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산책길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엄청 추웠던 것 같은데 날이 그새 포근해졌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딱 좋은 온도. 눈앞으로 쭉 보이는 길 따라 나무가 무성하고 한쪽 옆에는 물이 흐르고 있다. 집 근처에 이런 천이 있었나?
여긴 어디지? 어제 술도 안 마셨는데 왜 기억이 안 나지? 어제 일 끝나고 방에 들어와서 씻고, 바로 잔 거 아닌가? 나 술 마셨나? 하, 나는 술 약해서 많이 먹으면 안 되는데 어제 또 마시다 보니 많이 마셨나 보네.
저 앞에 사이좋게 이야기 나누며 천천히 걷고 있는 노부부를 발견하고 달려갔다.
“안녕하세요.”
“어이구, 여기 젊은이가 있네.”
“네? 아, 제가 어제 술을 마셔서 기억이 잘 안 나는데 혹시 여기가 어딘지...”
“여긴 저승이여!”
“네?”
“정확히는 저승 가는 길이지. 우리도 여기서 처음 만났네. 자네는 젊어 보이는 데 무슨 일로...”
아, 부부가 아니라 초면이셨구나. 그나저나 저승 가는 길? 내가 죽었다고? 왜?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는데?
“어떻게 아셨어요?”
“갑자기 죽은 자네 같은 사람은 모르겠지만 우리 같은 사람은 죽기 전 저승사자가 찾아와서 삶의 끝을 준비할 시간을 준다네. 그래서 알고 있지.”
“그리고 저승 도착 전 내가 가장 보고 싶어 하던 사람을 잠깐 만나게 해 준다고. 그래서 누굴 만나게 될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
약간 느린 걸음의 할머니의 속도에 맞추어 양 옆에 할아버지와 내가 서서 나란히 걸어갔다. 어두컴컴하고 무서울 것 같던 저승길이 이렇게 조용하고 차분한 산책길 일 줄이야. 나의 삶을 돌아보기에 이런 분위기가 더 적절하긴 하네. 적막이 이어질 새도 없이 할아버지가 말을 꺼냈다.
“나는 우리 집에서 20년간 키운 개를 만나고 싶어요. 애들 다 독립하고 헛헛해서 키우기 시작한 개였는데 애 하나 키우는 거만큼이나 힘들더만요.”
“먼저 간 반려견은 천국 문 앞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대요. 얼마나 좋아요?”
“애들 앞에서야 개는 밥만 주면 알아서 크는거라고 큰소리쳤지만 사실 산책이나 목욕도 너무 어렵고, 개가 사료를 안 먹고 잠만 자면 심장이 덜컹 내려앉더라니까요.”
“저는 젊은 나이에 남편을 먼저 보내고 친정엄마랑 살면서 아이들을 키웠어요. 친정엄마가 도와주니 그나마 다행이었지요. 애들은 꼬맹이였고 저는 전업주부였는데 남편이 갑자기 먼저 가버렸다니까요. 애들은 지아빠 얼굴도 기억 못 할 거예요. 제가 너무 고생을 많이 해서 먼저 간 남편이 원망스러울 정도에 요.”
“저런. 그럼 누구를 제일 보고 싶으세요? 남편분이 아니네요?”
“아이고~ 얼굴 보면 왜 그리 먼저 갔냐고 한 대 쥐어박고 싶어요! 저는 글쎄요, 아마 남편보다는 친정엄마가 더 보고 싶어요. 아빠도 돌아가시고 황혼육아를 시작했는데 엄마 죽기 전까지 육아랑 살림을 시켰으니까요. 호강도 못 시켜드리고. 엄마가 너무 힘들어 천국여행 먼저 떠났나 싶기도 하고.”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조용히 들으며 발맞춰 걷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자네는 무슨 일로 여길 왔는지 모르겠는데, 부모님은 아직 살아계실 것 같고. 누가 제일 보고 싶은가?”
“저는... 가족이 없어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놀란 숨소리가 발걸음에 그대로 나타났다. 할아버지는 멈칫하시더니 에헴 헛기침을 하셨고, 할머니는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내 등을 쓰다듬었다. 나에겐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한 이야기라 굳은살 같은 존재였지만 할머니 할아버지께는 놀라운 이야기였나 보다.
“엄마아빠 얼굴도 몰라요. 제 기억이 닿는 가장 예전 기억은 친척집을 돌아다니던 기억이에요 이모네 갔다가 할머니네 갔다가 고모네 갔다가 초등학교 입학도 전에 보육원에 맡겨졌어요. 그 뒤로는 거기서 쭉 자랐고, 보호종료시점이 되어 자립하게 되었는데, 500만원 쥐어주고 길거리에 내던지는 거 같았어요. 500만원으로 대체 뭘 할 수 있겠어요? 고시원 대충 잡아놓고 당장 아무 알바나 구해서 악착같이 돈을 벌었어요. 숨 쉬고 먹기만 하는데도 돈이 들어가더라고요. 매달 월세 내고 핸드폰 요금 내고, 아프기라도 하면 병원도 가야 하고. 사치를 전혀 안 하는데도 돈이 늘 어디선가 빵꾸가 나요. 알바를 2개, 3개 잡고 쉬는 날도 없이 계속 일 했어요. 친구도 없고 취미도 없고, 참 재미없는 인생이죠?”
“그렇게 열심히 살던 청년이 무슨 일로 여기에...”
“그러니까요. 저도 제가 왜 여기에 있는지.. 아마 힘들어서 술을 마시지 않았을까요? 기억은 안 나지만...”
