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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환 Feb 14. 2021

음악 영향 불균형

듣기 재활 훈련

30대 초반의 어느 날 출근길에 나는 듣고 있던  MP3 플레이어를 조금 괴로운 마음으로 껐다. 랜덤 재생으로 나오는 곡들이 전부 다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겨웠기 때문이다. 


200곡 가까이 들어있는 노래들이 어째서 모두 다 지겨워질 수가 있는 것인지 납득이 되지 않아 리스트를 펼쳐서 자세히 검토해봤는데 놀랍게도 90% 이상이 10대 때부터 20대 초반까지 듣던 곡들이었다. 십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음악 취향이 전혀 넓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지겨운 것이 논리적으로 너무나도 당연한 상황이었다.



깨닫는 게 너무 늦긴 했지만 문화생활에 큰 위기가 찾아왔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그때부터 좋은 노래들을 찾기 위해 시간을 쓰고 노력을 했다. 주로 주변 지인들에게 추천을 받거나 음반 순위 같은 것들에 집중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곡도 저 곡도 다 취향에 맞지 않고 듣는 즐거움이 없었다.


물론 노래들에는 문제가 없었다. 문제가 있었던 것은 나였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 음악 취향의 텃밭을 가꾸는 걸 게을리한 대가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서사가 있는 컨텐츠를 편애하듯 좋아했기에 게임, 영화, 만화, 소설 등을 집중해서 즐겼다. 좋은 영화를 발견하면 그 감독의 다른 영화들을 찾아보고 좋은 소설을 발견하면 그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 읽었다. 


하지만 음악에 대해서는 그러지 못했다. 좋은 곡을 발견해도 가수나 작곡가가 누구인지도 알아보지 않고

딱 그 한 곡만을 챙기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음악의 좋음을 이해하는 스펙트럼이 좁은 상태로 긴 세월 동안 고착화되어 이 지경이 된 것이었다. 


그렇다고 듣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보수적인 취향을 최대한 내려놓고 열린 마음으로 이 곡 저 곡을 들었다. 길을 걷다 상점에서 들려오는 곡이나 카페에 갔다가 취향에 맞는 노래가 나오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노래찾기 어플을 돌려서 곡 이름을 알아내 리스트에 쌓아 올렸다. 


하지만 둔감해진 감수성이 노력만으로 예민해질 수는 없었기에 여전히 대부분의 곡들이 귀에 붙지 않았다.


하지만 아예 신경을 안 쓸 때와는 확실히 달라서 가뭄에 콩 나듯 하는 빈도지만 좋은 곡을 발견해낼 수 있었다. 그래서 90%였던 20대 초반에 멈춰버린 음악 리스트의 비중을 70% 정도까지 낮추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나는 음악 취향을 더 넓게 확장하여 이 비율을 지속적으로 낮추고자 하는 야망을 가지고 있다. SNS에 누군가 음악 링크를 올리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우선 들어본다. 유튜브 뮤직의 취향 분석 추천 알고리즘의 도움도 받고 있다.



그렇게 해서 이 노래 정말 좋다 싶은 곡들을 몇 곡이나 찾아냈다. 음악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해질 일은 없겠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내 좁은 스트라이크 존에 꽂힐 수 있는 곡들을 더 많이 발굴해낼 수 있다면 기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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