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물난리라 했고, 누군가는 큰 물방울이라고 했다. 바람 없는 태풍이라고도 하고 홍수라고도했다. 의문의 물난리는 벌써 몇 달째 우리 마을을 휩쓸고 있다.
처음 보는 커다란 물덩이가 마을로 굴러온 것으로 이 사태가 시작됐다. 껌도 아닌 것이, 풍선도 아닌 것이, 얼음도 아니고, 홀로그램도 아니다. 어떻게 물방울 자체가 자기들끼리 응집되어 이렇게 동그란 구 형태를 유지할 수가 있지? 사람들은 하나 둘 물덩이 옆으로 몰려들었다. 아무도 만지지 않았는데 그 커다란 물덩이가 뻥 하고 터지면서 물덩이를 이루던 물이 폭포처럼 세차게 흘렀다. 옆에 있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물속에 갇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물은 흘러가기 마련이라 버티면 물에서 빠져나올 수 있지만 대부분 버티지 못하고 익사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너 절대로 밖에 나오지 마. 밖에 나갈 땐 엄마 아빠랑 같이 나가.”
학교도, 친구들과 뛰어놀던 놀이터도 모두 가물가물해졌다. 당장 목숨이 걸린 이 상황에 그깟 학교가 무슨 대수인가. 수영을 잘하면 되겠지, 물덩이가 오면 얼른 피해서 집으로 들어가면 되지, 멀리 가지 않고 잠깐 앞에 나갔다가 금방 들어올 거야, 이런 안일한 생각으로 목숨을 잃은 친구들이 여럿이다. 부모들은 아이를 집 안에 가두었다.
부모님을 비롯한 마을의 어른들은 더 큰 방어막을 세웠다. 어떤 물덩어리가 터져도 안전한 아지트를. 그렇지만 거대한 폭포줄기는 그것을 가소롭게 깨버렸다. 하지만 방어막은 깨지기 전에 한두 번의 물줄기를 막아내었기에 계속해서 다시 만드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방어막을 만들다가도 거대폭포에 쓸려 내려가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어른들도 안전한 상황은 아니었다. 모든 일상이 멈췄다.
외동인 나는 하루종일 집에 혼자 있었다. 물덩이의 공격이 시작될 땐 부모님도 집에 들어오시긴 했지만 공격이 끝나면 다시 집 앞에 나가서 방어막 만들기에 한창이셨다. 한 번은 창문을 열고 창 밖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거대한 물덩이가 굴러왔다. 집으로 부랴부랴 뛰어 들어오신 아빠가 소리 질렀다.
“창문! 창문 닫아!”
그 말을 듣고 창문을 닫으려는 순간, 물덩이가 예상보다 빠르게 터지는 바람에 우리 집 안으로 순식간에 물이 들어찼다. 순식간에 가재도구가 물 위로 둥둥 떠올랐다. 우리 집은 2층짜리 단독주택이라 부랴부랴 2층으로 올라가 인명피해가 나진 않았지만 물이 스르르 빠져나가고 나니 갑자기 수해민이 되었다. 엄마에게 약간의 꾸지람을 듣긴 했는데 지금 누굴 탓할 상황이 아니었다. 아빠는 다시 밖으로 나가 방어막을 세웠고, 엄마는 거실에 남아있는 물을 퍼 내고 또다시 밖으로 나가셨다. 나는 집 안에서 열심히 물을 짜 내고, 정리하고, 닦았다. 그날 이후로 우리 집 1층 창문들은 모두 봉인되었다.
거대한 물덩이는 분명 자연현상은 아닌 것 같았다. (이런 현상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누군가가 물덩이를 만들어내 굴리는 것 같았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 하여 함께 물로 공격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냥 무작정 배낭 하나 메고 도망가는 사람도 있었다. 현재 나의 정보통은 아빠뿐이지만 아빠 말에 의하면 더 다양한 도구로 공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말의 뜻은 이 물난리가 끝나기는커녕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2층 창가에서 방어막을 세우는 어른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우리 마을만 이런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선박에서도, 군부대에서도, 산에서도, 묘지에서도, 다른 마을에서도 어디서나 물덩이 공격이 이루어졌다.
