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초단편zip

입시천국

초단편소설

by 차여름

날이 제법 쌀쌀해졌다. 이 맘 때쯤이면 괜히 마음이 헛헛한 것이 아마 날씨 때문이 아닐까? 게다가 입시라는 전쟁터에 내 던져진 우리는 더 추울 수밖에 없다. 이렇게나 힘든데, 괜히 입시지옥이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다. 어찌 되었건 나는 이런 차가운 바람이 좋다. 창문을 활짝 열고 창밖을 내다보기에 요즘 같은 날씨만 한 때가 없지. 게다가 날이 차가워져서 해가 일찍 지는 바람에 벌써 하늘은 빨갛게 물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빈아, 그다음 너 들어오래.”

“너 왜 이렇게 빨리 끝났어?”

다빈이는 하던 일을 멈추고 교실 밖을 나갔다. 이제 막 상담을 끝내고 교실로 들어온 하동이가 내 옆에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하동이는 우리 교실에서 성격이 가장 좋아서 친구들이 다들 좋아한다. 소외되는 친구 없이 모두에게 친절하고 유쾌하게 대해준다.

“뭐 보고 있어?”

“저기 봐.”

내가 창밖으로 가리킨 손끝에는 검은색 세단이 서 있었다. 잠시 후 운전석에서 양복을 입은 사람이 내렸고, 조금 더 기다리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달려왔다. 양복 입은 사람은 그 아이를 뒷자리에 태웠고 차는 출발했다.

“엄청 부잣집인가 봐. 개인 기사도 있고. 나도 저런 집에 태어나고 싶다.”

“저런 집에서 태어나면 돈 걱정 없이 사고 싶은 거 다 사면서 자라겠지? 친구들한테도 돈 펑펑 써서 친구들이 전부 다 나를 좋아하고?”

“근데 애가 100점 받아도 50점 받아도 부모님이 관심이 아예 없음.”

정호가 슬그머니 다가와 거들었다. 정호는 나와 하동이 뒤쪽에 있는 책상에 걸터앉아서 함께 창 밖을 바라보았다. 정호는 덩치가 큰 만큼 먹을 것을 좋아해서 요리사가 되는 게 꿈이다.

“그럼 저런 집은 어때?”

나는 버스정류장을 가리켰다. 버스정류장에 한 여자가 앉아있었는데 버스가 멈춰 서고 한 남자가 내렸다. 여자는 남자 목을 끌어안고 방방 뛰더니 둘이 함께 손을 잡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퇴근하는 남편을 마중 나온 아내의 모습이 아닐까? 연인일 수도 있겠지만.

“신혼부부인가 봐. 버스 타고 다니는 것 보니 자차는 없는 경제력인 것 같고. 근데 저렇게 안아주고 손 잡고 가는 거 보니 집이 엄청 화목할 것 같아.”

“근데 아빠가 일찍 죽음.”

“야, 이 근데충 좀 어디 치우면 안 되냐?”

대단한 분석이라도 하는 듯한 하동이와 무슨 말이든 초를 치는 정호가 웃겨서 큰 소리로 웃었다. 나의 웃음소리에 은혜가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합류했다.

“뭔데? 왜 너희만 재밌는데?”

“의자 갖고 와. 너도 껴.”

은혜는 새하얀 얼굴과 작은 체구를 가지고 있는데 노래를 정말 기깔나게 잘한다. 저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그런 커다란 성량이 나오는지 모를 정도다.

“너희 저분 알아?”

은혜가 가리킨 곳은 사거리에 있는 김밥집이었다. 통유리라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김밥집에서 임산부가 일을 하고 있었다.

“어? 뭐야, 임신한 거 아니야?”

“내가 진짜 오래 지켜봤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배가 저렇게 나온 거 보니 임신한 거 같더라고. 근데 남편이 없나 봐. 남자를 한 번도 못 봤어. “

“남편이 퇴근이 더 늦을 수도 있잖아?”

“근데 상식적으로 만삭인 와이프가 김밥집에서 육체노동을 하는데 어떤 남편이 가만 두냐?”

“어, 맞네.”

“미혼모가 아닐까?”

“그치? 나도 미혼모라고 생각했어. 난 태어날 거면 저런 집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왜? 아빠가 없잖아.”

“엄마 생활력이 엄청 강하잖아? 만삭까지 아이를 책임지려고 일을 하는 거 봐. 아빠가 있다고 무조건 화목할 수만은 없다면 차라리 생활력 강한 엄마랑 둘이 사는 게 나을지도.”

“근데 나중에 아빠라는 사람이 나타남.”

“얘 뭐야? 근데충이야?”

“야, 초코송이. 너 아직도 근데충 안 치움?”

근데충인 정호를 비롯해서 모두가 호탕하게 웃었다. 내 이름은 송이인데 머리가 동그란 단발 바가지 머리라서 친구들은 나를 초코송이라고 부른다. 정호는 이렇게 ‘근데’라는 가정을 붙이면서 이야기에 초를 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거라나.

