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초단편zip

구김 없는 사랑

초단편소설

by 차여름

또 아침이 밝았다. 무슨 정신으로 씻고 옷을 입었는지 자각을 못할 정도로 내 몸은 무의식적으로 움직였다. 어제 먹고 남은 오징어볶음을 프라이팬에 데우고 있는데 중학생 딸이 다가왔다.

“엄마, 나 배 아파."

"화장실?"

"똥 마려운 거 아닌 거 같은데."

"학교 못 갈 정도로 아파?"

"그... 정도는 아닌 거 같고..."

"그럼 일단 학교 갔다가 정 아프면 조퇴해."

다 데워진 오징어볶음을 그릇에 옮겨 담고 시계를 보니 나가야 할 시간이 5분 남았다. 아침 차렸고, 가방 챙겼고, 또 뭐 해 야하지? 아, 남편.

남편은 아직도 코를 골고 있었다. 내가 안 깨우면 어떻게 출근하려나 몰라. 중학교 1학년 딸보다도 한심하다. 회사에 지각하든 말든 무시하고 나갈까 하다가 매번 출근 직전에 엉덩이를 때리며 깨우게 된다. 이게 부부로써의 최소한의 정이겠지.

"어제 늦게 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못 일어나? 출근 안 해?"

남편은 '으으응, 5분만 더 자고 일어날게' 하며 돌아누웠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나는 얘랑 왜 결혼했지?


출근했다. 나는 초등학교 교사지만 초등학교 1학년은 7살과 다름이 없기 때문에 흡사 유치원 교사 같은 느낌이다. 아직 화장실 가서 응가도 닦아 줘야 하고, 물을 쏟으면 내가 닦아줘야 한다.

또 메이가 준비물을 안 챙겨 왔다. 친구들 전부 소고 치는데 너는 뭐 할래? 메이는 다문화가정의 막내인데 엄마 쪽이 한국어가 서툴러서 소통이 잘 안 된다. 몇 번이고 알림장을 문자로 보내주고 전화도 했지만 매번 돌아오는 대답은 시원스러운 '네'였다. 대체 뭐가 알겠다는 건지. 메이는 같은 초등학교에 언니가 있는데 언니는 오히려 엄마보다 의사소통은 더 잘 되는 편이다. 그렇지만 버르장머리가 없어서 나에게 따박 따박 따지기 일쑤다. 메이가 번번이 준비물을 안 챙겨 와서 몇 번 사비로 준비해 줬더니 메이 언니가 하는 말은 '선생님이 사 주면 되잖아요.'였다. 열이 뻗쳤지만 절대로 화를 내거나 화 난 표정을 지어서는 안 된다.

"선생님이 메이 준비물을 매번 사주면 다른 친구들 입장에서는 불공평하다고 느낄 수도 있어. 사지 않아도 집에서 챙겨 올 수 있는 준비물은 직접 챙겨 오는 게 어떨까?"

"몰라요! 우리 집엔 다 없다고요!"

교육비 지원을 받도록 안내문도 몇 번이고 보내줬는데 신청은 왜 안 하는 걸까. 진짜 돈이 없는 건지 방법을 모르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학교 사회복지사는 대체 뭐 하는 거야? 방문상담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선생님! 민혁이가 또 때렸어요!"

민혁이에게 맞은 아이가 한 달 만에 12명을 돌파했다. 어쩜 이렇게 다채롭게도 건드는지. 초1이라서 중1처럼 학폭위가 열리지도 않는다. 이번엔 또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까. 민혁이 부모에게는 몇 번이나 조심스레 이야기했지만 아이들끼리는 싸우고 크는 거 아니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내 마음대로 행동교정 센터에 보낼 수도 없고, 상담을 받게 할 수도 없어서 그저 민혁이를 예의주시 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누가 맞았는데?"

"주연이요."

"주연이가 누구야?"

"1반에 있어요!"

머리가 지끈거렸다. 우리 반도 아니고 이번엔 옆 반이야? 이러면 곤란하지. 우리 반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옆 반 선생님하고도 엮여야 하잖아. 학년부장님이라고...

민혁이를 불렀다.

"민혁아, 1반에 주연이 때렸다며? 왜 때렸어?"

"주연이가 웃어서요!"

"웃었는데 왜 때렸어?"

"기분 나빠서요!"

나도 방금 너 때문에 기분이 나빠졌어.


급식에 미니 팩 주스가 안 나왔으면 좋겠다. 빨대를 뜯어 꽂기가 어려운 1학년들은 선생님이 빨대도 죄다 꽂아줘야 한다. '선생님, 여기 흘렸어요!', '선생님, 더 주세요!', '선생님, 뜯어주세요.', '선생님! 얘가 내 거 뺏어먹어요!', '선생님, 숟가락 떨어졌어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입에 쑤셔 넣고 교실을 돌아다니며 수습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엄마한테 급한 일 아니면 근무 중에 전화하지 말라고 했는데, 급한 일인가?

"어, 엄마."

"느이 아빠가 좀 이상해. 상태가 안 좋아."

"왜? 병원 갔어? 일단 구급차 불러."

"구급차 불렀지. 병원 가긴 할 건데 니가 좀 와 봤으면 해서. “

“지금? 일하는 중인데 내가 어떻게 가?”

“아유, 끝나고 오라는 거지. 근데 좀 더 빨리 올 수 있으면 최대한 빨리 와 달라고.”

“하, 알겠어.”

