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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환 Nov 25. 2020

사자후 아주머니

사회적 시선의 무서움

우리 동네에는 ‘사자후’ 아주머니가 있다. 성함이 사자후이신 건 아니고 내가 붙인 별명이다. 사자후 아주머니께서는 주로 토요일이나 일요일 아침에 쩌렁 쩌렁 울리는 함성과 함께 등장하셔서 벽이 떨리는 착각이 들 정도의 큰소리로 이웃 주민들과 말다툼을 벌인다. 하지만 그렇게 목소리가 큼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싸우는지는 알 수가 없다. 발음이 부정확한 데다, 말을 너무 빠르게 하셔서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식별하기 어려운 발음임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성량 때문에 말로 하는 전투에서는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상대방이 뭐라고 항변하려 해도 사자후에 묻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끝까지 이어갔을 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전혀 들리지 않는다. 


간혹 2 대 1이나 3 대 1로 싸우실 때도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전혀 밀리는 법이 없다. 누가, 어느 타이밍에, 무슨 말을 하더라도 모두 다 사자후의 쩌렁쩌렁한 울림에 묻혀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주중에 쌓인 피로 때문에 주말 아침에는 항상 늦잠을 자곤 하는데 사자후 아주머니가 등장하신 이후부터는 늦잠을 잘 수 없었다. 주말 아침마다 다투는 소리에 일찍 깨다 보니 귀는 귀대로 아프고 잠은 잠대로 부족 해져서 꽤 스트레스가 쌓였다. 항의하러 갈까 하는 충동이 종종 들었지만 결국 발이 움직인 적은 한 번 도 없었다. 산전수전 다 겪으신 동네 토박이 중년분 들도 속수무책으로 당하시는데 겨우 나 따위가 가서 어떻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영혼을 울리는 사자후 때문에 일찍 눈이 떠 졌다. 말다툼의 양상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자후 아주머니의 압도적인 승리로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동네 말다툼의 역사를 뒤집는 결정적인 대사 한마디가 꽂혔다. 


그 결정적인 대사는 


“으이그, 아줌마. 동네에서 아줌마보고 다들 뭐라 하는지 알아요?” 


그 말이 꽂힌 후 사자후 아주머니는 크게 동요했다. 공세를 멈추고 사람들한테 나보고 뭐라 하느냐고 따져 묻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됐어요”라고 말하며 혀만 찰 뿐, 아무도 정확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거의 울부짖는 듯한 목소리로 따져 묻던 사자후 아주머니는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무패를 자랑하던 사자후 아주머니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 사건 이후로는 주말이 되어도 사자후 아주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마음의 상처를 받아 위축되신 건지 이사를 하신 건지 아니면 설욕을 위해 폐관 수련에 들어가신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 사건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나타나신 적이 없다.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었던 압도적인 힘을 가진 절대강자가 단지 그 말 한마디에 무너져 자취를 감추게 되다니. 사회적 시선이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싶은 큰 깨달음을 얻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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