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신문칼럼을 몇 번째 다시 읽고 있는지 모른다. 마음이 싱숭생숭하니 읽었던 부분만 계속 읽고 있다. 밤 11시가 넘어 현관에서 우당탕탕 소리가 들린다.
“포니, 늦었구나.”
“11시 밖에 안 됐는데.”
“... 또 그 친구랑 노느라 늦은 게냐.”
포니의 입 대신 발이 대답했다. 맞다고. 방으로 가던 포니의 발걸음이 멈췄다.
“인간과 너무 가깝게 지내는구나.”
“알겠다고.”
포니는 날 쳐다보지도 않고 말을 끊으며 냉큼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인간이랑 놀더니 인간 같아졌다. 보통 인간들은 이런 자녀를 사춘기라고 명명하던데, 마치 사춘기가 온 인간 같아. 포니가 귀가한 걸 확인했으니 이제 신문 덮고 자러 가야겠다.
아침잠이 그렇게 많던 포니가 새벽같이 일어나 치장을 하는 게 예사롭지 않다. 포니는 대학교에선 교복도 안 입고 원래 이렇게 다 꾸미고 다닌다고 하지만 마법사 인생 500년이 넘으면 마법을 쓰지 않고도 알 게 되는 것이 많다. 저건 꼭 사랑에 빠진 인간의 모습이다. 아침밥을 차려준지 10분이 넘었는데 아직 한 숟가락도 뜨지 않고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다.
“포니, 인간에게 기억 지우기 마법은 2번밖에 쓸 수가 없어. 앞으로 네가 살 날이 500년 훨씬 그 이상일 텐데 신중해야 한다. 인간과 너무 친하게 지내면 안 돼.”
“내가 알아서 할게.”
방금까지도 핸드폰을 붙잡고 실실거리던 포니가 인상을 썼다. 지겹겠지, 듣기 싫겠지. 이 얘기도 벌써 10번이 넘었으니까.
“인간이 된다는 건 죽겠다는 거나 다름이 없어.”
“아, 그만 좀 해! 다 안다고!”
“그걸 아는 애가 인간하고 사랑에 빠져?”
포니는 놀란 표정으로 입을 앙 다물었다. 꼭 지 엄마랑 똑같은 표정이다. 포니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나는 더더욱 포니가 인간이 되는 걸 막아야 한다.
“내 인생 내가 알아서 살게, 아빠는 신경 끄라고.”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스스로 컸지, 아빠가 날 키웠다고? 그렇게 쫓아다니면서 잔소리하고 매일 숨 막히게 할 거면 엄마가 인간 된다고 할 때도 말리지 그랬어!”
포니가 벌떡 일어나 신경질적으로 가방을 챙겨 들고 현관으로 뛰어나갔다. 늘 이런 식이다. 걱정되어 내뱉는 말들이 결국엔 서로를 공격하고 후회만 남긴다.
포니 엄마는 의사였다. 인간 세계에선 의술이 좋은 의사로 통했을진 몰라도 이건 마법이었다. 마법사의 마법은 무한정 쓸 수 있는 손기술 같은 것이 아니라 거래에 의한 마법의 힘으로 사용할 수 있는 대가 같은 것이다. 인간들의 병이란 약으로도 나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마법을 거하게 사용할 일이 많진 않았는데 어느 날 임산부와 태아를 살리기 위해 강력한 마법을 사용했다. 이때 집안도 휘청했고 포니 엄마도 한동안 아팠다. 마법사는 인간에게 존재를 들키면 이틀 안에 마법의 힘이 사라지고 인간이 된다. 1000년 이상 살 수 있는 마법사가 인간이 된다는 건 죽음을 택한다는 뜻과 다름이 없다. 주로 마법규칙을 어기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받는 가장 큰 벌이 인간이 되는 것이니까.
“여보, 당연히 기억 지우기 마법을 써야지. 당신이 인간이 될 순 없잖아.”
