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탈의 나비효과
나는 초등학생일 때부터 안경을 쓰고 싶어 했다. 안경이라는 아이템을 처음 본 순간부터 너무나도 고풍스럽고 멋지고 지적이라 느껴져서 반 아이들이 안경 쓰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너무나도 건강한 안구를 타고 태어난 탓에 내 맨눈 시력은 양쪽 다 1.3을 넘어설 정도로 성능이 좋았고, 이 원하지 않은 건강한 시력은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계속 이어 졌다.
그러던 고등학교 1학년 무렵의 어느 날.
‘아아 나는 이렇게 평생 안경 한번 못 써보고 삶을 마감하게 되는 걸까…’ 하는 실의에 빠져 등교를 하던 길에 땅바닥에 떨어진 안경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하늘에서 나에게 내려준 것처럼 새것같이 깨끗한 안경이었다. 안경집도 없이 이렇게 온전한 상태로 나 혼자 걷고 있는 골목길에 안경이 떨어져 있다는 것이 마치 신의 계시처럼 느껴져 나는 주저 없이 안경 을 주워 들고 그날부터 그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평소 안경을 안 쓰던 내가 뜬금없이 안경을 쓰고 등장하자 반 친구들이 “어? 너 눈 나빴냐?” 하고 물어 보곤 했는데 솔직하게 ‘도수도 맞지 않는 안경을 멋 부리려고 주워서 쓰고 있어’라고 대답하는 게 부끄러워서 “아니 뭐… 허허… 그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 하고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그 안경을 쓰고 다니며 며칠 동안은 분명 몹시 기쁘고 만족스러웠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부작용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단 도수가 맞지 않는 안경이었기 때문에 주변이 잘 보이지 않았고 안경테가 코를 누르고 귀를 압박하는 감각이 몹시 불편했다. 안경을 쓴다는 것이 이렇게 불편한 것 이구나 하는 걸 처음으로 깨달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냐! 나는 안경맨이니깐 견뎌야 해!’ 하는 쓸데없는 각오로 거의 석 달 정도를 버텼는데 그 불편함을 끝내 참지 못하고 결국에는 안경을 버리기로 하였다.
하지만 그때부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안경을 벗었는데도 눈앞의 사물이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하하하…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난 맨눈 시력이 1.3이 라고!’ 하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 했으나 그 시점부터 시력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칠판 글씨가 안 보이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부모님께 솔직히 말하고 안경점을 찾아가 안경을 맞추었다. 주운 안경이 아니라 진짜 내 안경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뭔가 ‘내가 바랐던 미래는 이런 게 아닌데…’ 하는 마음 때문에 영 기분이 찝찝하고 안경 장착감이 유독 더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내가 자초한 덫에 걸려 불편한 안경 착용 생활을 지금까지 거의 20년째 해오고 있다. 몇 달 전 문득 안경이 너무 불편하게 느껴져 라섹이든 라식이든 시력 교정 수술을 해서 안경을 벗어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수술비도 비싸고 수술하는 것도 무서웠지만 각오하고 하자면 못 할 것도 아니었기에 거의 하기 직전까지 갔었다.
하지만 결국 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안경을 벗은 내 모습을 이제는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보통 주변인들 사이에서 순하고 부드러운 인상 이라는 평을 많이 받고 있고 이런 내 인상에 나도 만족하며 살고 있는데 안경을 벗으면 이 인상이 모조리 사라지면서 얼굴이 날카롭고 투박한 인상으로 변해버린다.
그런 인상의 변화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잘생겼다, 패셔너블하다 뭐 이런 미적인 문제가 아니라 안경을 벗은 내 얼굴이 내가 생각하는 내 인상과 너무나도 달라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이다. 그래서 결국 시력 교정 수술은 포기하고 지금 도 여전히 안경을 쓰면서 살고 있다.
가족 중에서 안경을 쓰는 사람이 나뿐인 것을 보면 분명 십 대 때의 그 바보 같은 선택 때문에 안경의 길로 들어선 것이 분명해 보이지만 어쨌든 지금의 나는 안경 쓴 내 얼굴이 꽤 마음에 든다. 여전히 안경은 불편하지만 그것 하나만은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