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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히 일해요

초단편소설

by 차여름

새로 이사 한 동네는 엄청 조용하고 깔끔하다. 번화가와는 많이 떨어져 있지만 차가 있으니 상관없다. 동네의 이국적인 느낌이 마음에 들어서 보자마자 바로 계약하겠다고 했다. 평수는 작지만 2층짜리 단독주택에 잔디가 깔린 앞마당이 있고 마당과 집을 두르는 울타리도 있다. 똑같이 생긴 집이 블록마다 하나씩 있는데 각각 집마다의 개성이 보이는 듯 해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집과의 간격도 넓은 편이라 사생활 보호에도 좋을 것 같다. 어느 정도 짐 정리를 끝내고 마당을 가로질러 울타리 입구에 문패를 매달러 나왔다.

“이주은?”

“아, 깜짝이야!”

문패에 적힌 내 이름을 보고 어떤 할아버지가 내 등 뒤에서 나지막이 속삭였다. 깜짝 놀라서 돌아보니 머리가 새하얀 인상 좋은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허허 웃으며 서 계셨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네. 옆집이 오래 비어있었는데 이사를 왔구먼 그래. 난 여기 옆 블록에 살고 있어. 그냥 편하게 일수 할아버지라고 불러.”

일수 할아버지가 내민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절친이 될 것 같다.


나는 앞마당에 꽃을 심어 정원을 만들기로 했다. 알록달록 다양한 꽃모종을 주문해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일수할아버지가 마당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내 이름을 불렀다. 집이 은근히 멀다니까. 할아버지가 간식 먹으러 오라고 해서 부랴부랴 손을 씻고 달려갔다.

할아버지 집 마당에는 작은 티테이블과 의자 몇 개가 있었는데, 날이 좋을 땐 거의 하루 종일 여기 나와 앉아 있다고 했다. 할아버지 옆에는 처음 보는 할아버지가 앉아계셨다.

“어, 손님이 계셨네요?”

“응? 아~ 얘는 내 친구여. 신경 쓰지 마.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내가 마카롱도 사 왔는데 이럴 건가?”

“아, 마카롱을 사 왔으니 소개를 해야겠구먼. 내 친구 콧수염이야.”

일수 할아버지와 콧수염 할아버지는 함께 큰 소리로 웃었다. 잠깐의 대화로도 두 분이 얼마나 절친인지 알 수 있었다. 콧수염 할아버지는 매일 같이 일수 할아버지와 잠깐의 티타임을 즐긴다고 하셨다. 일수할아버지는 다리가 불편해 멀리 못 나가니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고 쌩쌩한 본인이 찾아와야 한다고.

“저도 한 잔 주세요!”

“이거 쌍화탕인데, 한 잔 줘?”

“아? 쌍화탕이에요?”

“요즘 젊은이들은 아머리.. 랑 같이 먹는다며? 그거 엄청 쓰다던데.”

“아머리가 아니라 아메리여.”

“여하튼! 아머린가 아메린가 그것도 쓴데 쌍화탕도 쓰니까 비슷하지 않나? 하하하”

근데 곁들이는 디저트는 마카롱이라니,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때 우리 집 쪽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놀라서 벌떡 일어나 쳐다보니 일수 할아버지가 익숙한 상황이라는 듯 쌍화탕을 홀짝이며 이야기했다.

“삼식이네여. 신경 쓰지 말어.”

“삼식이요?”

“너희 옆집 말이야. 반대쪽으로 옆집. 거기 삼식이네서 또 소리지르는겨.”

“이름이 삼식이여? 촌스럽구먼.”

“아니 삼시 세끼 밥 차려줘야 한다고 삼식이여. 백수라는 거지. 저거 삼식이엄마가 또 삼식이보고 열받았지 뭐. 삼식이는 밤새 게임하고 낮에는 자빠져 쳐 잔다고 그래.”

“삼식이도 삼식인디, 처자도 삼식이여? 하루종일 집에만 있어 그래?”

“아, 저는 작가예요! 도시에선 카페라도 가야 조용히 글을 썼는데 이 동네는 그냥 집에서 글을 써도 조용하고 집중도 잘 될 것 같아서 여기로 이사를 왔어요.”

