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초단편zip

welcher

초단편소설

by 차여름

“우리 아들! 공부하느라 힘들지? 아빠 왔다!”

“아, 다녀오셨어요.”

퇴근하자마자 우렁차게 아들을 부르는 남편의 손에는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아빠의 부름에 무뚝뚝한 고딩 아들이 시큰둥하게 방에서 나왔다.

“우리 아들 주려고 아빠가 시원한 선물 가져왔다!”

“아이스크림?”

“응?”

“시원하면 아이스크림 아닌가.”

“아이스크림도 시원한데, 이것도 시원해!”

남편이 아들에게 쇼핑백을 건네주자 그 과묵했던 아들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뭐야?”

“스냅백!”

“갑자기 무슨 스냅백?”

남편은 그런 게 있다며 아들 어깨를 툭툭 쳤다. 나보다 키가 더 큰 아들이 방방 뛰며 아빠를 껴안고 난리가 났다. 스냅백 하나에 이렇게 좋아할 일인가, 남편이 모처럼 아빠 역할을 제대로 하는구나 싶었다.

“근데 왜 스냅백이 시원한 선물이야?”

“여름에 햇빛 비칠 때 모자 쓰면 시원하니까?”

“뭐야, 아재 개그야?”


며칠 뒤에는 슬랙스, 또 며칠 뒤에는 힙색을 가지고 왔다. 검색해 보니 모두 브랜드 제품이었고 늘 새 거였다. 대체 이걸 무슨 돈으로 사 오는 거지? 브랜드 제품을 쉽게 사 올 만큼의 경제적 여유가 없을 텐데. 계속해서 궁금해하다가 어느 날 밤 조용히 물어봤다.

“여보 근데 인호 사 주는 것들, 무슨 돈으로 사 오는 거야? 보너스 받았어?”

남편이 고민에 잠긴 얼굴로 가만히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검지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고 ‘쉿’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거 비밀인데, 조용히 불 끄고 와 봐.”

남편은 옆 빌라가 보이는 창가에 바짝 붙었고, 나도 안방 불을 끄고 그 옆에 따라붙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낮은 빌라가 모여 있는 빌라촌이다. 뷰 같은 건 기대할 것도 없고, 고만고만한 빌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빌라촌. 옆 빌라와 우리 빌라의 층고가 살짝 달라서 3층인 우리 집에서 창문을 열면 옆 빌라의 2.5층과 마주하게 된다. 아마 빌라끼리 너무 붙어있으니 이렇게 층고를 다르게 지어서 사생활을 지키려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

“저 집 좀 봐.”

남편이 말하는 저 집은 옆 빌라의 3층. 난닝구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하얀색 런닝을 입은 탈모 아저씨가 창 밖에 대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뭘 보라는 거야?”

“쉿! 말하지 마! 조용해.”

남편은 창문이 있는 벽에 온몸을 바싹 붙여서 담배 피우는 아저씨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마치 떨어지는 콩고물이라도 받아먹으려는 것처럼. 이해가 안 되지만 나도 남편과 함께 담배 피우는 아저씨를 한참 동안이나 쳐다보고 있었다. 아저씨는 담배 세 개비를 연달아 피우고는 집으로 들어갔다.

“아, 오늘은 없네.”

어리둥절한 내 표정을 보더니 남편이 피식 웃고는 설명을 해 줬다. 저 아저씨가 꼭 이렇게 늦은 밤즈음 저렇게 창가에서 전화를 하는데, 누군가에게 뭘 사주고 있다고 했다. 전화기 너머 상대가 뭔가를 디테일하게 요구하면 아저씨는 그걸 그다음 날 문고리에 걸어놓겠다고 이야기하고, 실제로 그다음 날 그게 진짜 문고리에 걸려있다고, 그걸 조용히 살짝 가져왔다고 했다.

“그거, 범죄잖아?”

“알 게 뭐야. 저 건물 CCTV도 없고, 공동현관 비밀번호도 없어. 최대한 눈에 안 띄게 조용히 다녀오면 돼. 저 사람 덕에 우리 아들도 이렇게 새 옷 생기고 좋은 물건 생기는 걸. 아빠가 돼서 좋은 거 사 주진 못할망정 이렇게라도 우리 아들 챙겨주고 싶어. 군소리 없이 잘 커주고 있는 인호, 우리 아들, 너무 고맙잖아.”

