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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잎 Sep 04. 2020

딸 앞에서 만렙되는 아빠의 초능력

아빠는 항상 아빠만의 초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셨다

아빠는 딸 앞에서 늘 초능력자였다


'아빠!!!!! 아~~~~ 빠!!!!!! 아빠~~~'


집안이 떠나가라 아빠를 찾던 시절이 있었다.

늘 반 박자씩 늦게 반응하던 아빠.

조금 기다리다 보면

‘왜 이렇게 불러 싸?'라며 등장하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씩-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내리며

퉁명스럽게 이것저것

아빠한테 주문을 했다.


유치원 때였다.

친구들이 알록달록 색칠 공부하는

책이 부러워서 잔뜩 심통이 났었다.


'아빠, 나는 왜 색칠공부 책 없어?'라며

씩씩 거리다 분에 차 울어버리는 나.

아빠는 차분하게 나를 토닥여주며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한참을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또 '아빠'를 시전 할 때.


'아빠!!!! 아~~~ 빠~~~ 왜 안 나와?'

아빠는 내 성화에 못 이겨

종이 한 뭉치와 함께 방에서 나오셨다.


'자 색칠 공부해'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로 가득 찬 종이들.


신난 마음에 아빠가 건넨 종이를 꽉 껴안았다.

따뜻했다.


'아빠, 이거 어디서 났어?'

'아빠가 직접 그렸지~'


아빠가 직접 그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온 세상을 가진 기분이었다.

들뜬 마음에 아빠한테 이것저것

그려달라고 부탁했던 기억이 난다.


아빠는 항상 '아빠만의 초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해주셨다.


이때부터였을까?

아빠를 찾는 습관은

20대가 돼서도 바뀌지 않는다.

아무래도 아빠의 초능력에 중독된 것 같다.




[아빠의 초능력 n번: 미소]

'다른 사람이 볼 땐 어떨지 몰라도,

우리 딸들이 내 눈에 제일 예뻐'


'아빠 눈에만 그렇지'라며

퉁명스럽게 말하곤 하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아빠는 미소를 선물하는 초능력이 있다.



[아빠의 초능력 n번: 긍정 파워]

'이 길이 맞는 걸까'라는 기분이 들 때면

아빠에게 늘 전화를 걸곤 한다.


'아빠, 나 이번에 회사 들어가는데

연봉을 300 이상 깎고 들어간다. 괜찮은 걸까?'


안 괜찮은지 알면서 물어보는 말에

아빠는 나의 상한 마음을 단번에 바꾼다.


'네가 배울 수 있는 곳이면 된 거야.

너처럼 딱딱 알아서 회사 찾아가는 사람도 드물어.

그리고 집 앞이면 교통비도 안 들고 좋지~ 뭐'


'맞아. 그렇지'라는 생각이 들며

마음을 고쳐 먹는다.


[아빠의 초능력 n번: 책임감]

오래 다녔던 직장을 퇴직하셨을 때,

힘없어 보이던 아빠를 기억한다.


그때 내가 대학교 3학년,

동생은 아직 대학교를 들어가기 전이었는데

예상보다 빠른 퇴직에 많이 힘드셨던 것 같다.


계속 집에만 계시는 아빠를 보며,

밖으로 내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아빠를 밖으로'라는 단편 영화를 제작한 적이 있다.


그 영화를 제작하며,

아빠와 많은 대화를 나눴었는데

한 번은 내가 아빠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빠, 나한테 아빠가 언제 필요한 것 같아?'

한참을 고민하던 아빠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 딸 결혼할 때? 아빠가 손잡고 들어가야지'


'아니야, 항상 필요해. 항상'


아빠는 퇴직한 순간 조차도,

가족 걱정만 하셨다.


딸 결혼식 비용, 우리 가족의 생활비,

두 딸의 학자금


그 책임감으로 버티고,

그 책임감으로 털고 일어나셨다.


아빠의 '책임감'이라는 초능력은

때론 죄송스럽고, 마음 아프기도 하다.




딸들이 고민에 빠졌을 때,

문제에 빠졌을 때 아빠의 초능력은 항상 발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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