“내가 임신한 환자한테 썼던 부활마법보다 더 강력한 마법이야. 이번에도 집안이 휘청거렸는데 기억 지우기 마법 때문에 가족을 빚더미에 앉힐 수는 없어.”
“그래도 어떻게 당신이 인간이 된다는 거야!”
“난 가족을 생각해서 그 마법을 쓸 수가 없어. 그리고 몇십 년마다 자리 옮겨가며 새로운 사람인척하고 개원하는 거 이젠 너무 지쳐. 여보, 난 인간들이 좋아. 이렇게 인간들이 내 능력을 필요로 하고 그들을 도와줄 수 있을 때 너무 행복해.”
“이렇게 서로 힘들 거 알면서 왜 그런 마법을 썼어...”
“배속 아기가 죽었다는데 어떻게 마법을 안 써. 방법이 있는데 어떻게 안 쓰냐고. 나도 아이가 있는 엄마로서 그걸 어떻게 넘겨.”
“가족을 생각한다면 인간이 되어선 안되는 거잖아... 흐흑”
“가족을 생각해서 이런 결정을 하는 거야. 이러고도 내가 마법사로 살겠다는 건 내 개인적인 욕심이니까. 사랑해, 여보.”
그렇게 포니 엄마는 기억 지우기 마법을 쓰지 않고 마법의 힘이 있을 때 서둘러 앞으로의 삶을 준비했다. 그것이 너무 순식간이라 마음의 준비를 할 여유도 없었다. 마법사가 인간이 되기로 결정하면 연관된 인간들에겐 자동으로 기억 지우기 마법이 먹힌다. 포니 엄마가 마법사임을 알고 있던 병원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 기억이 사라졌고, 포니 엄마는 진정한 인간의사가 된 것이다. 나는 당장 포니를 혼자 키워야 했으니 일단 개인적인 감정은 묻어뒀다. 이따금씩 불쑥 튀어나오는 그리움과 원망은 아빠 손이 필요한 포니를 외롭게 만들었다. 포니를 외롭게 만든 벌일까, 대체 왜 이렇게 우리 가족들은 인간을 좋아할까?
비가 내린다. 이런 날은 외출을 안 하는 게 좋다. 마법사는 비에 젖지 않아 인간들에게 들킬 위험이 크다. 포니 이 녀석, 또 그놈을 만났겠지, 위험한데. 쉴 새 없이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걸었다. 집에 거의 다 왔다는 신경질적인 답장을 받았다. 그래도 걱정되는 마음에 포니를 직접 데리고 올 요량으로 문 밖까지 나가 포니를 기다렸다.
“비가 엄청 퍼붓네. 포니 너는 하나도 안 젖었고.”
“응? 오빠가 자기 어깨 젖어가며 우산을 나한테만 씌워줘서 그렇지.”
포니와 그 녀석이다. 나도 모르게 건물 옆으로 몸을 숨겼다. 포니 혼자 오는 줄 알고 우산도 없이 그냥 나왔는데 절대 들키면 안 된다. 아, 보여주기 식 우산이라도 가지고 나올걸.
“조금 이상하다고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사고가 날 뻔 한 순간에 달려오던 자동차가 갑자기 멈춘 건 그저 다행이라고만 생각했어. 그치만, 다 함께 며칠 밤을 새우고도 멀쩡히 쌩쌩한 모습도, 그리고 오늘처럼 비 오는 날 아무리 우산을 썼다고 해도 습기 하나 없이 뽀송하다 못해 건조하기까지 한 모습도. 포니야, 너 마법사... 맞지?”
결국 이 사달이 났다. 얼른 머리를 손으로 가리는 척을 하며 아이들 눈앞에 나타나 포니를 불렀다.
“포니야!”
“헉, 큰일이다. 아빠네! 오빠 미안! 연락할게!”
