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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래불사춘 May 18. 2021

완벽에 가까운 이웃이 생겼다

마지막 한 조각의 퍼즐이 완성되던 날


오랜만에 지인들의 안부를 물어보았다. 나는 좀 뜸했거나 다소 소원해진 사이였어도 다시 먼저 연락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성격인 터라 곧 다가올 아내의 행사 홍보겸 여러 명에게 카톡을 보냈다.  근황을 물어보는 말로 던져 놓은 카톡들에 하나씩 답변이 오기 시작했다.


'잘 지내.'

'그저 그래.'

'항상 똑같지 뭐.'

'요즘 좀 힘들어.'


이런 류의 비슷한 답변들이 달렸고 그 밑으로 모두가 공통적으로 덧붙인 말.


춘천 생활은 어때?




두 달쯤 지난 춘천 생활을 돌아본다. 3월 1일 폭설을 맞으며 강원도로 이사를 온 후 한 달은 정신이 없었다. 짐들과의 전쟁이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짐들,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마구잡이로 쑤셔 넣어진 물건들에 약간은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아이들 등교 등원시키고 아내를 회사에 내려주고 돌아오면 집안일, 짐 정리는 오롯이 내 몫이 된다. 처음이라 아파트와 비교되는 단점들이 먼저 보이기도 했이사한 것이 옳은 선택이었나 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안정은 찾아왔다. 짐 정리를 틈틈이 해가며 나의 스케줄은 나름 짜임새 있게 정리되었고 춘천이라는 도시에, 전원주택이라는 주거환경에, 육아휴직이라는 생활환경에도 차차 적응이 되어갔다. 집이 대충 정리된 4월 중순부터 사람들이 집에 놀러 오기 시작했고 한결같이 집에 대한 찬사를 보내주었다. 아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환경이라며 벌써 두 번 이상 다녀간 사람도 있었다.


춘천은 좋은 도시였고 주택도 만족스러웠다. 휴직 생활도 즐거웠다.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요리를 하고 아이들과 도서관, 박물관, 놀이터를 다니는 일상은 휴직을 충분히 의미 있게 만들어 주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이사 오기 전부터 가졌던 '좋은 이웃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아직까지는 실현되지 못한 것이었다. 두 달이 가까이 지난 일요일 오후에 열두 집이 모여 있는 우리 동네에 드립 커피 선물세트를 들고 집집마다 인사를 했다. 몇 집은 부재중이어서 만나 뵙지는 못했지만 대부분의 집들의 주인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크게 아이를 키우는 집과 그렇지 않은 집으로 나뉘었다. 초등학생 이하의 아이들을 키우는 집이 절반, 장성한 자녀들과 따로, 은퇴 즈음의 나이에 부부 위주로 사는 집이 절반쯤 되었다. 특이하게 열두 집 중에 대학교수가 세 명이나 있었다. 일부는 이미 골프 라운딩을 함께 다녀왔다고 하고 아이 있는 집들은 지난가을에 핼러원 파티를 함께했다고 한다. 특히 한겨울 폭설에 제설작업을 함께한 전우애로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그냥 좋으신 분들이 아닌 그 이상으로 마음을 나눌만한 이웃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한 집 한 집 문을 두드리고 잠깐의 대화를 나눴다. 사람들의 반응은 조금씩은 달랐다. 심지어 약소한 선물이나마 받는 것을 꺼리는 사람도 있었다. 건조한 반응을 보이는 분들께는 더 다가갈 틈이 없었다. 대체로 아이 있는 집들에서 적극적으로 환영해 주었고 그중에 한집. 우리가 바라던 그런 이웃을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야외 테라스에서 지인들과 막 바비큐 파티를 시작하려던 그 집의 부부는 사람과 만남 좋아하는 것이 첫눈에 딱 보일 정도였다. 이미 이사  때부터 알고 있었다며 우리에게 관심을 보여 주었고 집 구조도 자기네와 비슷하다며 동질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아빠끼리 나이도 동갑이었고 그 집의 둘째와 우리 첫째는 같은 학교 옆반이었다. 대학교 캠퍼스 커플로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는 그들 부부는 너무나 내가 원했던 이상적인 이웃이었다. 게다가 춘천 토박이어서 춘천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쭈뼛쭈뼛 다가간 낯선 이에게 그 정도의 환대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아내에게 연락처를 먼저 물어보며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는 제스처에 '아 찾던 집이 바로 이 집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식사에 방해가 되지 않게 급히 인사를 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바로 아내에게 커피 감사하다는 연락이 왔다. 춘천의 한 대형마트에서 장난감 카페를 운영한다는 아내의 말에 다음날 근처에 마침 갈 일이 있어 그 가게를 찾아갔다. 역시 시원시원한 성격에 사람에 대한 존중과 유머러스한 태도를 가진 사모님과의 대화는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주었다. 또 다음날은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에 그 집 아빠가 우리집으로 찾아와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눴다. 그는 진솔함이 있는 사람이었다. 대화를 할 때 부족한 부분이나 어려움, 실패에 대해 거리낌 없이 공유하는 사람을 나는 좋아한다. 부부 각각 잠깐씩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니 더 많은 것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과 뜻 모를 설렘이 생겼다. 이것은 아주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유형의 사람을 알게 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이었다. 다음에는 집에 초대해서 술을 한잔 곁들이며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다. 급할 땐 서로의 아이들을 돌봐 줄 수도 있고 등굣길도 돌아가면서 데려다 줄 수 있겠다. 시골에서 보내온 넉넉한 음식이나 대량으로 구입한 채소를 나눌 수도 있다.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어버이날, 서울의 처가에 들르기로 한 전날 밤이었다. 몸이 제법 피곤했음에도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그렇다고 짜증이 나거나 이런 게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첫 소풍을 앞둔 초등학생 아이 마냥 설렘에 잠을 이룰 수 없는 상태였다. 한껏 들떠 있는 상태로 여기 춘천, 이 집에서 펼쳐질 생활에 대한 상상으로 긴 새벽을 보냈다. 완벽에 가까운 이웃을 만난 것도 물론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만 그 자체보다는 춘천 생활이 다운에서 업으로 올라오는 시기에 마지막으로 채워지지 않았던 퍼즐 한 조각이 마침내 맞춰진 것이 트리거가 되어 이 밤을 붙잡아 놓은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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