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조용히 부산스러운 부엌. 냄비엔 찌개가 끓고 있고 밥솥은 증기를 배출하며 맛있는 밥을 짓고 있다. 식탁 위에 늘어져 있는 볼과 각종 양념들, 그리고 반찬통에 하나 둘 가지런히 담겨가는 반찬들. 어느덧 시곗바늘은 6시를 향하고 있었다.
“어서 일어나야 하는데....”
한 김 식혀놓은 계란말이를 조심스레 썰고 있는데 방문이 덜컥 열리며 손녀딸이 나왔다.
“할머니! 내가 싸 가도 된다니까? 몸도 안 좋으면서 뭐 이렇게 새벽부터 고생을 했어?”
“그래도 우리 손녀 수능날인데 도시락은 할미가 싸 줘야지.”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사랑스러운 내 손녀 지온이. 유일한 내 핏줄이자 똑똑하고 알뜰한 녀석.
“아유, 할머니보다 내가 더 요리를 많이 하는데 내 손이 더 빨라. 흐음, 근데 난 할머니 동그랑땡은 못 따라 하겠더라? 이 맛이 안 나.”
지온이가 슬그머니 식탁에 앉더니 맨 손으로 동그랑땡을 하나 집어 먹는다.
“시험, 늦는 거 아니야?”
“아! 나가야지! 할머니, 그거까지만 싸 주고 들어가서 쉬셔. 내가 다녀와서 치울게.”
후다닥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는 지온이를 보니 언제 저 어린것이 이만큼 컸나 싶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 아닌 조부모와 산다는 것이 부끄러울 법도 한데 지온이는 한 번도 그런 티를 낸 적이 없다. 부모 없는 아이 소리 안 듣게 하려고 아등바등 애썼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내가 이런 천사를 키울 수 있음이 감사할 정도로 지온이는 예의 바르고 성실하고 야무졌다. 지온이가 중학교 다닐 때 영감이 먼저 떠나고 난 뒤 지온이는 한층 더 의젓해졌다. 늘 무언가를 더 못 해줘 미안하기만 했는데 이런 마음이 무색할 만큼 바르고 건강하게 잘 커준 지온이의 수능이 오늘이다.
“할머니! 붙이는 핫팩 어디 있더라?”
“할머니 방 문갑에 있어. 거기 남은 거 죄다 니 방에 갖다 놔.”
“왜? 할머니 안 쓰고?”
“옷을 두텁게 입으니까 필요가 없더라고.”
도시락을 다 쌌고, 아침식사도 차렸다. 부엌도 다 치웠고 뭘 더 해줘야 하나 두리번거리는데 어느새 교복을 입고 나온 지온이가 식탁에 앉았다.
“할머니, 이제 더 해 줄 것도 없어. 할머니 의자에 앉으셔. 두유 하나 드려?”
시계를 힐끔 보니 6시 30분이다. 지온이가 7시에 나간다고 했으니 30분 정도는 여유가 있다. 두유를 마시며 거실에 있는 흔들의자에 앉아 아침 먹는 지온이와 대화하는 게 우리 집 아침일상이다. 새벽부터 오래 서 있었더니 허리랑 무릎이 아프다 못해 찢어지는 고통이다. 벽을 잡고 느린 발걸음으로 흔들의자로 가 털썩 앉았다.
“오늘 춥다는데 교복 말고 따뜻한 옷 입지 그랬어.”
“아니야, 장소도 낯선데 옷이라도 입던 옷으로 입어야지. 핫팩 챙겼고 패딩 입으면 돼.”
“감기 걸릴라. 목도리도 잘하고 가.”
“할머니, 나 잘할 수 있겠지? 너무 긴장돼.”
“너처럼 공부 잘하는 애가 걱정은...”
“아니 할머니, 잘하는 거랑 열심히 하는 건 다르다니까? 일단 나는 가고 싶은 과에 전액 장학금으로 가는 게 목푠데, 그게 안 되면 일단 전액 장학금 주는 곳으로 아무 데나 갈 거야. 일단 입학을 하고 전과를 하든, 편입을 하든 하면 되니까.”
묻지도 않았는데 본인의 계획을 술술 얘기하는 지온이를 보니 얘는 어디에 내놔도 잘 살 것 같다. 할머니가 전혀 도와주지 않아도 이미 스스로 잘해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만큼 열심히 노력해 오던 것이 있으니 무조건 잘 될 거야. 할미는 너를 믿는데 너 자신이 널 안 믿어 주면 어떡하니.”
