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소신껏 한 쪽길을 선택했고 후회는 없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노래와 시가 있다. 반면에 그때 내가 선택한 길이 아니라 다른 쪽 길을 갔다면 그 이후의 삶이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가정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도 많다. 나는 어느 쪽이냐 하면 어느 쪽도 아니다. 내가 선택했던 길에 대해 딱히 소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길을 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미련 같은 것도 없다.
지금의 나를 이 상태로 이 자리에 있게 만든 과거의 중요한 선택들을 돌아보면 주로 무엇을 좋아했는지가 끼치는 영향이 가장 크다. 유년기의 나는 게임에 푹 빠졌었다. 그리고 만화, 영화, 소설 등 이야기 컨텐츠를 항상 목마른 사람처럼 찾아 다녔다. 그 모든 선택의 결과 지금 게임 업계에서 게임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고 있다.
직업과 관련된 가지 않은 길을 가정해본다면 분명 게임이나 만화, 영화, 소설 등을 좋아하지 않고 다른 걸 좋아하는 선택을 한 상황일 것이다. 과학에 깊이 빠졌었다거나, 축구를 좋아했다거나, 장사에 관심을 가졌다거나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선택했던 것 이외의 다른 것을 좋아했을 경우에 대한 가정을 할 수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상황에서 그 상태였던 내가 그것 외에 다른 것을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유년기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게임을 처음 접했을 때의 그 강렬한 매력을 외면할 수 있는 선택지 같은 것은 없다. 게임을 만난 이상 그것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 만화, 영화, 소설 등도 마찬가지다. 그 시절 그것들에 맹목적으로 빠졌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고(학력이나 자격증 같은)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어떻게든 먹고 살아보려고 아등바등 하다 보니 이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다. 선택지가 하나 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선택을 했다기 보다는 선택을 당했다 라고 표현하는 쪽이 더 어울릴 지도 모른다. 이 직업 선택에 대한 예시는 삶을 이루고 있는 다른 모든 부분에서도 동일하게 작용한다.
그 당시에 그렇게 만난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 당시에 그렇게 만난 그 노래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 당시에 그렇게 만난 그 책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삶의 방향을 결정했던 모든 결정적인 순간들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인생의 기로에서 이 길을 선택했다는 것에 대한 소신이나 자부심 같은 것이 없다. 반대로 그때 그 길이 아니라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미련도 없다. 몇 번을 다시 과거로 돌려 놓는다 하더라도 나는 항상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나에게는 가지 않은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