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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선 Aug 30. 2021

#2. 최종면접 그리고...

직장생활 탄원서


차가운 바람이 유난히 매섭던 면접 날은 11월 말이었다. 학인은 얼마 전 새로 산 정장에 푸른색 넥타이를 맸고 어떤 방송에서 설명한 것처럼 가슴팍에 푸른색을 지닌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괜히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그가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삐쭉 튀어나온 머리를 정리하고 있을 때 승강기가 18층에서 멈췄다.


"아이고, 어디 보자 1층… 눌렸죠? 아니, 오늘 어딜 가는데 이렇게 멋있게 하고 가요?"


어딘가 꺼벙하면서도 순순해 보이는 안경을 낀 남성은 둔한 움직임으로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학인의 말쑥한 모습을 보고 너스레를 떨었다. 1802호에 사는 남성의 이름은 박대근으로 학인과 안면이 있는 이웃 사이였지만 학인은 그의 이름이나 직장 등 사적인 그 어떤 것도 몰랐다. 대근은 가끔씩 통로에서 마주칠 때면 경상도 억양이 얼핏 섞인 어투로 늘 먼저 말을 걸어왔는데, 넉살이 좋고 친절하여 개인의 영역을 넘지 않는 선에서 담소를 나누곤 했다.


"감사합니다. 사실 오늘 면접이 있어서요."   


"아, 면접! 나도 옛날 생각나네. 의지로는 잘 안 되겠지만 최대한 떨지 말고, 심호흡하고 차근차근 답변하면 잘 될 거예요. 꼰대처럼 굳이 어디 회사인지 이런 거 안 물어보겠습니다. 나중에 합격하면 안 물어봐도 기쁜 마음으로 먼저 알려주겠죠 뭐, 안 그래요? 그나저나… 요즘 채용 시즌인가 봐요? 우리 회사도 뭔 계약직 채용이었나… 면접 조만간 본다고 했던 거 같던데. 우리 부서 일도 아니고 난 이런 거 별로 관심이 없어서 허허."


대근이 소리를 내어 호탕하게 웃을 때마다 진갈색 뿔테 뒤로 숨은 눈이 늘어진 반달 모양이 되었는데 너무 작아서 감았을 때와 별 차이가 없었다. 그는 실제로는 삼십 대 후반이었는데도 쳐진 턱살과 툭 튀어나온 배, 금 목걸이 등이 원래 나이에 족히 열 살은 더해주었다.   


"맞을 거예요. 원래 추석 즈음부터 서류 전형 시작하고 지금 면접 볼 때죠."


"맞다 맞아. 솔직히 기대되죠? 막상 회사 생활 시작하면 뭐가 제일 힘들 거 같아요?"


"에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요. 그래도 만약 붙으면… 글쎄요, 새로운 업무에 적응도 해야 하고… 야근 같은 게 힘들지 않을까요?"


학인의 대답에 대근은 입꼬리를 올려 슬며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람이에요, 사람."


"사람이요?"


"예, 사람. 회사라는 공간이… 뭐랄까? 마치 서로 다른 종들을 한 생태계에 억지로 모아 놓은 거거든요. 그러다 보니 아주 필연적으로 경쟁하고 부딪힐 수밖에 없는 구조죠. 총, 칼은 없어도 각자 자신만이 가진 무기를 가지고 살아남는, 아주 길고 긴 인생의 미니게임 같은 거라고요! 겉으론 하하호호 웃으면서 협조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궁극적으론 자기 이익을 위한 쪽으로 판단하고 행동한 거고. 내가 생각하기에는 직장 생활 격언 중에 제일 등신 같은 말은 바로 '가족 같은 회사'입니다. 가족은 개뿔. 작은 팀 하나만 해도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있는데……. 안 그럴 거 같죠? 아마 일 하다 보면 언젠가는 이런 생각 들 걸요? 도대체 저 사람들은 머릿속에 뭐가 들었길래 저딴 행동을 할 수 있냐고. 허허. 아무튼 제일 중요한 팁은 굳이 모든 사람들한테 속마음을 다 보일 필요가 없어요. 서로 이미지 관리하고… 속이고, 속이고, 또 속이면서 사는 거니까. 그 미니게임이 오버(over)될 때까지.”


대근의 말이 끝나갈 때쯤 엘리베이터가 중력을 거스르며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학인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지만 뭔가 아쉬웠고 조금 더 이 진지한 대화를 이끌어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 정말 너무 꼰대 같았다. 나도 나이 드니까 별 수 없네. 허허.”


“아닙니다. 충고 정말 감사합니다.”


“동생 같아서 한 말입니다. 어쨌든, 오늘 면접 파이팅해요. 늦어서 먼저 갑니다!"


마침내 묵직한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렸다. 승강기 내에 대근이 생산해낸 불쾌한 땀냄새가 시원한 바깥공기와 섞이면서 희석되는 순간이었다. 학인은 잘은 몰라도 대근이 꽤나 선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 판단은 더 나아가 만약에 합격한다면 이런 사람과 같이 일하면 좋겠다 라는 바람으로까지 이어졌다. 행동이 좀 투박해도 솔직하고 붙임성이 좋으며 친절하게 의미 있는 충고를 해주는 이상적인 선배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이 짧은 순간에 학인은 낯선 남자를 그렇게 보고 있었다.  