“과로사 아닐까요? 청년 말만 들어도 이렇게 가슴이 애리고 속상한데. 젊은 나이에 가난을 경험하고 얼마나 애쓰며 살았어. 듣자 하니 자기 자신을 하나도 안 돌봤구먼.
“고시원에서 자다가 곱게 죽은 거 같네. 고생만 하긴 했어도 고통 없이 죽은 건 복이여 복!”
할아버지가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
“이 창창한 젊은 청년이 죽었는데 복이 어디 있어요!”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살짝 쥐어박는 시늉을 했고 할아버지와 나는 크게 웃었다. 우울한 생전 이야기가 다 무슨 소용인가. 여기가 저승이라고 하니 생전의 이야기는 다 쓸데없는 이야기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쓸데없는 생전 이야기를 조금 더 듣다 보니 저 멀리 산책길의 끝에 커다란 문이 보였다. 마치 성문 같기도 하고 대저택에 들어가는 문 같기도 하고, 분명한 건 엄청 크고 웅장한 문이라는 거다. 우리가 들어갈 저승이 저곳인가 보다. 저승은 어둡고 귀신이 가득한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그렇지만은 않네.
다들 웅장한 문의 크기에 압도되어 말없이 걷고 있는데 저 앞에서 커다란 개가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너무 놀라 나자빠지려는 할머니를 겨우 붙잡았는데 할아버지가 소리를 지르며 개를 향해 달려갔다
“장군아!”
할아버지는 곧장 무릎을 꿇고 장군이라 부르는 큰 개의 목덜미를 껴안았다. 생전에 키우시던 개라는 눈치를 챘다. 한참 동안 장군이를 안고 우시던 할아버지가 품에서 장군이를 내려놓았다. 장군이는 헥헥거리며 할아버지의 무릎에 코를 박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무릎 괜찮냐고? 괜찮아~ 이제 안 아파~”
장군이가 이번에는 할아버지 뒤 쪽으로 가서 허리에 자기 머리를 비볐다.
“허리? 허리도 안 아파~ 좋아.”
이번에는 장군이가 할아버지 앞으로와 가슴팍을 살짝 밀쳐 할아버지가 엉덩이를 대고 땅에 앉도록 하더니 할아버지 다리 사이로 쏙 들어가 편안한 자세로 누웠다. 할아버지는 익숙한 듯 장군이를 쓰다듬고 안아주었다.
“저는 장군이랑 시간을 좀 더 보내고 따라갈 테니 먼저들 가세요.”
할아버지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간단히 목례를 하고 할머니와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잠시 후 저 앞에 또 다른 할머니 한 분이 팔짱을 끼고 왔다 갔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계신 듯했다. 이 분은 할머니의 어머니 시겠군.
“엄마!”
할머니가 아이처럼 달려가 엄마의 품에 안기더니 어린아이처럼 큰 소리로 엉엉 울기 시작했다.
“우리 아기, 왜 이렇게 울어? 엄마 봐서 좋지 않아?”
“엄마 너무 고생만 했지.”
엄마 할머니는 딸 할머니의 머리를 손으로 곱게 넘겨주며 따뜻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우리 딸이 고생 많이 했지. 남편도 없이, 엄마도 없이 너무 잘 살고 있더라. 고생했어.”
“미안해 엄마.”
“엄마가 미안하지. 가뜩이나 젊어서 남편 잃고 혼자서 돈 버느라 고생했는데 엄마까지 일찍 오는 바람에 기댈 곳도 없고 더 힘들었지? 엄마가 미안해.”
딸 할머니가 오열을 하며 엄마 할머니를 껴안았다. 엄마 할머니는 그런 딸 할머니의 등을 천천히 토닥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엄마가 얼마든지 안아줄게. 마음껏 울어. 우리 아기가 언제 이렇게 커서 엄마가 되고, 할머니까지 된 거야? 그래도 엄마 눈엔 아기야 아기. 우리 아기 많이 속상했어? 아이고, 엄마가 대신 울어줄 수도 없고~”
그치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엄마 할머니의 눈에서도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두 할머니의 찐한 포옹을 뒤로하고 나는 계속해서 커다란 문으로 걸어갔다. 나는 가족도 없고, 반려동물도 없고, 지인도 없는데 누굴 만나는 걸까. 아니지, 이렇게 아무도 안 만날 수도 있는 거잖아? 참 그동안 인생 헛살았다. 남은 게 아무것도 없네.
커다란 문 앞에 계단이 있었는데, 그 계단에 웬 꼬맹이가 돌멩이로 장난을 치며 앉아있었다. 나는 누굴 만난다는 거야? 이 꼬맹이는 누구야? 꼬맹이 앞에서 멈칫하니 꼬맹이는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어! 어어!”
꼬맹이는 벌떡 일어서더니 계단을 세 칸 뛰어 올라가 나랑 눈높이를 맞췄다.
“이야! 키가 3칸이나 컸네!”
누군지 알겠다. 얘는 과거의 꼬맹이 나 자신이다.
“어, 음... 미안해. 과학자가 되진 못했어. 큰 집도 없고 멋진 자동차도 없어.”
“구슬 아이스크림 먹어봤어?”
“응.”
“우와~ 그럼 멋진 카페에 앉아서 쓴 커피도 마셔봤어?”
“아메리카노? 마셔봤어.”
“매일 밤마다 늦게 잘 수 있어?”
“응.”
“이야~ 부럽다!”
부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어린 나 자신의 반짝반짝한 눈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니 심장이 뛰었다. 내가 다시 보고 싶었던 건 어린 나의 커다란 희망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