공격에 대한 흉흉한 소문도 돌았고, 여러 가설도 나왔다. 폭력성을 키우는 마약 때문이라는 사람도 있고, 마을 옆 공동묘지에서 귀신에 홀린 사람들이 일을 벌이는 거라는 의견도 있었다. 모방범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일각의 의견도 있었지만 확실한 건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모르고, 다들 어떻게 공격하고 어떻게 막을지에만 혈안이 되어있었다.
어느 날 오후, 공격이 끝난 직후 누군가가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본인을 떠돌이 여행자라고 소개한 아저씨는 많이 지치고 힘들어 보였다. 엄마는 누군지 모른다며 의심하고 문을 열어주지 말자고 했지만 아빠는 아저씨와 한참 대화를 나누더니 우리 집 방어막 짓는 일을 도와주는 조건으로 하룻밤 묵게 해 준다고 했다. 아저씨는 꼬질꼬질했지만 정말 착해 보였고, 식사도 마다한 채 물 한 병만 달라고 했다. 그리고 한숨 자고 내일 아침에 나간다고 했다. 오전이 공격이 제일 덜 한 시간이니 그때 움직이겠다고. 그리고 아저씨는 정말 열심히 늦은 시간까지 우리 집 방어막 구축을 도왔다.
늦은 밤, 또 시끄러운 물난리 소리에 잠을 깼다. 정말 밤낮없이 물난리가 일어나는구나. 이 물난리로 사람들이 불면증에 걸려 예민해져서 계속 누군가를 공격한다는 가설이 맞을지도 몰라. 화장실을 가려고 1층으로 내려갔더니 아저씨가 거실에서 손전등을 켜고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크흠, 인기척을 내며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뭐 하세요?”
“응, 꼬마야. 물소리가 시끄럽네, 그치? 아저씨는 이걸 쓰고 있었어.”
아저씨가 보여준 노트엔 알 수 없는 공식과 계산들이 난무했다. 이게 뭐예요? 다시 한번 눈으로 물어보았지만 아저씨의 심각하고 진중한 눈은 노트에 적힌 계산을 이어가느라 바빴다. 나는 아저씨 옆에 털썩 앉았다.
“아저씨가 아무도 모르는 비밀 하나 알려줄까?”
“뭔데요?”
“이 공격으로 누군가는 돈을 벌어. 그래서 사람들을 이렇게 움직이게 해.”
“무슨 돈이요? 어떻게요?”
“그건 모르지. 뭘로 수익을 내는 건지 연구 중이야. 새로운 무기가 계속 등장하잖아.”
본인도 모르면서 이게 무슨 비밀이야, 그건 무슨 가설이야?
“어떻게 알았어요?”
“내가 어떤 광산을 지났는데, 거기도 공격이 한창이었단다. 겨우겨우 물난리를 피해서 숨어있던 중에 광산 벽에 흐릿하게 쓰인 글자를 봤어. 그냥 뭐 누군가 써놨겠거니, 거기 쓰여있던 글자겠거니 했는데 그걸 다른 장소에서도 봤단다.”
“같은 글자를요?”
“물난리를 피해 공장에 숨어들기도 했어. 사다리를 타고 매달려 겨우 피했는데 그 벽에서도 봤어. 아주 희미해서 보일 듯 말 듯했고, 누군가는 공장 벽의 얼룩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내 눈엔 그 두 개가 확실히 같았어. 그래서 좀 더 여기저기 다양한 장소를 돌아다니며 확인해 보려고 한단다.”
“무슨 글자였는데요?”
