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초단편zip

by 차여름


천국의 시간은 이승의 시간보다 빠르게 흐른다. 벌써 세상은 30년이나 지났겠구나.


"뽀삐. 오랜만에 한번 가보자."

얘는 내 친구 덕구. 덩치는 산만하고 다소 위협적으로 생겨서 모두가 기피하는데 이래 봬도 이승에서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다. 표정도, 표현도 모두 사나워서 다들 지옥에서 온 악마라고 오해할 정도이긴 한데 사실 속은 엄청 따뜻한 걸 남들이 몰라줘서 내가 다 서운할 지경이다. 평생을 오해받으며 살아온 덕구는 무뎌질 만큼 무뎌져 아무렇지도 않다고 한다. 평생 받아온 오해뿐이겠어? 직업이 지옥문지기라 끝없이 밀려오는 나쁜 사람들을 보는 게 일이다 보니 웬만한 강철심장보다 더 강한 심장을 가지고 있을 테다.


덕구가 일하는 곳은 죽어서 저승에 온 사람들을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어 보내는 분류장 같은 곳이다. 지옥문지기는 지옥에서 온 악마들이 하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문지기까진 천국용병이다. 악마를 세워놨더니 멀쩡한 사람들까지 다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별의별 짓을 다 해서 퇴출당했다고 한다. 마침 덕구는 비주얼도, 목소리도, 말투도 악마를 연상케 할 만큼 위협적이었기에 지옥문지기 1순위로 스카웃 당했고, 덕구 자신도 만족스러워하는 일이었다.


오늘 덕구가 가자고 부른 곳은 바로 이 분류장이다. 찾을 사람이 있거든. 덕구가 지나가자 많은 사람들이 겁을 내고 힐끔힐끔 쳐다보며 자리를 피했다. 덕구는 불독과 도베르만 혼종이라 많은 사람들이 무서워하고 겁낼만한 피지컬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직업이 직업이니인 만큼 어떻게 하면 더 무섭고 위협적으로 보일까 스스로 연구하는 통에 덕구에게 풍기는 스산한 공포는 날이 갈수록 어둡고 커져만 갔다.

"이 사람이야?"

"아니야.."

"그럼? 얘야?"

"아니야"

덕구와 내가 찾고 있는 사람은 날 버린 주인이다.


-

"뽀삐야! 우리 차 타고 저기 멀리 산책하러 갈까?"

분명히 산책이라고 했지만 쎄한 느낌이 들었다. 견생 10년이면 이제 거의 인간 언어의 뉘앙스까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주인은 평소와 다르게 케이지에 넣지도 않고 날 품에 안고 차에 탔다. 창문도 열어줬고 쉼 없이 쓰다듬어 줬다. 나의 불안은 집과 멀어질수록 단단한 확신이 되었다. 주인 품에 안겨 옷자락 냄새나 실컷 맡았다. 절대 잊지 말아야지.


주인은 이제 곧 결혼한다고 했다. 결혼할 여자는 개를 싫어한다고 했고, 나는 자연스레 부모님 댁이라고 불리는 곳에 맡겨졌다. 하지만 늙은 새로운 주인은 날 산책시켜 주지도, 자주 씻겨주지도 않았고 나는 원래 주인이 너무 보고 싶었다. 밤새 짖기를 여러 날, 드디어 주인이 날 찾아왔다. 나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운 강아지를 못 잊고 찾아온 게 분명해. 새로운 여자주인과 함께 날 다시 사랑해 주고 키워주겠지?

그렇지만 주인은 혼자 날 데리러 와서 산책을 가자고 했다. 산책시켜주러 온 걸까? 그치만 난 한 번도 차를 타고 산책 간 적이 없다. 저 차는 병원 가거나 여행 갈 때 말고는 탄 적이 없다. 일단 산책 가자고 하니 목줄을 물고 나왔다. 주인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내게 하네스를 채우고 함께 차에 탔다. 낯익은 냄새에 낯선 냄새가 섞여있다. 낯선 냄새는 새로운 주인의 냄새겠지.


한참을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산이었다. 산책이라더니, 산행이었어? 난 신기한 것이 더 많은 산을 좋아한다. 산책보다 더 좋아하는 산행을 시켜주다니! 역시 주인이 최고야! 방방 뛰며 크게 짖었다. 주인은 옅은 미소를 띠고는 산책로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한참을 걸어가다가 주인이 두리번거리다가 목줄을 길가 나무에 묶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봤고 주인은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아 땀을 닦았다. 마지막 선물이 산행이었구나. 고마워 주인. 주인 다리에 코를 비볐다.

잠시 후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자 주인은 벌떡 일어나 허겁지겁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빠른 걸음으로. 빨리 걷는가 싶더니 내리막길에서는 뛰기 시작했다. 그러다 넘어질라. 안 짖을 테니 천천히 내려가.



-

분류장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낯익은 냄새는 절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덕구는 미세한 내 표정을 읽었는지 더 적극적으로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보는 주인은 많이 늙었다. 어쩌다 여기에 오게 되었을까? 더 오래오래 즐겁게 살다가 오지. 이마에 인상주름이 깊게 파여있었다. 주인은 멀리서부터 날 알아보고 눈알이 튀어나올 듯 동그래져서 걸음을 멈췄다. 여기서 만나리라 생각도 못했겠지.

"뽀삐! 찾았다!"

덕구가 정확히 짚었다. 한 동네 살며 산책할 때마다 마주친 나날이 몇 년이라 덕구도 주인의 얼굴을 알고 있었을 텐데 늙으면 못 알아보겠지라고 생각했다. 그치만 생각해 보니 덕구도 개였으니 나처럼 냄새로 사람을 기억할 텐데,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주인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손을 달달달 떨었다. 덕구가 무섭기도 했지만 본인이 버린 강아지를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밀려오는 죄책감이 다른 공포보다 컸겠지.

"아니야"

"킁킁, 맞아! 맞잖아!"

"너무 오래 지나서 너도 깜박했나 봐. 확실히 아니야"

"그래?"

덕구는 또다시 인상을 쓰고 두리번거리며 날 버린 주인을 찾았다. 한시름 놓았다는 듯이 작게 숨을 몰아쉬는 주인의 두 눈이 나에게 콕 박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서 산을 내려가던 주인의 뒷모습을 안 보일 때까지 바라보고 있던 나였는데, 이젠 반대로 되어 주인이 내 뒷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을 때까지 쳐다보고 있다. 눈치 빠른 덕구라 뒤돌아 볼 수가 없다. 그대로 덕구와 계속 계속 앞으로 앞으로 걸어갔다.

오랜만이야, 반가웠어. 이젠 진짜 안녕.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포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