“아이, 안 믿는다는 게 아니라, 긴장되고 걱정된다는 거지 뭐...”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엄청 뿌듯하다고 하셨을게다.”
“오랜만에 할아버지 보고 싶네. 할머니! 나 시험 끝나고 오늘 같이 할아버지 뵈러 갈래?”
“이런 날 뭣하러 쭈그리방탱 할머니랑 있어? 친구들하고 놀다가 와.”
“아유, 됐어.”
조끼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어둔 만 원짜리 다섯 장을 꺼냈다. 이런 날이라도 용돈이라며 시원하게 쥐어주고 싶었다.
“그동안 친구들이랑 제대로 놀지도 못했잖아. 오늘 같은 날 친구들하고 놀고 늦게 들어와. 할머니는 먼저 자고 있을게.”
“그치만 할머니 밥도 챙겨야 하고....”
“그래서 새벽부터 저렇게 식사 준비를 다 해놨잖니? 밥도 있고 찌개도 있고 반찬도 많으니까 차려먹으면 돼. 걱정하지 마.”
지온이는 표정을 못 숨긴다. ‘그래도...’ 라고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척 용돈을 받아 들면서도 좋아 죽는 표정이다. 그래, 19살이면 한창 친구들하고 노는 게 재미있을 나이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새끼. 식사를 마친 지온이가 나갈 채비를 끝내고 내 무릎 위에 담요를 덮어줬다.
“할머니, 나 다녀올게!”
“그려, 시험 잘 볼 거야. 할미가 집에서 기도하고 있을게.”
“응, 할머니 사랑해!”
지온이가 날 꼭 안아주고 해맑게 웃으며 나갔다. 도어락이 잠기는 소리가 나고 한참 동안 적막이 흘렀다.
“이제 나와도 됩니다.”
내 한마디에 거실 베란다 문 뒤에서 인상을 쓴 저승사자와 씩씩거리는 영감이 나왔다. 저승사자는 연신 시계를 보며 한숨을 내 쉬었다.
“처음에 말씀하신 건 1시간이었잖아요, 할머니. 이러시면 저 진짜로 곤란해요.”
“아니 그게... 내가 도시락만 싸 놓고 가려고 했는데 그래도 손녀 마지막인데 인사는 해야 하지 않겠소? 미안해요.”
씩씩거리던 영감이 옷을 털며 이야기했다.
“지온이는? 잘 갔고?”
“네. 덕분에 인사 잘하고 웃으면서 나갔어요.”
저승사자도 옷매무새를 매만지며 이야기했다.
“무슨 할아버지가 힘이 이렇게 세냐고요. 저 뒤에서 실랑이하느라 혼났네.”
“아니 그러니까 애랑 인사할 시간을 조금만 달라니까 그걸 안 된다고 딱 잡아떼고 그러나? 어떡해, 못 가게 잡아서라도 지온이 마지막 배웅 하게 해야지.”
“당신이 지온이를 못 봐서 아쉽겠네요.”
“아쉽지 그럼! 지온이 보러 왔다가 저승사자랑 씨름하고 있을지 누가 알았겠어! 됐어. 지온이만 잘 갔으면.”
“이제 갑시다. 난 준비됐어요.”
“준비... 된 거야?”
“그럼요. 당신이 미리 와서 알려준 덕에 얼마 없지만 내 짐도 최소한으로 남기고 싹 정리했고요, 지온이 학비로 쓸 통장이랑 도장도 눈에 띄는 곳에 올려놓고 왔어요. 장례식 비용으로 쓸 돈은 첫번째 서랍에 바로 잘 보이게 해 놨고, 상조회사 증권도 꺼내놨고. 내가 글을 쓴다면 편지도 써 놓고 왔을 텐데...”
“에잉, 쯔쯧. 그러니까 노인대학 가서 한글 공부 좀 하라고 내가 몇 번을 이야기했어?”
“저승사자님, 이 영감 좀 데려가세요.”
“어허? 뭐라는 거야? 당신이랑 나랑 지금 같이 가는 건데?”
영감이랑 투닥거리다 보니 꼭 젊었을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눈을 꼭 감고 기도했다. 지온이 시험 잘 보게 해달라고, 그동안 지온이를 키울 수 있음에 감사했다고, 앞으로도 지온이의 앞날에 행복만 가득하게 해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