아저씨는 말없이 노트를 뒤적여 한 페이지를 펼쳐서 보여줬다.
“아... 이게 뭐예요?”
아저씨가 빙긋 웃으며 노트를 접어 가방에 집어넣고 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세상은 어른들이 지킬게. 너무 많이 알려고 하면 다쳐.”
“그게 뭔지, 누가 꾸미는 일인지, 이 물난리의 시작점을 알면 이제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거 아니에요?”
“맞아. 그것이 내가 목숨 걸고 연구하는 이유고. 공격의 패턴과 방향, 강도, 무기, 시간 등을 모두 계산해서 통계를 내고 있단다. 혼자 하긴 역부족이지만 꼬맹이가 도와줄 일도 아니야.”
아저씨의 말에 가슴이 설렜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이 상황을 끝낼 수 있는 연구라니!
“저도 돕고 싶어요!”
아저씨는 날 한참 쳐다보더니 씩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꼬맹아. 아저씨가 조금 더 돌아보고 내 가설이 맞다는 증거를 모아 올게. 다시 이 마을을 지날 때 꼭 이 집에 들를 테니 그때 같이 떠나자. 어때? 지금은 너도 부모님도 너무 갑작스럽잖아.”
“네! 좋아요!”
“그럼 그때까지 밥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있어야 해! 알겠지?”
다음 날 아침, 아침 먹고 가라는 엄마의 제안도 거절하며 아저씨는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집을 나섰다.
보통 오전엔 조용한데 그날 따라 오전부터 밖은 난리였다. 방으로 들어가라는 부모님의 큰 소리에 나는 방문을 꼭 닫고 이불속으로 들어가 이 사태가 끝나길 기다렸다. 아저씨는? 괜찮을까? 그냥 아침 먹고 가지. 아저씨는 수많은 물난리에서도 살아남았으니까 괜찮겠지?
잠잠해졌을까, 현관문이 쾅 닫히는 소리를 듣고 부모님이 나가셨구나 하고 방을 나섰다. 2층에서 창 밖을 보니 죄다 물에 쓸려가 거리가 깨끗했다. 길 건너 집 마당 풀 숲에 누가 엎드려 있어서 자세히 보니 어제 그 아저씨였다! 당장 집 밖으로 뛰어나가 부모님께 알렸고 아저씨는 마을의 규칙대로 처리되었다. 실려가는 아저씨의 시체를 보며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여러 장소에서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고도 살아남았던 아저씨가 왜 우리 마을에선 스스로 살아남지 못하고 우리 집에 하루 묵겠다고 했을까. 우리 마을에서는 집 아니고서는 버틸 수 있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겠지.
부모님이 방어막을 쌓을 동안 나는 집에 들어가 있는 게 무언의 규칙이었지만 허망한 마음에 정신이 반쯤 나간 것 같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히 이야기하던 사람의 시체가 눈앞에서 실려가는 걸 보는 경험이 처음이었으니까. 수많은 물 공격에도 튼튼하게 뿌리내리고 버티고 있는 우리 집 큰 나무 밑동에 기대어 앉아 아저씨가 발견되었던 그 장소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집 외벽에 무슨 무늬 같은 게 보였다. 뭐지? 홀린 듯 가까이 다가갔다. 아저씨가 보려고 한 게 이거였을까? 자세히 보다 보니, 글자 같기도 하고... 이건 어제 아저씨가 말한 그 글자였다! 근데, 앞에 다른 단어가 하나 더 붙어있었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이거, 진짜야. 아저씨 말이 다 진짜였어. 집으로 뛰어 들어가 떨리는 손으로 가방을 쌌다. 아저씨 뒤를 이어 내가 연구해야겠어. 이걸 아는 사람은 지금 나 밖에 없으니까.
누군가 이 미친 상황을 유도하고 있는 게 분명해.
외벽에 흐릿하게 쓰여져 있는 글자는 ‘CRAZY ARCADE’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