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6. 8. -미안하고 축복한다.
2015. 6. 8.
-미안하고 축복한다.
그런데 말이야.
아무래도 넌 내속에 있는 것 같아.
네가 느껴져. 꿈속에서도 널 보았지.
그래서 너에게 미안해.
내가 지금의 이런 마음으로 널 안게 되어서 말이야.
죄책감은 아니야.
네가 나를 선택할 수 없었듯, 나도 너를 선택할 수 없었거든.
그리고 난 줄 곳 아기를 원하지 않았으니까.
거기에다 나에겐 모성애가 없어.
지금도 “아기가 태어난다면 너와 함께한 나의 삶에서 내가 어떤 예술적인 영감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들로 그나마 너를 가졌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으니까 말이야.
‘네가 나의 시간을 너무 많이 뺏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하고,
네가 나를 더 자유로운 곳으로 데려가 주길 바라지.
널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어.
너무 솔직했나?
그런데 왜 널 가졌냐고?
그건 내 남자. 너의 아빠. 형규 때문이야.
사랑하는 사람. 그 사람이 너를 갖고 싶어 해.
그와 나 그리고, 우리 사이에 우리를 닮은 아이를 두고 싶어 해. 그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는 그게 가족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해.
나도 잘 몰라.
다만 올해 초 형규와 떠난 방콕 여행에서 무심코 꺼낸 아기 얘기에 너무나도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을 보고 생각했지. 이 사람에게 어떤 결핍을 주고 싶지 않다고.
그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싶다는 생각. 그게 다야.
그래서 널 가지게 됐어.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는 마.
네가 사랑하는 이들의 사랑으로 빚어졌다는 것, 너의 엄마 아빠가 서로를 위해 자기의 삶을 변화시키면서까지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너에게 아주 큰 축복이 될 거야.
수정란인 너에게 아마 그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을 거야.
그건 그 어떤 부와 자본보다 더 소중한 것이니까.
자 그렇다면 이제 내가 너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는 이유를 알겠지?
하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고 그래
널 조금은 피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져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하지만 네가 나에게 온 이상 널 조금씩 더 받아들일게. 매일 쓰게 될 이 편지가 도움이 되면 좋겠구나.
그리고 이 세상에 그렇게 흔하다는 모성애를 가지지 않은 엄마여서 미안해.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나도 할 말이 조금은 있어. 나중에 네가 살아보면 알겠지만 완벽한 모성애는 이 세상에 없어. 다들 조금씩은 자식에게 바라지. 자식에게 얻을 수 있는 게 전혀 없다 하더라도 대가를 바라지. 많은 부모가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 모성애라는 이름을 이용하기도 한단다. 부모로서의 희생 따위 말이야. 그건 희생이 아니라 자식을 키우는 고통을 모성애이라는 이름으로 보상받고 싶어 하는 것이거나, 자신의 죄책감을 덜려고 것인데. 아무튼 그건 나중에 네가 자라면서 깨달을 테니 미리 말해두진 않을게.)
나에겐 모성애가 없지만 그래서 너에게 줄 수 있는 게 있어.
나에게 모성애가 없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어.
그래서 너에게 가식적으로 대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부모로서 힘든 삶을 과장하거나 미화하지 않을 거야.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심리적인 보상이나 인정을 받으려 하지도 않을 것이고,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너에게 사랑의 대가를 바라지도 않을 거야.
거짓의 이름으로 미화된 모성애는 버리고 너를 있는 그대로 대하고 그것에 대해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을게.
넌 네가 선택한 삶을 살길 바랄게.
모성애로 만든 속박에서 널 풀어주고 너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고 싶어.
둘은 넌 충분히 축복을 받고 있다는 말을 하려고 해.
아까도 말했듯, 난 너의 아빠를 무척 사랑한단다.
그가 원하는 걸 들어주기 위해, 나는 내 삶을 완전히 바꿔 놓을 선택을 했어. 그게 너를 가지겠다는 선택이지.
넌 그런 내 사랑의 결실이자, 형규와 나 우리의 사랑 그 자체인 거야.
너의 부모가 서로를 아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은 너에게 큰 축복이 될 거야.
너도 모르게 얻은 평생의 행운이지. 그건 축복이란다.
너에게 쓰는 첫 번째 편지가 태교 편지라고 하기엔 다소 하드코어적이고 복잡 미묘하며,
길고 답답하겠지만 이게 널 맞이하는 솔직한 엄마의 심정이야.
미안하고 축복한다.
너에게 미안하고 널 축복한다. 아가야.
잘 크고 있지? 건강하게 자라 다오.
내일 또 편지 쓸게. 안녕.
추신.
너에 관한 꿈을 두 번 꾸었어.
한 번은 6월 5일에 꿨지. 타조 꿈이었어. 청록빛 깃털을 가진 타조가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인 길에서 부엉이 다리를 물어 끊어놓았지. 내 앞에서 말이야. 그리고 날 천진한 눈으로 바라보았어.
두 번째 꿈은 검은 고양이 꿈이었어. 진회색 스코티쉬 폴드 아기 고양이가 종이장처럼 아주 납작하게 내 발아래 있었는데, 형규가 나에게 와서 봉투에 천구백 원을 넣어 주었고 내가 그것을 받아 들자 갑자기 고양이가 뛰어올라 그것을 낚아채려고 했어. 난 봉투를 놓지 않았는데 다시 내려앉은 고양이는 더 짙은 회색의 털이 적은 큰 고양이였어. 그리고 난 꿈에서 깼지. 너무 놀랐거든.
두 꿈이 모두 조금 무서웠어. 너에 관한 꿈을 또 꾼다면 그 꿈은 좀 더 평화로왔으면 좋겠어.
2015. 6월 8일.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