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누구나 삶의 태도에 대한 이상적인 방향을 잡게 된다. 그리고 그 방향대로 가다 보면 경향성이 생긴다. 그 경향성에 따라 다른 사람들에게 어떠어떠한 사람이라고 인식되기도 하고, 자기 스스로 자신을 어떠어떠한 사람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그에 따라 나다운 생각과 나다운 행동이 결정된다.
하지만 이 나답다 라는 것을 정의 내리는 일은 위험한 구석이 있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나답지 않은 생각이나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 같은 경우에는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상대방에게 예절을 지키는 것이 나 다운 행동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가족에 대해서든, 직장 동료에 대해서든, 지나가는 행인에 대해서든, SNS에서든 항상 이 나다운 행동을 지키지 못한다. 스트레스가 임계점을 넘어가 버리면 인식하고 제어할 사이도 없이 무례한 언행이 튀어나온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난 다음 그런 건 나답지 않은 행동이었다고 괴로워하며 반성한다.
이렇게 나다운 것에 대한 항목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나답지 않은 언행을 하게 되는 빈도수도 증가한다. 따라서 이건 나답지 않다고 괴로워하는 일 역시 많아진다. 이런 수많은 나답지 않은 언행의 결과로 인한 고통스러운 자기반성에 짓눌려 숨쉬기가 힘들어졌을 때. 문득 이렇게까지 나답지 않은 언행을 많이 저지르는 것은 좀 이상하다. 어쩌면 나답다는 정의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미워하는 사람에게도 예의를 지키는 사람이다. 나는 가까운 사람의 성공을 질투하지 않는 사람이다.
내가 세운 나다운 것들의 정의는 다들 이런 식이었다. 뭔가 빡빡하게 세워진 법이나 규칙 같았다. 그어놓은 선을 조금만 벗어나도 경고 등이 켜지는 엄격한 기준이었다. 마치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니 모든 경우에서 항상 지키지 못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인 이상 완벽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의에 결함이 있으니 지금까지 세웠던 모든 나다움에 관한 정의들을 폐기할 수도 없었다. 그런 일을 저지르면 더 나은 삶에 대한 태도를 추구하기 위한 방향성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타협안을 만들었다. 그것은 나다움의 정의를 좀 더 느슨하게 세우는 것이었다.
예전의 나다움이 ’나는 지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같은 식이었다면 수정한 나다움은 ’나는 대체적으로 지각을 하지 않지만 어쩌다 한두 번씩 늦을 때도 있는 사람이다.‘같은 식이었다. 이렇게 나다움에 대한 정의를 느슨하게 열어두면 법망을 이리저리 피해 가며 자기부정이 쌓이는 일을 줄일 수 있었다.
바야흐로 정체성, 자아, 개성 등 나다움이 강조되고 있는 시절이다. 이런 건 나 다운 행동이다, 이런 건 나답지 못한 행동이다 같은 말도 많이 들린다. 혹시라도 나다운 것들에 대한 정의를 나처럼 빡빡하게 세웠다가 어길 때마다 자기부정의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다면 내 경험이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