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시대에 아사라니 말도 안 된다. 굶어 죽다니?
“라떼는 말이야, 산에서 들에서 열매 따 먹고 풀 뜯어먹고 그랬어!”
옛날 어른들은 요즘 애들이 눈만 높아져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맛난 음식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무슨 풀 뜯어먹는 소리람? 그래, 옛날엔 꽃도 풀도 뜯어먹었다곤 하지만 지금 어떻게 나뭇잎을 뜯어먹겠어요? 그러니 옛날에 살던 어른들은 죄다 일찍 돌아가신 거잖아요.
내가 사는 동네는 한 블록 건너 다 아는 집들이라 그들의 아사가 더욱더 강하게 와닿았다. 물로만 배를 채우는 건 어떻게든 한계가 있다. 굶어 죽든, 함부로 이상한 것을 먹어서 죽든, 상한 음식을 먹어서 죽든, 죽음은 아프고 약한 자부터 하나씩 데려가고 있었다. 이제 죽음이 코 앞까지 다가왔다.
GDP에 일조할 수 있는 나이까지 자란 나도 속수무책이었다. 먹을 것을 구하러 갔던 아빠가 일주일 만에 돌아오셨다. 다급해 보이는 아빠는 나와 엄마에게 얼른 짐을 싸라고 했다.
“여보, 우리 집은 여긴데 대체 어딜 간다는 거예요?”
“앞 집, 뒷 집, 옆 집 다 죽은 거 안 보여? 우리도 여기 가만히 눌러앉아 있다가 죽을 거야? 어차피 여기서 죽으나 저기서 죽으나 죽는 건 마찬가지야. 최대한 살려고 발버둥은 쳐 봐야지.”
아빠가 보고 온 곳은 먹을 것이 있다고 했다. 하나 둘 너도나도 모이고 있으니 우리도 빨리 가서 자리 잡자고 엄마와 나를 재촉했다. 내가 태어난 이곳은 우리 가족의 추억이 참 많은 곳인데 이렇게 한 순간에 버리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속상했다.
우리 가족이 아빠가 말한 그곳에 도착하기까지 꼬박 3일이 걸렸다. 이동하며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곤 물. 물배를 채우며 쉼 없이 전진하여 도착한 곳은 마치 난민촌 같았다. 커다랗고 뻥 뚫린 광장 같은 이곳은 다른 민족의 땅이었다. 그들의 눈을 피해 구석에 자리를 잡고 보니 왠지 모르게 내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빤 기세양양한 표정으로 밤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제대로 된 집도, 숙소도 없는 이곳은 배고파 모인 자들의 전쟁터였다. 우리 말고도 구석구석 숨어있는 다른 집과 눈빛교환을 하는데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일단 자리를 잡은 우리 가족은 둘러앉아 아빠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곳은 우리 땅이 아니니 우리가 함부로 나 다닐 수는 없다. 저들은 음식을 흘리기도 하고, 두고 가기도 한다, 근처를 조금 더 둘러보면 훔쳐올 수도 있을 거다, 어쩌면 모두가 자는 새벽도 괜찮을 거야.
다른 민족들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우린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가 눈치껏 어슬렁 나와 그들의 음식을 가져가는 것이다. 그리고 눈알이 희번덕 돌아버린 가장들이 미친 듯이 음식을 모았다.
싸움도 일어났다. 누군가 음식을 가져오다가 떨어뜨렸고, 그걸 잽싸게 주워간 또 다른 누군가와 싸우기 시작했다. 이런 식의 싸움은 빈번했다. 멱살잡이는 기본이고 심하면 한쪽이 죽기까지 했다. 주먹다짐이 한창일 때 한 할아버지가 나와 외쳤다.
“그만! 우린 평화의 민족이니 유혈사태는 없게 합시다! 평화롭게 대화로 풀어보자고요!”
반쯤 돌아버린 좀비들은 그 할아버지까지 때려서 죽게 만들었다. 이미 여긴 무법천지가 되었다.
고향에 살 때 온 가족의 아사로 비어버린 옆 집만 봐도 제 일처럼 울던 엄마는 여기서 유혈사태가 지속되는 걸 보니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어느 날 밤 엄마는 음식을 가져오는 아빠에게 이야기했다.
“여보, 나 이런 곳에서 더는 못 살 것 같아요. 우리 이곳을 떠나요.”
“쯧쯧. 이겨 낼 생각을 해야지. 내가 가족들을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음식을 가져오고 있는데 맘 편하게 떠나자는 소리나 하고 있고...”
엄마의 말을 가차 없이 무시한 아빠는 또다시 음식을 구하러 나갔다. 아빠가 가져온 식빵과 과일 몇 개를 보면서 엄마를 안아줬다.
