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항상 아빠만의 초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셨다
아빠는 딸 앞에서 늘 초능력자였다
집안이 떠나가라 아빠를 찾던 시절이 있었다.
늘 반 박자씩 늦게 반응하던 아빠.
조금 기다리다 보면
‘왜 이렇게 불러 싸?'라며 등장하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씩-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내리며
퉁명스럽게 이것저것
아빠한테 주문을 했다.
유치원 때였다.
친구들이 알록달록 색칠 공부하는
책이 부러워서 잔뜩 심통이 났었다.
'아빠, 나는 왜 색칠공부 책 없어?'라며
씩씩 거리다 분에 차 울어버리는 나.
아빠는 차분하게 나를 토닥여주며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한참을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또 '아빠'를 시전 할 때.
아빠는 내 성화에 못 이겨
종이 한 뭉치와 함께 방에서 나오셨다.
'자 색칠 공부해'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로 가득 찬 종이들.
신난 마음에 아빠가 건넨 종이를 꽉 껴안았다.
따뜻했다.
'아빠, 이거 어디서 났어?'
'아빠가 직접 그렸지~'
아빠가 직접 그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온 세상을 가진 기분이었다.
들뜬 마음에 아빠한테 이것저것
그려달라고 부탁했던 기억이 난다.
이때부터였을까?
아빠를 찾는 습관은
20대가 돼서도 바뀌지 않는다.
아무래도 아빠의 초능력에 중독된 것 같다.
'다른 사람이 볼 땐 어떨지 몰라도,
우리 딸들이 내 눈에 제일 예뻐'
'아빠 눈에만 그렇지'라며
퉁명스럽게 말하곤 하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아빠는 미소를 선물하는 초능력이 있다.
'이 길이 맞는 걸까'라는 기분이 들 때면
아빠에게 늘 전화를 걸곤 한다.
'아빠, 나 이번에 회사 들어가는데
연봉을 300 이상 깎고 들어간다. 괜찮은 걸까?'
안 괜찮은지 알면서 물어보는 말에
아빠는 나의 상한 마음을 단번에 바꾼다.
'네가 배울 수 있는 곳이면 된 거야.
너처럼 딱딱 알아서 회사 찾아가는 사람도 드물어.
그리고 집 앞이면 교통비도 안 들고 좋지~ 뭐'
'맞아. 그렇지'라는 생각이 들며
마음을 고쳐 먹는다.
오래 다녔던 직장을 퇴직하셨을 때,
힘없어 보이던 아빠를 기억한다.
그때 내가 대학교 3학년,
동생은 아직 대학교를 들어가기 전이었는데
예상보다 빠른 퇴직에 많이 힘드셨던 것 같다.
계속 집에만 계시는 아빠를 보며,
밖으로 내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아빠를 밖으로'라는 단편 영화를 제작한 적이 있다.
그 영화를 제작하며,
아빠와 많은 대화를 나눴었는데
한 번은 내가 아빠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빠, 나한테 아빠가 언제 필요한 것 같아?'
한참을 고민하던 아빠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 딸 결혼할 때? 아빠가 손잡고 들어가야지'
'아니야, 항상 필요해. 항상'
아빠는 퇴직한 순간 조차도,
가족 걱정만 하셨다.
딸 결혼식 비용, 우리 가족의 생활비,
두 딸의 학자금
아빠의 '책임감'이라는 초능력은
때론 죄송스럽고, 마음 아프기도 하다.
딸들이 고민에 빠졌을 때,
문제에 빠졌을 때 아빠의 초능력은 항상 발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