포니도 손으로 머리를 가리는 척을 하며 우산 밖으로 나와 곧장 나를 향해 뛰어왔다. 그대로 우리 둘 다 서둘러 집 안까지 뛰어 들어왔다. 약간의 적막이 흘렀다.
“포니, 인간이랑 가깝게 지내지 말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건만...”
“어차피 아빠도 인간이랑 어울리잖아. 우린 인간이랑 어울릴 수밖에 없잖아.”
“그치만 인간으로 사는 것과 마법사로 사는 것은 완전 다르지.”
“인간이 마법사가 될 순 없어?”
“마법사가 인간이 될 순 있어도 인간이 마법사가 될 순 없어.”
“그럼 내가 인간이 될래.”
“뭐, 뭐?”
청천벽력 같은 소리다. 자진해서 인간이 되겠다는 말을 또 듣게 되다니. 다른 마법사들은 평생 한 번도 못 듣는 말을 나는 3번이나 들었다.
“인간이 된다는 건 죽겠다는 거나 다름이 없다는 거 나도 알고 있어.”
“100살도 못 채우고 늙고 추해져서 죽어버릴 게다.”
“마법사로 500년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이렇게 인간에게 들킬까 평생 전전긍긍하면서 살아가는 게?”
“네가 태어나기 전, 네 언니가 있었다. 그 애도 결국 인간이 되어 버렸지.”
포니가 태어나기도 전에 포리라는 딸이 있었다. 유독 밝고 활기찼던 포리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마술사라는 직업을 가졌다. 마술사는 마법사와 비슷하지만 마법이 아닌 눈속임 기술로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포리는 당연히 마술 중간중간 마법을 사용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잔마법이라 별 것 아닌 장난 수준이었지만 의미 없는 마법 남발이라 마법세계의 제제가 들어왔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고 사람들이 환호하는 이 직업을 포기할 수 없는 포리는 그냥 인간이 되기로 결정했다. 나는 당연히 말렸지만 와이프는 포리의 의견을 존중했다. 그것이 포리에게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이라면 부모가 응원해 줘야 한다고.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이 의미 있고 즐겁다던 포리가 엄마와 함께 인간으로서의 삶을 준비할 때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여전히 나는 저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는 데 대충은 알고 있었어. 언니였구나. 현명했네.”
“뭐라고? 현명?”
“난 마법 같은 거 필요 없어. 마법을 사용하면서 사는 것보다 마법사인 것을 숨기며 사는 나날이 더 길었어. 나도 남들처럼 밤새고 힘들어하기도 하고, 비 오는 날은 옷이 다 젖었다는 투정도 부리고 싶어. 남들과 다른 걸 자랑하는 게 아니라 숨겨야 하는 삶이 얼마나 힘든지 아빠가 알아?”
“인간이 되면 마법세계와 관련된 기억은 사라지고 더 이상 마법을 느낄 수 없어.”
“당연히 그렇겠지. 그게 왜? 그러려고 인간이 되는 거야.”
인간이 되겠다는 마법사 3명을 한 번의 인생에서 다 만났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가족.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었다. 이건 나에게 내린 저주가 아닐까?
마법의 힘을 예민하게 느끼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대충 초자연적인 현상이라며 둔하게 넘기는 인간도 있다. 마법의 기운을 강하게 느끼는 인간이 가까이 있을수록 더 진한 안개를 둘러 몸을 감춘다. 포리와 애들 엄마를 비롯하여 내가 안개를 둘러가며 살펴볼 인간이 한 명 더 생겼다. 스스로 마법사이길 포기하며 인간이 되었지만 나에겐 여전히 사랑하는 나의 마법사 가족이니까. 아! 저기 포니부부가 걸어간다.
“자기야, 그거 알아? 안개가 자욱이 끼는 건 마법사가 우리 주변에 있다는 뜻 이래.”
“뭐야, 오빠가 애야? 그런 걸 믿어?”
포니의 말에 내 가슴이 찢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