“작가 선생이구먼! 무슨 책을 쓰셨는가?”

“공모전 당선 돼서 출판사랑 계약하긴 했는데 아직 정식 출판된 책은 없어요.”

“에이 그럼 아직 작가가 아니구먼!”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하여 그냥 빙그레 웃으며 마카롱을 집어 들었다. 책 나오면 선물로 드리면서 제대로 자랑해야지! 실제로 나는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 이사 오기 전엔 조용한 시간에 글을 쓰고 싶어서 밤낮이 바뀐 생활을 했는데 여기선 낮이고 밤이고 조용해서 언제든 글 쓰기가 좋다. 하지만 아직 내 생체시계가 밤 작업을 더 선호하기 때문에 이걸 다시 뒤집기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

“무슨 이야기를 쓰는 작가 선생이여?”

“음, 소설?”

“그럼 곧 마법사 이야기 쓴 작가님처럼 되는 건가?”

해리포터를 쓴 조앤. K. 롤링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이런 할아버지까지 알고 있는 작가라니. 그녀의 유명세가 새삼스럽게 신기하다.

“저도 그렇게 되고 싶죠! 근데 저는 판타지 쪽은 아니고 따뜻한 힐링 소설이에요. 김나무 작가님을 제일 좋아해요! 그분처럼 따뜻한 소설로 유명해지고 싶어요.”

“뭐어? 나무를 좋아해? 무슨 나무?”

“아니, 그런 나무가 아니라...”

대충 소나무요, 하고 말을 얼버무렸다. 한창 할아버지들의 나무논쟁을 듣다가 콧수염 할아버지가 이제 간다길래 핑계삼아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귀찮긴 한데, 참 재미있으셔들.


“안녕하세요! 정원이 참 예쁘네요. 이사 오셨죠? 이제야 인사드리네요. 불편 한 곳은 없으세요?”

모르는 얼굴이 울타리 너머에서 나에게 아는 체했다. 등 뒤에는 커다란 마대자루를 메고 있었고 흰 장갑과 긴 집게를 보니 쓰레기를 줍는 사람 같았다. 잠시 사고회로가 정지해 눈만 껌뻑이고 있는데 일수 할아버지가 절뚝절뚝 부지런히 우리 집 쪽으로 오며 이야기하셨다.

“얘는 작가 선생이여! 이사 왔어. 이사!”

“누구...”

“이 사람은 지역 유지여! 반장, 통장 뭐 이런 거지! 동네 청소도 혼자 다 도맡아 해! 우리 같은 노인네 안부도 물어준다고.”

“조그만 동네에 청소할 것도 별로 없는걸요. 제가 이 근방을 꾸준히 돌아다니니 언제든 불편한 점 있으면 이야기해 주세요.”

지역유지 아저씨는 다시 큰 길가로 돌아나가며 작은 돌 하나를 주워 등 뒤에 매달고 있는 큰 마대자루에 던져 담았다. 이 동네가 이렇게 깔끔한 것은 저 아저씨 덕분이구나. 아저씨는 도시에서 큰돈을 벌던 사업가였는데 도시생활에 회의를 느껴 이 동네로 들어왔다고 했다. 돈이 많지만 적당히 베풀며 봉사하며 살기에 이 동네 사람들의 선망을 얻고 있는 분이었다. 저 정도면 사회복지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동네를 위해 헌신하며 사는 것 같았다. 우리 집 울타리도 저분이 예전에 만들어 놓으신 거라고.

“그나저나 저분은 누구세요?”

“쟤? 쟤는 런닝맨.”