“그럼 근데충 너는 어떤 집이 좋을 거 같은데?”

“나는 내 스케줄 관리도 다 해주고 학원 뺑뺑이 돌리고 과외 붙여서라도 공부를 엄청 많이 시켜주는 부모?”

“웩, 말만 들어도 토 나오겠다. 그런 집이 왜 좋음?”

“공부는 어차피 힘든데, 이왕 힘들 거면 제대로 빡시게 해서 결과가 좋아야지! 어쭙잖게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힘들고 결과 안 좋을 바에야. 그리고 학원 뺑뺑이랑 고액 과외 붙이려면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 줄 아냐? 엄청난 재력이 있는데, 자녀한테도 관심이 많은 부모라는 뜻이지.”

반박하고 싶은데 묘하게 맞는 말 같아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호는 자신의 논리가 먹혔다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정호 너는 요리사 되고 싶다며. 무슨 요리사가 되고 싶은데?”

“나는 일식요리사! 스시 오마카세 같은 식당을 운영하고 싶어.”

“어? 식당 운영은 내 꿈인데!”

“하동이 너는 무슨 식당 운영하고 싶은데?”

“글쎄 곱창집?”

“엥? 웬 곱창집?”

“그 있잖아. 곱창 구워주면서 손님들하고 대화하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느낌으로.”

“대충 뭔지 알겠다. 은혜 너는?”

“나는 뭐, 다 알다시피 음악 하고 싶지. 노래 부르는 게 너무 좋아. 근데 아이돌 같은 가수 말고 성악이나 이런 쪽.”

갑자기 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이제 막 상담을 끝내고 온 다빈이가 교실로 들어왔다. 친구들은 다빈이를 불렀고 다빈이는 의자를 끌고 와 창가에 나란히 앉았다.

“무슨 얘기 중이었어?”

“나중에 커서 뭐 하고 싶은지?”

“나는 조각가? 미대로 치면 조소과.”

“오~ 그럼 막 나무 깎고 이러는 거야?”

“사실 구체적으로는 깎아내기보단 찰흙이나 석고를 빚고 덧붙이는 소조에 가깝긴 한데 어쨌든 전부 아울러서 조각이라고는 하니까.”

“와, 멋지다. 넌 예쁘게 생겨서 딱 미대여신상이다.”

“미술 하려면 돈이 엄청 많이 들 텐데!”

“맞아. 미술 하려면 돈 많이 들겠지.”

“그러니까 돈 많은 집에 태어나야 한다니까? 거기다 부모 관심까지 더해지면 최고의 조각가가 될 수 있지!”

정호의 자신만만한 의견에 다빈이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내리 저었다.

“완전 틀렸어.”

“뭐가? 그럼 뭔데?”

“집안 사정은 안 중요해. 무조건 T아빠와 F엄마가 최고야.”

“그게 뭔데?”

“너 MBTI 몰라?”

우리는 다 같이 깔깔대고 웃었다. 차가운 바람이 우리의 머리카락을 휘저었다. 어쩐지 이런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아서 싱숭생숭해졌다. 약간의 적막 후 하동이가 나한테 말을 걸었다.

“어디 갈지 정했어?”

“아직 고민 중.”

“와 우리 진짜 얼마 안 남았다.”

“얘들아 그동안 즐거웠어.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

“왜 그래, 안 볼 것처럼.”

정호의 뜬금없는 끝인사에 모두가 웃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친구들과의 대화조차 벌써 아련해지는 기분이었다. 그간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 마지막 순간을 위해 미친 듯이 달려온 지난 나날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꼭 안아주고 싶었다.

“엄청 기대돼.”

“난 지금이 제일 좋아. 그냥 계속 여기 있을래!”

“나는 빨리 뜨고 싶은데?”

괜히 친구들 얼굴을 한 번씩 더 살펴보았다. 머릿속에 꼭꼭 담아서 잊지 않아야지. 우리는 이렇게나 서로 완전히 다른데 어떻게 이만큼 친해지게 되었을까? 입시전쟁을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게 된 데에는 친구들의 도움도 제대로 한 몫했다. 이 친구들 없이는 버티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차가운 바람이 코를 통해 가슴으로 시원하게 들어왔다.

“송이송이 눈송이~”

교실 문 입구에서 선생님이 날 부르셨다. 친구들이 한 번씩 내 손을 잡아주었다. 친구들 눈을 한 번씩 마주치고는 선생님께로 갔다.

“송이야, 어디로 갈지 결정했니?”

“네. 결정했어요.”





응애-

“여보 수고 많았어.”

“엄마 아빠한테 와 줘서 고마워. 우리 천사.”




“선생님. 송이는 잘 갔겠죠? 끝까지 고민 많이 했는데.

“하동아, 이제 네 차례야. 부모는 골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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