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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래불사춘 Mar 17. 2021

이제, 쿠킹 클래스는 아빠랑 하는 걸로

잠자고 있던 요리 본능을 깨워


아이는 이미 실망한 기운을 온몸으로 내뿜으며 교문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축 처진 어깨를 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땅만 바라보면서. 아빠를 보자마자 서러운 마음에 참았던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입학 일주일이 지나자 방과 후의 특성화 교육이 시작되었다. 요일별로 개설된 여러 과목들 중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신청해 었다. 딸아이는 월요일엔 마술, 화요일은 주산으로 배우는 수학, 수요일은 클레이아트, 금요일은 역사체험 논술을 선택했고 무리 없이 각 과정에 배정되었다.


문제는 목요일의 쿠킹 클래스였다.

사전에 신청자가 많을 경우 추첨으로 결정한다는 고지가 있었다. 경쟁률은 3대 1 정도였고 아이가 직접 O, X가 적힌 종이를 뽑는 것으로 당첨과 탈락이 결정되었다. 잔인하게도 교실에 신청자를 모아 놓고 당첨된 아이는 그대로 남아 수업에 참여하고 탈락한 아이는 바로 집으로 돌아가는 방식이었다.


덕분에 결과를 미리 알 수 없었던 나는 아이가 탈락할 것을 대비해 두 시간이나 먼저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즉석에서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에 딸아이는 떨리는 마음으로 종이를 뽑았을 것이고 그 안에 적혀 있는 것이 X라는 것을 확인했을 때, 인생이 온전히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달래기가 쉽지 않았다. 실력이나 능력이 아닌 운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라고. 누구도 떨어질 수도 있고 오히려 공정한 선정방식이라고 얘기해 주었으나 딸아이는 여전히 침울한 상태였다. 첫 시간에 컵케이크를 만든다는 얘기를 듣고 잔뜩 기대를 한 터라 아쉬움의 눈물은 계속 흘러나왔다.


집에서 아빠랑 만들어보면 어떨까


한마디에 아이는 나를 올려다보며,


"컵케이크 만들 수 있어?"


컵케이크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집에는 오븐이 없다. 그렇지만 목요일만 일찍 하교하게 되었으 매주 목요일 다른 날보다 시간이 많을 때 다양한 요리를 번갈아 가며 아이와 함께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아이는 그제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눈물을 그치고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컵케이크는 어려우니 된장찌개는 어떨까?"


"좋아"


우리는 매주 목요일 요리 두 가지씩 집에서 만들어보는 우리만의 쿠킹클래스를 열기로 합의했다.

대망의 요리 된장찌개를 위해 재료를 검색한 뒤 집에 있던 된장, 고추장만 빼고 감자, 두부, 애호박, 고추, 버섯, 양파, 차돌박이를 마트에서 사 왔다. 멸치로 국물을 우려내고 된장, 고추장을 푼 뒤 끓는 물에 재료를 차례대로 넣으니 금세 먹음직스러운 된장찌개가 완성되었다.  아이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느릿느릿 칼질도 해보고 끓는 물에 재료를 차례차례 풍덩 빠뜨려 보기도 하는 것이 재밌었는지 요리하는 내내 싱글벙글했다. 우리는 첫 요리의 성공을 자축하며 다음 요리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였다.




휴직을 하고 전원주택으로 이사 오면서 해보고 싶은 것 중 하나가 요리였다. 나는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운 좋게도 군 복무 중 하나의 국가자격증을 취득할 기회가 주어졌고 선택할 수 있는 것 대부분을 차지했던 중장비 자격증보다는 요리 자격증이 실생활에 가장 쓸모가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군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계급이 낮을 때 무려 3주간이나 교육위해 부대를 떠나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지 알 것이다.


요리 실습 중 내 요리는 맛에 비해 데코레이션이 좀 약하단 평이 있었지만 칼국수와 보쌈김치를 만들어내는 실전에서는 무난하게 합격했다. 전역 직후에는 갈비찜, 닭볶음탕 등 나름 솜씨를 드러내는 요리도 가족들에게 가끔 선보이곤 했지만 이후로 을 놓은 지가 십수 년이었다.


전원주택에 살게 되면 누구나 주말 저녁 지인들과 함께하는 바비큐 파티를 상상한다. 그렇지만 고기만 달랑 굽기는 뭔가 심심하다. 메인디쉬 격이 되는 다른 요리들도 몇 가지 할 줄 알아야 구색이 갖춰진다. 또 항상 주말 저녁에만 손님들이 오지는 않을 것이고 평일 브런치 타임에 찾아오는 이를 위해 파스타 두세 가지는 뚝딱 내놓을 수 있어할 것이다.


확실하게 다시 요리할 이유를 만들어준 딸아이에게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든다. 된장찌개부터 시작하여 김치찌개, 파스타, 갈비찜. 닭볶음탕, 컵케이크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딸아이와 함께하는 쿠킹클래스에서 시도해 봐야겠다. 요리 과정을 동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리자며 오프닝 구호를 고민하는 딸아이의 손을 잡고 마트를 향하는 발걸음이 유난히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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