일수 할아버지가 말하는 런닝맨은 매일 같이 큰길을 달렸다. 처음엔 그냥 운동하는 사람인 건가 싶었는데 쉴 새 없이 달리기만 했다. 내가 이사 온 날도, 콧수염 할아버지와 만났던 그날도, 그리고 오늘도, 바로 지금도. 프로 마라토너인가? 무슨 운동을 이렇게 전심을 다해서 해? 내가 밤에 글을 쓰다가 창 밖을 내다봐도 런닝맨은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가끔은 울기도 했다. 눈물을 훔치면서도 열심히 달렸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콧수염 올 때 됐어. 우리 집으로 가자. 계속 서 있으니 다리가 아프네”

일수 할아버지와 함께 콧수염 할아버지를 맞을 준비를 했다. 콧수염 할아버지가 티타임에 합류하고 런닝맨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줬다. 남자치고 작은 키를 가진 런닝맨은 도시에서 꽤나 잘 나가던 사람이라고 했다. 이곳으로 이사오려고 아내와 함께 이 동네를 몇 번이나 들락거렸다고 했다. (워낙 작은 동네라 새로운 얼굴이 나타나면 관심받기 일쑤인 이곳에선 비밀이 없다.) 이사 날짜와 원래 살던 집을 빼는 날짜가 안 맞아서 일주일 정도 임시거처에서 지냈는데 그곳이 부실공사로 무너졌다고 했다. 런닝맨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광경을 눈앞에서 생생히 목격했고, 비명을 지르며 아내를 찾았다고 했다. 분명히 아내가 살아있었는데 아내 위에 깔린 돌과 철근을 들어낼 수가 없어서 아내가 눈앞에서 서서히 압사하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고 했다.

“119 안 불렀어요?”

“건물이 무너졌는데 누군들 신고를 안 했겠어? 구급대원들이 곧장 도착했는데, 압사라는 게 진짜 순식간인 거야. 그렇게 눈앞에서 와이프가 가버렸지 뭐.”

“신은 참 불공평해. 선한 사람만 일찍 데려가 분다니까.”

“언제 어디서나 신은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 런닝맨이 뛰는 것도 보고 계실거여.”

“그러니까 작가 선생도 나쁜 맘먹지 말고 착하게 살여.”

신이라, 종교가 없는 나에겐 다소 부담스러운 이야기였지만 나보다 신에게 가까운 어르신들에게는 위안이 되는 이야기겠지. 괜히 멀쩡한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찌 되었건 이사하기로 계약했으니 런닝맨은 이 동네로 이사를 온거여. 와이프가 그렇게 오고 싶어 했던 동네로. 이 동네가 예쁘게만 보이겠나? 혼자만 이곳에 있으니 제정신이 아닌 거지. 여기 이사 온 뒤로 저렇게 달리기만 해.”

“슬픔을 잊기 위한 달리기, 뭐 이런 건가요?”

“그것도 있겠지만 본인이 힘이 셌다면 아내를 구할 수 있었다는 후회에서 시작한 운동 아니것어? 어쨌든 런닝맨 저 녀석은 체력도 약했다고 하니까.”

“작가 선생도 운동 좀 해! 저번에 보니까 모종박스 작은 것도 낑낑대더구먼.”

“그래, 나무 좋아한다며? 나무처럼 튼튼해지려면 운동도 하고 그래야지.”

하여튼 무슨 말을 하든 결론이 자꾸 나라니까? 그래도 나한테 애정을 갖고 자꾸 잔소리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감사하다. 이 순간에도 런닝맨은 계속해서 같은 코스를 달리고 있었다. 이제는 그가 조금은 안쓰러워 보인다.


웬일로 작업이 잘 되는 밤이었다. 서늘한 밤바람을 맞으며 쭉쭉 써 내려가는 글에 희열을 느꼈다. 커피가 다 떨어졌네. 부엌으로 가 커피머신에 캡슐을 넣고 잠깐 스트레칭을 했다. 헬스장은 먼데, 홈트라도 할까? 아니면 런닝맨처럼 동네를 한 바퀴씩 돌까? 진짜 나도 운동을 하긴 해야 해. 맨날 책상 앞에 앉아서 글만 쓰니 살이나 찌고 말이야. 괜히 내 뱃살을 움켜잡았다. 따뜻하게 내린 커피를 가지고 책상으로 가서 앉았다. 이런 밤이면 조용한 가운데 런닝맨의 발소리만 들린다. 탁 탁 탁... 일정한 런닝맨의 발소리가 그 어떤 ASMR보다 집중에 도움이 된다. 탁 탁 탁 발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홀짝였다. 자, 이제 다시 시작해 볼까?

