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에서 서른 다섯의 내가 스물하나의 나를 추억하다가
오랜만에 독수리 다방에를 왔다.
연대를 다니던 대학생일때 종종 공부를 하겠다고 비장하게 가장 친한 친구와 독다방에 앉아 큰맘먹고 미숫가루 쉐이크를 시켰다.(그때도 학생에게 미숫가루 쉐이크는 비쌌다) 물론 막상 공부는 몇분 못하고 수다로 이어지곤 했다. 아마 주로 학교 생활과 관련된, 수업에서 있었던 일, 이번 학기 성적, 선배와 동기들 얘기-누가 누구와 연애를 한다더라- 그리고 나와 내 친구의 연애 얘기였을 것으로 기억한다.
그 수많은 이야기의 스토리와 나를 비롯한 주인공들이 누구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이것 하나는 확신할 수 있다. 그 모든 이야기에서의 나는 매우 서툴렀고, 서둘렀고, 어리숙했고, 그래서 힘겹고 아팠을 것이라는 걸. 20대 초반, 모든 것이 어설프고 서툴렀을 시기였기 때문이다. 잘 모르는 것이 당연했던 그 시절. 성인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사랑이든, 공부든, 인간관계든 하나하나 직접 겪어보며 눈물을 흘리고, 후회하고 알아갔어야 했던 그 시절. 결과를 생각하고 고민해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고싶은 대로 해도 누가 크게 뭐라하지 않던 시절.
주로 그런 얘길 할때는 독다방의 테라스에 나갔었던 것 같다. 뻥 뚫린 학교의 전경을 보며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닌 고민과 감정을 친구와 심각하게 논의하던, 그리고 결국 내가 하고싶은대로 할게, 하고 또 후회하던 그 때 스무살 초반의 나.
지금 이 독다방 테라스 자리에 다시 서있는 나는 지금 서른 다섯살이다. 약 15년의 시간이 지나고 지금의 나는 스물 한살의 나와는 꽤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 동안 굵직굵직하게 많은 일이 있었다. 학교를 졸업했고, 취직을 했고, 이직을 했고 이사도 했다. 몇 명의 남자친구를 사귀고 헤어졌고, 한때 너무나도 가까웠다 이젠 연락조차 하지 않도록 멀어진 친구들도 생겼다. 주위 사람들은 꽤 많이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고 아이를 얻었다. 그들은 서울에 집을 사기도 하고, 사업을 하기도 하고, 공부를 더 하겠다고 해외로 나가기도 했다.
강산이 1.5번 변할만큼의 시간-15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며 내가 얻은 건 경험을 기반으로 한 책임감이다. 아주 조금의 철이 들었다고 해야할까. 나의 모든 선택은 내가 결정한 것이며, 그 후의 결과 또한 내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불나방처럼 하고싶은대로 모든 것을 저지르지 않는다. 이제 인생을 받아들이는데 있어 더이상 서투르고, 어리숙하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변명을 하면서 면피하기에는 민망한, 그러기엔 꽤 많은 나이이니까.
독다방 테라스에서 오랜만에 그 당시 가장 즐겨듣던 10cm의 2집 앨범을 듣는다. 당시 누군가와 헤어지고 반복재생하던 노래가 나온다.
그 때가 너무 그립다. 내 감정에 충실했던 그때가. 실수하는게 당연한 것이었던 그때가. 스스로 맘껏 후회하고 고민하고 울고 불고 하면서 하나하나 배워갔던 그때가. 철이 들지 않아도 용서 되었던 그 때가.
가끔 그때처럼 무모하고 싶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러기엔 이제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고, 여전히 정신차리지 못했냐며 비난받기 쉽다는 것을 바로 떠올린다.
앞으로의 삶은 더더욱 책임감과 무게로 가득차 있겠지, 라는 생각을 한다.
그립다, 독다방에 서있던 내 스물 하나.-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