엄마는 20년째 아빠를 간병하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땐 맞벌이로 같이 고생하셨는데, 내가 성인이 되고 취직을 하니 아빠가 암에 걸리셨다. 다행히 손을 쓸 수 없는 지경까진 아니었지만 암세포가 뇌까지 전이되어 24시간 누군가 간병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빠가 걱정되는 마음은 알겠지만 근무 중인 나를 좀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는데, 아빠까지 들여다보기엔 내가 심적인 여유가 없다. 아, 밥도 똑바로 못 먹었는데 점심시간 5분 남았네. 정리해야지.


퇴근 후 친정에 가 보니 별 일 아니었다. 왜 이런 일로 날 불렀냐고, 병원 다녀와서 괜찮으면 전화라도 한 통 주지 그랬냐고 괜히 엄마한테 성을 냈다. 엄마는 오히려 아빠를 간병하는 본인은 퇴근도 없다며 앓는 소리를 한다. 엄마한테 말해서 뭐 해. 나는 나대로 힘들고 엄만 엄마대로 힘들다고 인정하면 되는데, 엄마는 본인만 세상 모든 힘듦을 짊어지고 있다는 듯이 이야기를 한다. 이러니 친정에만 오면 내가 소모되는 거야.


유독 지친 하루였다.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남편이 TV 보면서 낄낄대는 소리가 들린다. 도어록 누르는 소리를 들은 남편이 소파에서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

“늦었네? 나 배고파, 밥 줘.”

아직 신발도 안 벗었는데 밥부터 내놓으라는 소리를 들으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휴.. 참자. 나도 평소보다 늦게 왔으니 남편이 배고프기도 하겠지.

“오늘 일찍 퇴근했네? 미리 나한테 말이라도 해 주...”

거실로 가며 무심코 솔이 방을 봤는데 솔이가 집에 있었다. 얘가 왜? 학원에 있어야 할 애가 왜 지금 집에 있지?

“뭐야? 너 학원은?”

“아, 내가 가지 말라고 했어.”

TV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이야기하는 남편 목소리를 듣자마자 열이 뻗쳤다.

“엄마, 그게...”

“너는 방에 들어가.”

싸늘한 내 목소리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남편은 몸을 일으켜 나에게로 다가왔다. 대체 왜 다들 나한테만 이러는 걸까. 내가 만만 한 건가, 나한테는 이래도 되는 건가. 아니면 다들 이렇게 사는 건데 내가 꼬이고 꼬여서 이렇게 밖에 못 받아들이는 건가. 내가 만들어 놓은 상식의 선이 너무나도 높고 거대한 벽이라서 다들 그 선을 넘지 못하는 건가.

“뭐가 어려운데 대체! 기본, 상식. 그게 어려워? 학교에 준비물 챙겨 오는 거, 어렵냐고! 친구를 때리면 안 된다, 이게 그렇게 어렵냐고. 아빠가 괜찮다, 나 오늘 일찍 퇴근했다, 한 문장 문자로 남겨주는 거 너무 어려워? 그럼 전화하면 되잖아. 5초면 끝날 이야기잖아. 왜 다들.. 니들은 왜 자꾸 나를 아무렇게나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어려운 거 바래? 말도 안 되는 거 바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기본적인 거 말하잖아, 기본적인 거! 나라고 이렇게 살고 싶은 줄 알아? 애들 코 닦아주고 똥 닦아주고, 아빠를 무기로 전화 한 통만 하면 바로 달려가야 하고, 맞벌이인데 집에 와서도 집안일은 다 내가 해야 하고!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데! 니가 뭔데 애를 학원을 안 보내? 학원을 데려다 달래? 가서 공부를 시켜 달래? 그냥 학원 다녀와라 하면 되는 걸 니가 뭔데 학원을 안 보내 냐고! 적어도 너는 내 편이었어야지, 적어도 너는 나 힘들게 하면 안 되는 거잖아. 집에서도 이러면 나는 대체 어디 가서 긴장 풀고 쉴 수 있는데? 나한테 집이 그런 공간이어야 하는데 너 때문에! 왜 집에서까지 사람 열받게 하냐고!”

하루 동안 말 못 하고 묵혀왔던 감정이 엉뚱한 곳에서 쏟아졌다.


놀란 표정으로 묵묵히 듣기만 하던 남편이 말없이 다가와 나를 꼭 안아줬다.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왔다.

“오늘 힘든 일 많았구나? 울면서 들어봐~ 오늘 오전에 솔이한테 전화가 왔더라고.”

이어지는 남편의 말은 많은 생각이 들게 했다. 솔이가 초경을 시작했고, 울면서 아빠한테 전화를 했다고 했다. 솔이만큼이나 당황한 남편은 바로 반차를 내고 편의점으로 뛰어가 편의점 주인한테 물어봐가면서 생리대를 사서 솔이를 데리러 갔다. 그 와중에 초경하면 꽃 선물 줘야 한다고 꽃집에 들렀다고 했다. 어쩐지. 솔이 책상 위에 대왕 꽃다발이 있었다.

“저렇게 큰 꽃을 샀어?”

“응.”

“보통 장미꽃 한 송이, 뭐 이렇게 하지 않아?”

“응? 그런 거였어? 난 축하할 일이니까 많이 축하해 주려고 큰 거 샀지.”

남편은 솔이의 복통이 너무 심해 약국 가서 진통제를 사 왔고, 오늘 당황하기도 했고 아프기도 하니 학원은 하루 빠지자고 미리 학원 선생님께 전화까지 했다고 너무 화내지 말라고 환하게 웃었다. 오죽하면, 솔이도 엄마가 아니라 아빠한테 전화했을까.

남편의 눈빛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 나 이래서 얘랑 결혼했구나. 사랑받고 자란 아들이라서. 이 구김 없는 모습이 날 평생 안아줄 수 있을 거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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