죽어 있었던 것이다. 일주일 동안 난방을 전혀 하지 않은 사무실 창가의 추위가 생각보다 혹독했던 듯했다. 진한 녹색으로 빛나던 잎이 거무죽죽하게 죽어 있는 모습을 보니 너무 가슴이 아프고 괴로웠다. 


혹시나 해 난로 옆에 가지고 가서 물도 주고 이것저것 애써봤지만 로즈메리는 끝내 살아나지 못했다. 워낙 정성 들여 키우던 식물이라 그런지 그렇게 로즈메리 일병이 죽고 난 후 나는 우울증을 앓게 되었다. 밥도 잘 안 먹고 표정도 어둡고 간부가 불러도 대답도 잘 안 하고. 아마도 심각해 보이는 상태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보다 못한 간부가 새 걸로 하나 사 준다고 얘기했는데, 사실상 그 로즈메리가 아니면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사주지 않아도 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간부는, 


“ㅋ 너 여자같이 왜 이러냐?” 


라고 말했고, 그 말은 나를 몹시 화나게 하였다. 


‘그게 여자랑 무슨 상관이야! 

로즈메리가 죽었는데! 

그게 여자랑 무슨 상관이냐고!’ 


하지만 세월이 약이라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는 다시 마음의 안정을 되찾게 되었고, 별 탈 없이 무사히 군 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충격이 꽤 컸기 때문인지 나는 요즘도 식물을 키우려고 하지 않는다. 선물을 받으면 어쩔 수 없이 키우긴 하지만, 내가 능동적으로 나서서 뭔가를 키울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동물보다 덜하긴 하지만 어쨌든 아끼던 생물이 죽는 것을 보는 것은 몹시 괴로운 일인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책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