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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환 Dec 21. 2020

소신을 지키며 산다는 것

존대의 벽

나는 나이 많은 사람이 자기보다 어린 상대에게 나이가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무런 동의도 없이 초면에 반말을 사용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편이다. 그래서 사회생활을 하다가 만나게 되는, 나보다 어리다는 확신이 드는 사람에게 가급적이면 나이를 묻지 않고 존대한다. 


하지만 이게 상대방이 20세를 넘은 성인의 경우에는 크게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은데, 19세 이하의 교복 입은 청소년에게까지 확장하면 누가 봐도 삽십 대 아저씨인 사람이 어린 사람에게 존대하는 상황을 조금 의아하게 여기는 시선이 느껴진다. 


하지만 여기까지도 괜찮다. 그런 시선이 조금 불편 하긴 하지만 손쉽게 튕겨낼 수 있다. 진짜 힘든 구간은 대화의 상대가 10세 미만의 어린이들일 경우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하대하지 않겠다는 소신을 지키기 위해 나는 이런 어린이분들과 대화를 하게 될 때도 존댓말을 사용하는데, 청소년들에게 존대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과도하게 어린 상대에게까지 존대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사회적 프레셔를 느낀다. 


직장동료의 5세 이하 자녀분 얘기를 할 때도, “철수는 건강한가요?”라고 부르면 예의에 어긋나는 느낌이 들어 “철수 씨는 건강 한가요? 철수 님은 건강한가요?”라고 물어보는 편인데 이럴 때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시선이 더욱 더 강하게 느껴진다. 


사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존대하면서도 나 스스로도 좀 어색하고 쑥스러운 감이 있다. 하지만 돌아서서 다시 생각해보면 어린이분들에게도 존대를 잊지 않는 것이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는 자세로서 올바르다는 판단이 들어, “그래! 역시 나는 틀리지 않았어!” 하고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 외치게 된다. 


소신을 지키며 산다는 것은 이래저래 쉽지 않은 일 이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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