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아, 여기 보렴!”
“행운이 오늘 너무 예쁜데? 여기도 봐줘!”
오늘도 나는 카메라 세례로 하루를 시작한다. 사람들은 내가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게 기쁨이라고 했다. 처음엔 낯선 어른들과 무시무시하게 생긴 카메라와 번쩍이는 플래시까지 엄청 무서웠지만 아빠와 함께여서 조금씩 이겨낼 수 있었다. 아빠 품에 안겨 있기만 해도 사람들은 나를 엄청 예뻐하고 사랑해 준다. 이제는 이 낯선 사람들의 관심이 즐거울 지경이다.
“행운아, 사탕 어때? 막대사탕 하나 줄까?”
한 아저씨가 나에게 막대사탕을 내밀었다. 나는 입을 삐쭉 내밀며 날 안고 있는 아빠 품으로 파고들었다. 사탕은 살찐단 말이에요~
“하하하, 행운이 다이어트하는 거야? 사탕 하나쯤은 괜찮아!”
사탕을 마다하는 내 모습이 사랑스러운지 연달아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슬그머니 아빠를 쳐다보니 아빠는 사랑스러워 죽는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난 사탕보다 아빠가 더 좋아!
“행운아, 숫자 5가 쓰인 카드 가지고 올래?”
내 나이에 이런 작업을 수행한다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라고 했다. 나는 그냥 반복해서 보고 들으니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인데, 학교도 안 다니고 이렇게 정확히 숫자 5가 쓰인 카드를 골라낸다는 것은 내가 천재라는 증거라고 했다. 여러 방송에서 나의 지식을 테스트하곤 했다. 그래봤자 간단한 카드 고르는 수준이었지만.
“행운이가 정확히 숫자 5를 가지고 왔습니다!”
“우와아아아아!”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들리고 아빠는 나를 높이 들어 안았다. 이런 숫자 카드 고르는 게임만 해도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고 좋아해 준다. 사실 나는 숫자를 20도 넘게 셀 줄 안다. 근데 왜 말 안 하냐고? 사람들은 내가 그 정도까지 셀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알려주려고 기다리고 있다. 내가 숫자 카드를 정확히 가져오는 이런 일은 정말 쉽다 못해 재미가 없다. 하지만 내가 즐거운 마음으로 신나게 하는 이유는 아빠가 엄청나게 좋아해서다. 난 아빠가 행복해하는 게 참 좋다. 나는 한글은 읽을 줄 모르지만 아빠는 늘 나랑 아빠가 나온 기사나 방송을 핸드폰으로 보여주며 하나하나 다 읽어주곤 했다. 무슨 말인지는 정확히 다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사람들이 나를 엄청 좋아해 준다는 사실이다. 내가 뭔가 특별히 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다들 내가 귀엽고 똑똑하다고 좋아해 준다.
“역시 행운이는 아빠의 행운이야!”
내가 아빠 딸인 것이 행운이다. 내 이름이 행운인 것이 행운이다. 그냥 귀엽다는 이유로 모르는 사람들이 다들 나를 좋아해 주다니.
내가 방송에 나가고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아빠 품에 안겨 다니다 보면 길거리에서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인사를 하곤 한다. 매일 사람들을 쳐다보며 인사하는 게 바쁠 지경이다. 내가 유명해질수록 아빠는 나를 더 많이 꾸며주기 시작했다. 예쁜 머리띠도 씌워주고, 리본핀도 많이 사줬다. 반짝거리는 원피스와 포근한 망토도 입혀줬다. 내가 예쁜 옷을 입으니 더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예쁜 옷이 한 두벌 정도 있었는데 날이 갈수록 내 옷장이 점점 커졌다. 이제는 협찬이라는 것도 받는다고 했다.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른들 대화를 들어봤을 땐 옷을 공짜로 준다는 뜻인 것 같다. 나는 아빠와 함께 옷가게에 가서 예쁜 옷과 모자를 골랐고, 새로운 옷을 입고 카메라 앞에 나타날 때마다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재미있었다. 그냥 예쁜 옷 입은 것만으로도 나는 모두의 행운이가 되어 평생 받을 사랑을 듬뿍 받는 기분이다.
오늘도 처음 보는 새로운 가게에 가서 내가 입을 옷을 골랐다. 나랑 아빠가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매장 직원은 ‘행운이다!’ 하면서 우리를 알아봤다. 아빠와 나는 신중하게 옷을 쇼핑했다.
“행운아, 이 옷 불편하지 않아? 괜찮아?”
아빠는 옷을 입을 때 꼭 나한테 옷이 불편하지 않냐고 세심하게 물어봐준다. 나는 사실 불편해도 아빠가 예쁘다고 입혀주는 옷이라면 그냥 다 입을 거지만, 이렇게 자상하게 챙겨주는 아빠의 멘트에 다시 한번 생각하고 쳐다보게 된다. 언젠가 한 번은 허리를 둘러 뒤 쪽으로 묶은 원피스 끈이 너무 불편해 나도 모르게 잡아당겨 끊어버린 적이 있다. 옷이 너무 약하게 만들어진 거였겠지만 그 이후로는 아빠는 옷을 고를 때 내가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인지를 가장 중요한 포인트로 체크하게 되었다. 빙글빙글 돌아보고는 옷이 편하다는 뜻으로 아빠를 향해 끄덕였다. 아빠는 세상 멋진 표정으로 나에게 밀짚모자를 씌우고는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자, 준비 됐으면 이제 출발해 볼까요? 행운공주님?”
