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변두리, 재개발을 앞둔 낡은 골목 끝에는 간판도 없는 24시 편의점이 하나 있다. 사람들은 그곳을 '어제의 가게'라고 불렀다.
"어서 오세요. 찾는 시간 있으십니까?"
카운터에 앉은 노인은 돋보기를 치켜쓰며 물었다. 진열대에는 삼각김밥이나 음료수 대신 투명한 유리병들이 가득했다. 병 속에는 각기 다른 빛깔의 연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지후는 마른침을 삼키며 가장 구석진 곳에 놓인, 짙은 보라색 연기가 담긴 병을 가리켰다. 그것은 '가장 후회되는 선택을 하기 5분 전'의 시간이었다.
"그걸 사려면 대가가 비싼데. 괜찮겠나?"
"뭐든 내놓을게요. 그날의 말 한마디만 주워 담을 수 있다면요."
노인은 지후의 손바닥에서 '미래의 꿈 한 조각'을 건네받고는 유리병을 건넸다. 뚜껑을 열자 보라색 연기가 지후를 휘감았다. 눈을 떴을 때, 그는 3년 전 그 카페, 차가운 이별의 말이 오가던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다.
상대방이 입을 떼려는 찰나, 지후는 준비했던 사과와 진심을 쏟아냈다. 결과는 바뀌었다. 두 사람은 웃으며 카페를 나섰다. 지후는 승리감에 도취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지후의 세상에서는 조금씩 색깔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미래의 꿈을 지불한 탓에, 그는 무엇을 해도 설레지 않았고 어떤 내일도 기대되지 않았다. 완벽하게 수정된 과거 속에 갇혀, 무채색의 현재를 무한히 반복할 뿐이었다.
어느 비 오는 날, 지후는 다시 그 골목을 찾았다. 하지만 그곳엔 허물어지다 만 담벼락과 '철거'라고 쓰인 붉은 글씨뿐, 간판 없는 편의점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