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초단편zip

시즌 알바

by 차여름



어쩐지 보수가 엄청 쎄다 했더니, 이 정도로 사람을 굴릴 줄은 몰랐다. 그래도 정말 넉넉히 챙겨주긴 한다. 당연히 최저시급은 훌쩍 넘고, 야근 수당과 주말 수당까지 모두 챙겨준다. 일이 어렵지는 않다. 그냥 단순 포장 업무일 뿐이니까. 다만 내가 기계가 된 듯 무한 반복해야 하는 것이 힘들 뿐. 두 달짜리 단기 알바로 들어온 지 한 달, 이제 반 지났다.

“오렌지! 저녁 먹고 사내카페 콜?”

“휴게실에서 기다릴게. 난 핫초코!”

포장 업무는 모두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데 8번의 과정을 거쳐 포장이 완료된다. 물건을 담고, 접고, 봉하고, 싸고, 붙이고, 메고, 고정시키고, 적재하는 식이다. 그래서 각 라인별로 8명씩 배정이 되어서 기계처럼 각자가 맡은 일을 하는데 라인마다 포장컬러가 정해져 있다. 나는 오렌지 컬러의 가장 마지막 파트에서 일을 하고 있고, 나에게 말을 건 블루는 블루라인의 첫 번째 파트에서 작업 중이다. 이 공장은 1년에 한 두 달 정도만 밤새 돌아가는 특수한 공장이다. 선거철마다 선거 알바 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매년 공장이 가동되는 시기에만 일을 해오는 블루 같은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나처럼 한 달 바짝 돈을 벌어보려는 단기 알바생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통성명을 하고 친구를 만들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여기서의 호칭은 ‘저기’ 아니면 본인이 일하는 작업대 컬러로 부른다. 여기에 일하러 오는 사람들은 공장에 붙어있는 기숙사에서 숙식을 하기 때문에 야간 업무나 주말 업무에 100% 동원이고, 바짝 돈을 벌려고 들어온 사람들인 만큼 설렁설렁 일하는 사람이 없다.


아마 고시원에서 고시 공부를 하는 고시생들이 이런 기분이 아닐까 싶다. 결국은 자기 싸움이라는 말처럼 혼자 일하고, 혼자 밥 먹고, 혼자 자고. 모두가 혼자라서 혼자인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그런 특이한 공기의 흐름이 있다. 뒷마당이 훤히 보이는 휴게실의 기다란 소파에 앉아 있는데 블루가 양손에 테이크아웃 컵을 들고 다가왔다.

“이건 디저트! 저녁 먹고 온 거지? 왜 이렇게 빨리 먹었어?”

“혼자 밥만 먹고 일어나는데 뭐. 마시멜로 추가 했어?”

블루와 나는 서로의 이름, 나이, 사는 곳, 원래 하던 일 등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그런 게 뭐가 중요하겠냐며 여기 있는 동안은 라인컬러로 부르며 친구 하자고 제안하는 블루는 올해가 5번째 알바라고 했다. 숙식을 모두 해결해 주는데 두 달 바짝 돈 벌어가기 좋다고.

창 밖엔 제법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데 내 손에는 마시멜로가 올라간 따뜻한 핫초코가 있다. 공장 1층 로비에는 카페가 있는데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면 카페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카페의 핫초코를 가장 좋아한다.

“힘들지? 내가 여기 맨 처음 왔을 때는 두 달 내내 울면서 일했어.”

“여기에 대거 이탈하는 추노 떼 많다며? 왜 너는 안 튀었어?”

“돈이 필요하니까 울면서 일한거지. 그래도 다행인 게 두 달짜리 일이잖아.”

“휴, 이제 한 달 남았네. 단순 반복이라 너무 지루한데 또 시간은 잘 간다?”

“이게 각오해. 두 번째 달이 진짜 바빠. 한 달짜리 알바들 또 왕창 들어왔어.”

“와 여기는 추노도 많고 그만큼 신입도 많구나.”

“일이 쉽고, 돈도 제법 주니까. 근데 무엇보다 내가 여길 매년 오는 이유는 공장장님이 진짜 열심히 하셔. 복지에도 신경을 많이 쓰시고.”

“카페는 좋긴 하더라. 근데 무자비하게 일을 시키는데 무슨 복지?”

“일은 진짜로 마감기한 때문에 물량 맞춰야 해서 바쁘게 돌아가는 것 같아. 근데 마감보다 일찍 끝내면 보너스 주던 해도 있었고, 공장장이라고 앉아서 명령만 내리는 거 아니고 업무도 같이 하셔.”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개고생 한다고 억만장자가 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힘드니 자꾸 추노가 생기지.”

“그래서 자꾸 신입을 많이 뽑는 것 같아. 못 버티고 많이들 튀니까. 근데 끝까지 버텨보면 나처럼 매년 오게 될걸?”

창 밖을 내다보는데 뒷마당으로 또 한 명의 추노가 쌩 하고 지나갔다. 피식 웃으며 핫초코를 한 모금 마셨다. 공장장이고, 복지고 내 알 바가 아니야. 나는 그냥 눈 딱 감고 바짝 일하고 돈이나 받아 가면 돼.


야간업무를 시작했다. 이런 일에 생각을 많이 하면 실수를 하거나 손이 느려진다. 최대한 머릿속을 비우고 내 움직임에만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 쳐서 쳐다보니 블루였다. 블루가 2층 난간 위를 가리키며 입을 뻥긋거렸다.

‘저기 봐, 공장장이야’

테라스처럼 생긴 2층 난간을 쳐다보니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2층 테라스에서 1층 작업장을 내려다보면 한눈에 다 보이는 구조였다. 공장장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다 나누고는 난간을 잡고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

“여러분, 잠깐 주목해 주세요!”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작업을 멈추고 모두 공장장 할아버지를 올려다봤다. 블루가 속삭였다.

저 나이로 배송업무도 뛰셔. 저분 보면 진짜 난 아무것도 아니다 싶어.”

블루의 말을 듣고 보니 할아버지가 정말 대단해 보였다. 아저씨도 아니고 할아버지처럼 보이는데 아직까지 공장에서 일을 하시다니. 일손이 얼마나 부족하길래? 본인 공장인 걸까? 아니면 돈을 대체 얼마나 받길래 저 나이까지 일을 하시는 걸까?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잔잔해지자 할아버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늦은 시간까지 고생해 주시는 여러분의 수고로움에 경의를 표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손길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여러분의 의견에 항상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최근 근무시간이나 업무량에 대한 불만이 속출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대한 많은 인력을 충원하여 해결하려 했으나 못 버티고 이탈하는 케이스가 많아 저도 안타깝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다년간 반복되는 문제였으므로 본질적인 해결이 필요할 것 같아 앞으로 주문 건에 대한 조건을 하나 추가하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로비 게시판에 붙여 놓을 테니 참고해 주시고, 모쪼록 남은 기간도 힘내주십사 격려의 말씀을 드립니다!”

와, 저 할아버지 굉장히 신사적인데? 작업반장의 ‘업무 시작!’ 신호에 맞추어 우린 다시 기계가 되어 작업을 계속했다.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블루가 내 손을 잡아끌고 1층 로비로 향했다. 게시판에 붙은 종이를 보고 블루와 나는 쾌재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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