여러 방송스튜디오뿐만 아니라 야외촬영도 엄청 많이 다녀봐서 이제 웬만한 촬영장은 익숙하다. 방송국 스튜디오로 가면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도 척척, 정수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척척 안다. 야외 촬영할 때도 언제가 촬영 중이고, 어떻게 하면 촬영이 끝나는지, 어느 카메라를 보고 이야기해야 하는지, 뒤에 앉아 있을 땐 어떻게 앉아 있어야 하는지, 어느 타이밍에 내가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전부 다 익숙하기에 정확히 안다. 촬영장마다 분위기라는 것이 달라서 내가 아빠랑 떨어져 있어도 편안한 촬영장이 있고, 아빠와 떨어지면 불안한 다소 경직된 분위기의 촬영장도 있다. 오늘의 느낌은 후자일 것 같다. 아빠는 나에게 공주님이라고 부르며 여전히 따뜻한 손길로 내 옷매무새와 얼굴을 만져줬지만 아빠의 표정이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무슨 일이지? 오늘은 무슨 촬영이지?
“행운아, 오늘 촬영도 잘할 수 있지? 아빠가 우리 행운이 많이 사랑해! 알고 있지?”
원래 차에서는 날 카시트에 태우는데 오늘은 아빠 무릎에 날 앉혀줬다. 그리고 촬영장까지 가는 내내 계속해서 날 쓰다듬고 꼭 안아줬다. 아빠의 말이 날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아빠 무릎에 앉아 아빠 품에 폭 안겨서 창 밖을 실컷 쳐다볼 수 있어서 좋았다. 카시트에 앉으면 창 밖이 잘 안 보여서 답답했는데.
오늘 촬영장은 동물원이다. 나는 동물원을 엄청 좋아한다! 차에서 내려 방방 뛰며 빙글빙글 도니 내가 입은 빨간 체크무늬 원피스가 꽃처럼 펼쳐졌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대기하고 있던 카메라가 날 찍기 시작했다. 신나는 표정으로 아빠를 쳐다봤는데 날 따라 내리는 아빠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아빠 왜 그래요? 표정이 왜 안 좋아요? 내가 뭔가 실수한 게 있나? 옷이 구겨지거나 찢어졌나?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멈칫하니 아빠가 냉큼 와서 날 품에 안아줬다. 내가 뭔가 잘못한 거예요? 미안해요, 아빠.
“행운아, 오늘 기분이 어때?”
MC 아저씨가 어디선가 나타나서 나한테 말을 걸었다. 나는 아빠 품에 얼굴을 묻고 더욱더 포옥 안겼다.
“하하, 행운이가 오늘 아빠와 떨어지기 싫은가 보군요!”
수다스러운 MC 아저씨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빠 품에 안겨서 동물원 안으로 계속 계속 걸어 들어가 도착한 곳은 커다란 창고 같은 건물이었다.
“행운아, 오늘 행운이 엄마 만나는 날이야. 행운이 엄마가 여기에 있어.”
아빠가 건물 앞에서 나한테 이야기했다. 무슨 소리예요, 아빠? 내가 엄마가 어디 있어요? 난 처음부터 아빠밖에 없었는데, 무슨 말이에요?
“여러분! 오늘 행운이가 엄마를 만나는 날입니다!”
처음 보는 어른들 몇 명이 건물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두어 명은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다. 이 우중충하고 습한 곳은 대체 어디예요? 여기에 우리 엄마가 있다고요? 난 아빠밖에 없는데 엄마라니, 이게 다 무슨 상황이에요?
아빠는 나를 철장으로 막힌 방 안에 내려놓았다, 아니 정확히는 내려놓으려고 애를 썼다. 불안한 기분에 나는 아빠 목을 잡고 내려오질 않았다. 나를 내려놓으려는 아빠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나의 모습을 보며 MC 아저씨는 뭐라고 몇 마디 더 덧붙였던 것 같다.
“착하지, 행운아. 저기 엄마한테 가보렴.”
아빠의 ‘착하지’라는 말은 내가 꼼짝 못 하게 만든다. 마치 반드시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착하지-라는 말에 움찔하며 아빠 목을 놓고 바닥으로 내려왔다. 방 안쪽을 보니 검은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무서워서 냉큼 아빠에게 안기려고 했지만 아빠는 나를 내려놓자마자 방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철장 안에서 바깥에 서 있는 아빠를 비롯한 어른들을 향해 울면서 소리를 질렀다. 나 좀 구해주세요! 아빠! 어디 가요! 나 여기 있어요! 내가 다 잘못했어요! 나 좀 데리고 가줘요! 난 아빠 밖에 없다고요!
“여러분! 드디어! 행운이가 엄마와 만나는 순간입니다! 감격적인 모녀상봉입니다!”
어른들이 박수를 쳤다. 아빠도 함께 박수를 치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구석에 앉아있던 커다랗고 검은 그림자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흉측하게 생긴 고릴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