“엄마 이곳은 노동하지 않는 대신 경쟁으로 먹고사는 곳이야. 아빤 노동 대신 경쟁을 택한 거고. 언제까지고 남의 음식을 훔치며 살 순 없어. 조금만 더 참아보자. 다른 대책이 있을 거야.”
엄마는 유혈사태로 힘들어한다면 나는 위생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여긴 제대로 된 거주공간이 없다 보니 위생적으로 아주 나쁜 환경이 될 수밖에 없다. 밤이면 아빠가 훔쳐오는 물이나 아니면 분수대라도 가서 간단하게라도 씻을 수는 있지만 화장실 문제는 해결할 수가 없다. 흙이나 풀에 싸고 묻으면 좀 나을 텐데 여긴 자연 속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장난 없다. 설명하기도 싫다. 그나마 비가 오면 씻기긴 하지만 그냥 물로 대충 씻겨 내려가는 것과 청소해서 깔끔해지는 건 천지차이다. 이곳에 온 첫날부터 위생 문제가 내 속을 썩였는데 계속된 유혈사태로 인한 사체들이 여기저기서 악취를 내뿜으니 더 이상 나도 참을 수가 없었다.
“뭐? 여길 뜬다고? 배은망덕한 놈. 엄마가 힘들어하면 네가 옆에서 달래고 힘이 되어줘야지, 너도 약해 빠져 가지고 여길 떠난다고?”
머리는 잔뜩 뻗치고 며칠 째 씻지 못해 냄새가 풀풀 나는 아빠가 남이 먹다 남긴 치킨을 뜯으며 이야기했다. 다 식어빠지고 딱딱 해졌을 텐데 아빤 이 치킨을 가져오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무용담처럼 늘어놓았다. 아빠는 덩치도 크고 목소리도 크기 때문에 이곳에서 일어나는 싸움에선 거의 가해자 역할을 맡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굶어 죽을 걱정 없이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데 대체 왜 여길 떠나자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나와 엄마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아빠는 더 이상 내가 아는 아빠가 아닌 것 같았다. 엄마와 나는 아빠가 음식을 구하러 나간 틈에 산으로 도망갔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을까? 비록 아빠와 함께 있을 때보다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진 못하지만 엄마와 나는 노동력으로 건강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엄마는 먹을 수 있는 풀과 먹을 수 없는 풀을 구분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계곡에선 물고기도 잡아먹었고, 나무의 열매도 따 먹었다. 버섯도 뜯어먹고 가끔은 곤충을 잡아먹기도 했다. 엄마와 함께 어설프지만 나름의 집도 만들었고, 조금씩 보수해 나가며 안전한 우리의 보금자리를 꾸렸다.
또 다른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조금씩 산 아래쪽으로 내려가다가 그 광장에서 알게 된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어? 너는...”
“어? 너 살아 있었어?”
그곳에서 사람들은 모두가 경쟁자인 것 같았지만 그래도 또래끼리는 뭉친다고, 알고 지낸 나날이 길진 않지만 나름 이야기 나누던 친구가 있긴 했다. 나와 엄마가 하루아침에 사라져서 죽은 줄 알았다고 했다. 나와 그 친구는 실로 오랜만에 긴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원래 살던 고향, 광장에서의 생활, 아빠와의 갈등, 그리고 이곳으로 도망치듯 나와서 살고 있는 이야기까지.
“우리 아빠 기억나? 아빠는 잘 지내고 있어?”
“아, 너희 아버지? 너랑 어머니가 떠난 후로 거의 반쯤 미치신 거 같았어. 혼자만 먹으면 되는데 제일 많은 음식을 독차지하고, 사람들하고도 많이 싸우셨지. 난 너와 어머니가 죽은 줄 알고, 가족을 잃은 아픔 때문에 그렇게 되셨구나 했어.”
“아... 아빠는 아직도 그렇게 지내고 계신 거구나.”
“아버지는... 돌아가셨어.”
“뭐? 왜?”
“원래 그곳을 차지하고 있던... 그 들, 알지? 원래 땅의 주인들 말이야. 너희 아버지는 정말 눈이 반쯤 풀려 미친 듯이 많은 음식을 훔쳤는데 해가 뜬 후로도 움직이시곤 했어. 그들에게 들켰는데도 훔친 음식을 먹느라 못 피하고 그대로 잡혀서 돌아가셨어.”
아빠랑 완전히 정을 떼고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아빠가 돌아가신 이야기를 들으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빠는 우리가 떠난 후 그 허한 마음을 음식으로 채우려 했으리라.
“혹시, 아빠의 마지막 말이라도...”
“너무 갑작스러웠어. 찍소리 못하고 바로 잡혀서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어. 근데 너희 아버지를 잡은 그 녀석들이 한 말이 있어.”
“뭔데?”
“이 놈의 비둘기 새끼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