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초단편zip

열렬한 사랑

by 차여름


“로미야. 시원하게 맥주 한 캔 할까?”

오빠는 냉장고에서 차가운 맥주를 꺼내와 단숨에 캔을 비웠다. 시원해 보이기보단 답답해 보였다. 그동안 봐 온 오빠는 기분이 안 좋을 때만 이런 식으로 맥주를 마셨다.


오빠 집에 온 지 한 달 정도 된 것 같다. 오빠는 나를 본 순간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날 빤히 바라보고 가만히 나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주는 손길에 나도 모르게 마음을 뺏겨버렸다. 이렇게 잘 생기고 따뜻한 사람이 날 좋아해 주다니, 나에게 이 세상 모든 행운이 한 번에 찾아온 기분이었다. 오빠는 늘 나를 ‘로미야’라고 따스하게 불러주고, 그럴 때마다 나는 심장이 간질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오빠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내가 오빠 집에서 함께 살기로 했다. 하루 중 내가 제일 기다리는 시간은 오빠가 퇴근 후 함께 저녁을 먹으며 대화하는 시간이다. 좋은 이야기도, 나쁜 이야기도, 웃긴 이야기도, 슬픈 이야기도 듣다 보면 어느새 12시가 훌쩍 넘곤 했다. 오빠는 이 넓은 집에 혼자 사는데, 나라도 없었으면 외로워서 어떻게 버텼을까 싶었다. 나랑 대화하다 보면 오빠는 화내던 마음을 스스로 정리하기도 하고, 인정받았던 순간을 되짚어보며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보였다. 단순히 잘 생긴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던 첫 인상과는 다르게 지금은 오빠의 인성까지도 내 마음을 잠식해가고 있었다.


“무슨 일 있었어?”

“휴, 아니야. 열받긴 했는데 내 잘못도 있긴 있으니까.”


오빠의 눈은 왠지 모르게 슬퍼 보였다. 분명 신 부장 그놈 때문일 거야. 요 며칠간 신부장이라는 사람 때문에 오빠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속상했었는데 기어코 우리 오빠가 술을 마시게 하는구나.

오빠는 턱을 괴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런 오빠를 나도 빤히 바라보았다. 오빠의 눈은 슬퍼 보였고 오빠의 슬픔에 동화되어 오늘은 저녁도 건너뛰었다.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음 날부터 오빠의 퇴근이 9시가 넘었다. 저녁은 고사하고 바라보고 이야기 나눌 시간도 없었다. 피곤해 보이는 오빠는 집에 오자마자 씻고 쓰러져 자기 바빴고, 하루종일 오빠를 기다리던 나는 잠든 오빠가 깨지 않고 푹 자길 빌어주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현생에 지친 오빠는 나와 대화도 하지 않았고, 날 바라봐 주지도 않았다. 오빠는 이따금씩 ‘신 부장 새끼...’ 라며 욕을 했다. 하, 신 부장 그놈 때문일 줄 알았어.


나는 조금씩 아팠다. 하지만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오빠는 나까지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주말에도 회사에 나가는 듯했다. 나는 점점 안색이 노래졌고, 오빠를 쌩쌩하게 바라 볼 에너지조차 없었다. 어쩌면 오빠도 이런 나를 한 번쯤은 본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죽어가는 상태였던 것 같다. 그 어떤 것도 나에게 에너지가 되지 않았다. 오빠의 사랑스러운 눈길과 따스한 목소리, 다정한 사랑이 필요했다. 그래도 오빠가 원망스럽진 않다. 너무 바쁘니까, 본인의 삶도 없이 이렇게 힘들게 사는데 나까지 챙길 여유가 없겠지. 내가 싫어진 게 아니라 이게 전부 신 부장 그놈 때문인 거라고. 그놈이 우리 오빠를 힘들게 하는 바람에......


어느 날 대 낮에 들리는 문소리에 온 힘을 짜내어 오빠를 바라보았다. 실로 오랜만에 밝은 표정의 오빠를 보는 것 같았다. 그간 오빠를 힘들게 하던 일이 끝났나 보다. 이제 다시 여유가 생겼으니 나를 바라봐주겠지? 하지만 오빠는 ‘지아’라고 부르는 다른 여자를 데리고 왔다.

오빠가 화장실을 간 사이 그 여자는 두리번거리며 방을 둘러보더니 나를 보고는 인상을 썼다.

“뭐야? 이 송장은?”

“송장... 이라니... 쿨럭... 당신은 누구신데...”

“그쪽이야말로 누구세요? 이 집에 안 어울리는데?”

그때 오빠가 방으로 들어와 곧장 나를 안아 들었다. 이것 보라고. 어디서 굴러들어 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려고. 내가 본처라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오빠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때려 박혔다.

“죽었네.”

오빠는 나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이게 무슨 일이지? 쓰레기통에 누워있자니 창문 밖으로 새파란 하늘이 훤히 보였다.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하늘을 정말 오랜만에 보는 기분이다. 방에서 흥얼거리는 오빠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믿기지 않는 현실에 머리가 팽팽 돌아가다 보니 두통이 심해졌다. 이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난 이렇게 죽는 거구나. 아니 사실은 오빠의 사랑을 받지 못했을 때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 무슨 미련이 남아서 여태껏 목숨을 부여잡고 있었을까. 평생에 받을 사랑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잔뜩 받았고, 오빠와의 행복했던 시간들로 오빠가 없는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지아’라는 여자한테는 없는 오빠와의 추억이 나한테는 있다. 그러니까 내가 이긴 거야. 나는 그 추억이 있었기에 눈을 감을 수 있어. 오빠가 원망스럽지는 않다.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줘서, 사랑받는 기분을 알게 해 줘서 고마웠어. 사랑을 주진 못하고 받기만 하고 가서 미안해.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더 많은 사랑을 오빠에게 줄게. 사랑해.







“그래서 이번엔 프리지아라고? 지난번에 키우던 장미는?”

“죽었어. 장미 키우기 어렵더라.”

“그래, 장미가 집에서 키우기가 얼마나 까다로운데. 프리지아는 햇빛에 두면 키우긴 수월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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