몇 줄 썼을까? 런닝맨의 발소리가 안 들린다. 들리던 소리가 안 들리니 집중력이 와장창 깨졌다는 핑계로 창 밖을 내다보았다. 그 순간 손에 들고 있던 컵을 그대로 떨어뜨리고는 맨 발로 달려 나갔다. 길 가에 런닝맨이 쓰러져 있었다.

런닝맨을 흔들어 깨워보았지만 기척이 없었다. 무서운 마음에 눈물부터 차올랐다. 죽은 거 아니겠지? 숨은 쉬는 건가? 숨도 안 쉬는 것 같다. 내가 CPR을 배워뒀으면 이럴 때 써먹었을 텐데! 길 한 중간에 있어서 우리 집 마당 쪽으로 옮기고 싶었는데 내 힘으론 런닝맨을 들어 옮길 수도 없었다.

“도와주세요! 아무나 좀 나와서 도와달라고요!”

조용한 동네에 나의 눈물 섞인 절규가 울려 퍼졌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집 사이의 간격도 넓은 데다가 일수 할아버지는 잠귀가 어둡고, 삼식이는 밤새 게임하느라 듣지도 못할 테다. 계속해서 런닝맨을 흔들어보았지만 런닝맨의 꼭 감은 눈은 계속해서 그 모습 그대로였다. 신고, 신고를 하자! 집에서 핸드폰도 안 갖고 나왔네. 런닝맨한테 핸드폰이 있을까?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겨우 런닝맨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꺼내는데 지갑이 같이 떨어졌다. 땅에 떨어지며 펼쳐진 지갑엔 주민등록증이 꽂혀있었는데 이름이 김나무였다. 너무 놀라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신이시여, 당신은 존재하긴 하는 건가요? 신이 있다면 이런 사람은 살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왜 이런 착한 사람만 데려가는 거예요? 이렇게 힘들어하는 걸 보고 있으면 이겨낼 힘을 줘야 할 거 아니에요? 애꿎은 하늘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런닝맨을 그대로 길가에 두고 나는 우리 집 울타리에 등을 대고 앉아 무릎을 세워 안았다. 정신이 반쯤 나간 것 같았다. 아마 런닝맨도 아내가 죽은 걸 봤을 때 이런 기분이었겠지. 그 상태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내 힘으로 서 있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런닝맨으로 불린 유명 소설가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마지막 독자가 되다니. 살아내는 모든 것에 의미가 사라졌다. 그래서 런닝맨도 소설 쓰는 일을 놔버렸나 보다. 정상에 있을 때 한순간에 사라진 그가 이해 간다. 그렇게 한 없이 울며 런닝맨을 쳐다보다가 그 상태로 잠이 들었다.


“작가 선생! 무슨 일이여? 왜 여기서 자고 있는겨?”

일수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귀에 박힌다. 울다 잠들어서 퉁퉁 부은 눈을 겨우 비벼 떠보니 쨍한 아침이 밝았다. 누군가는 죽었는데 누군가는 또 새로운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할아버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날 쳐다보는 일수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치자 대뜸 눈물부터 났다. 내가 우는 모습을 보자 놀란 할아버지는 얼른 날 품에 안아주었다.

“밤새 무슨 일 있던겨?”

“흐윽, 런, 런닝맨이요, 끄으극, 김나무.. 흑.. 어제.. 여기 쓰러졌는데... 흐어엉”

감정이 북받쳐올라 말도 똑바로 나오지 않았다. 할아버지 품에 안겨 아기처럼 엉엉 울었고 할아버지는 내 등을 토닥이며 이야기하셨다.

“런닝맨? 런닝맨이 왜? 어, 저기 지나가네.”

할아버지 말에 고개를 들어 큰 길가를 보니 런닝맨이 아무렇지도 않게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달리고 있었다. 누구와도 인사를 하지 않은 채 무표정한 모습으로.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인상을 쓰며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잔뜩 부은 얼굴에 미처 나오지 못한 눈물이 또르르 타고 흘렀다.





“여보, 어제 시계 멈췄던데.”

“어, 알아. 약 갈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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