처음에는 범죄라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걱정되는 마음보다는 나도 공짜로 우리 아들에게 뭔가를 해 줄 수 있다는 마음이 더 커서 그냥 흐린 눈 하기로 했다. 찝찝한 마음이 드는 건 여전했지만 아들 이야기에 불편한 마음이 무뎌졌다.


며칠 뒤, 저녁을 먹는데 남편이랑 아들 폰에서 동시에 경보가 울렸다.

“깜짝이야! 뭐야?”

“안전 안내문자. 너는 왜 안 와?”

“아, 난 꺼놨어. 뭐가 왔는데?”

“실종경보.”

“그런 것도 문자가 와?”

문자를 본 아들 표정이 안 좋았다.

“왜 그래?”

“여기 실종 됐다고 하는 애, 임철규라고 우리 학교야. 나랑 동갑.”

“친해?”

“엄청 친한 건 아니고 그냥 아는 사이. 근데 실종이라고? 학교엔 가출이라고 소문났는데 부모님이 실종신고 했나 보네. 가출한 지 좀 됐거든.”

남편이 인상을 쓰며 이야기했다.

“어휴, 요즘은 애들을 못 건드려. 함부로 잔소리했다가는 칼부림 아니면 가출이라니까.”

“그 친구 진짜 가출이래?

“나는 건너 건너 듣긴 했는데 임철규랑 친한 애들 말로 들어보면 가출 얘기를 꽤 오래 했더라고. 진짜 계획을 세운다기보다는 가출하고 싶다, 뭐 이런 이야기? 애들 말로는 얘 가출한다더니 진짜 했네 이런 식으로 말하더라고.”

“아이고, 이런 얘기 들으면 엄마는 우리 아들한테 너무 고마워. 엄마 아들이 이렇게 참한 아들이라서 너무 행복해.”


저녁상을 치우고 방에서 빨래를 개고 있는데 창 밖에서 누가 언성을 높이며 화내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이 밤에 이렇게 소리를 질러? 창 밖을 내다보니 그때 봤던 탈모아저씨였다. 집 안에서 전화하느라 정확한 내용은 안 들리지만 단단히 화가 났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거실에 있던 남편이 방으로 달려 들어와 불을 끄고 방문을 닫고 조용히 창문 밑에 바짝 붙어 앉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쉿’ 하며 저리 가라는 손짓을 했다. 탈모아저씨가 한숨 쉬며 창문가로 등장했다.

“270미리? 260미리? 어, 260. 알겠어. 알겠다고.”

탈모아저씨는 담배를 연달아 피우더니 집 안으로 사라졌다.

“여보, 우리 인호 발 사이즈 몇이야?”

“260.”

“좋아, 내일은 신발이다.”

아, 이런 식인거구나. 이걸 우연히 성공시킨 뒤로는 계속해서 이렇게 가지고 오는 거였구나. 눈앞에서 범죄 장면을 직접 목격한 기분이라 영 찜찜했다. 나는 그럼 공범이 되는 건가? 방조죄인 건가? 영 불편한 마음이 가시질 않아서 남편한테 이야기하려고 거실로 나가다가 현관에 아무렇게나 벗겨져 있는 인호의 운동화를 봤다. 많이 낡았네. 심지어 뒤축이 까져서 물이 샌다고도 했는데, 여름이라 맨발로 슬리퍼 신으면 된다고 괜찮다던 인호의 말이 귀에 스쳤다. 운동화 한 켤레에 얼마더라, 그래 이번까지만 모른척하고 이제 그만하자고 해야겠다.


다음날 저녁, 남편 손에는 어김없이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쇼핑백 안에는 운동화가 들어 있었다.

“헐! 대박대박! 아빠! 완전 고마워! 나 공부 진짜 열심히 할게!”

인호가 방방 뛰면서까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웃음이 지어졌다. 역대급으로 좋아하는데? 인호는 신발 상자를 꺼내더니 쇼핑백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 던져버렸다.

“으유, 그렇게 좋아?”

인호 머리를 한번 헝클어뜨리고는 바닥에 내 던진 쇼핑백을 주워 들었다. 쇼핑백을 버리려고 반 접다가 쇼핑백 뒤편에 쓰인 글자들의 아우성을 마주하고는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너무 놀라 숨소리조차 낼 수가 없었다. 빨간색으로 꾹꾹 눌러쓴 강한 글자들이 내 머릿속에서 비명을 질렀다.

‘이 정도 했으면 이제 임철규 풀어줘!!!!! 내 아들 내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