“들어가면 가운데 계신 분이 하나, 둘, 셋 해서 다 같이 인사하시고 좌측부터 앉으시면 돼요. 긴장되세요? 떨지 마시고 이제 들어가실 게요.”


면접장 안에는 총 5명의 면접관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모두 두피가 드러날 만큼 머리가 벗어지거나 다소 이질감이 드는 가발을 착용할 만큼 나이가 지긋한 베이비부머 세대들이었다. 오랜 시간 술에 절여진 간으로 낯빛은 어두웠고 고르지 못한 이는 니코틴으로 코팅되어 누랬다. 약 20년을 버틴 끝에 조직의 중역이 된 이들은 자신들의 신체의 노화와 변형을 회사를 위한 헌신이자 희생의 증표로서 자랑스러워했다. 따라서 자신들과 같은 전철을 밟을 수 있는, 아낌없이 개인적 삶을 포기할 수 있는 젊은이를 원했다.


세 사람은 앞서 직원의 지시한 대로 미래의 상사가 될지도 모르는 아저씨들에게 고개를 숙여 정중히 인사를 했다. 학인은 왼쪽 끝에 놓인 의자에 착석했다.


"다들 반가워요. 일단... 각자 간단히 자기소개! 자기 이름은 감점받을 수 있으니까 꼭 빼고 말하시고."


면접 진행은 제일 젊어 보이고 두꺼비를 닮은 면접관이 진행했다. 왼쪽에서 두 번째 앉아 있던 그는 귀가 아플 정도로 목소리가 우렁찼는데, 뭔가 빠트렸다는 듯 연이어 말을 꺼냈다.


"아, 아 잠깐. 여러분 준비해온 거 줄줄 외우려 하지 말고 자신의 강점에 대한 포인트만 잡아서 좀 짧게 해 볼까요? 20초 내외로 부탁합니다.”


면접관의 갑작스러운 기습공격에 저마다 당연히 할 거라 예상했던 자기소개를 머릿속으로 편집해야만 했다. 학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학인은 다행히 마지막 순번이었고 비교적 생각할 시간을 벌 수 있어 유리했다. 제일 먼저 답변을 시작한 여성 면접자는 나긋나긋한 어조로 자신의 장점이 친화력이며 모든 직원들과 불화 없이 융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말 더듬 한 번 없는 깔끔한 스피치였다.


“좋습니다. 친화력을 기를 수 있었던 경험이 혹시 있었나요?”


이번엔 제일 오른쪽의 빼빼 말라 여치를 닮은 면접관이 물었다.


“네! 전국으로 고등학교 때부터 봉사활동을 다녔는데, 아무래도 나이 대에 상관없이 여러 환경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화력을 기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생글생글 웃는 표정이 누구라도 충분히 호감을 살 만했다. 다른 경쟁자의 답변에도 경청하는 척하던 학인은 재빨리 고개를 돌려 면접관들의 반응을 살폈다. 과반수가 귀여운 조카를 바라보는 흐뭇한 삼촌이 되어 있었다.


“자, 다음 사람?”


두꺼비 면접자가 학인의 옆자리에 앉은 남성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면접을 재개했다. 도수 없는 굵은 뿔테로 날카롭고 뾰족한 눈을 가린 남성은 크게 헛기침을 하고는 두툼한 입술을 떼었다.


“아, 네. 안녕하십니까. 아 저는요. 제 강점을 먼저 말씀드리자면요. 저는 끈기 있는 사람입니다. 그 이유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쳤었는데, 아, 부모님이 중학생 때부터 공부를 하라고 하셔 가지고 그만 둘 뻔했거든요. 그런데 포기하지 않고 대학교에 와서도 계속 피아노를 쳤습니다. 그래서 교양 시간에 다른 학생들 앞에서 피아노를 치고 자신감을 얻어서…….”  


남성이 준비해온 자기소개를 정리하지 못한 건지 두서없이 횡설수설하는 바람에 지루해진 면접관 중 한 명이  끝까지 듣지도 않고 중단시키고 말았다. 그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역력했다. 이제 학인의 차례가 되었다.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면접관을 응시했다.


"제 자신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진취적인 사람입니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늘 진취적인 태도로 더 많은 것을 배워 스스로를 성장시켜왔습니다. 일례로 대학교 1학년 때까지는 영어를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원어민과 무리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영어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성향을 바탕으로 취직 후에도 안주하지 않고 늘 성장해 나가는, 발전하는 직원이 되겠습니다."


적당한 길이에 자신감 있는 톤이었다. 학인은 자신의 답변이 끝나고 고개를 끄덕이는 면접관들의 호의적인 반응에 작은 희망의 씨앗을 심었다.


다음은 가장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정가운데 면접관이 쉰 목소리로 질문을 했다.


"다들 열심히 조사하셔서 잘 아시겠지만, 우리 조직의 역할은 기업들의 진흥에 힘을 쓰고 어려움을 해소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요즘 중소기업들이 왜 구인 난을 겪고 있는지 한 번 말해볼까요? 나는 솔직한 지원자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요.”


학인은 이번에도 다른 지원자들의 의견을 먼저 들은 후에 추려서 답변하려 했다. 그런데 그런 얍삽한 의도를 읽었는지, 두꺼비 면접관이 끼어들어 순서를 바꿔버렸다.


“잠깐만요, 실장님. 이번엔 이쪽부터 대답하게 할까요?. 그래야 공정하죠.”


“네, 그렇게 하시죠.”


면접관들이 일제히 학인을 바라보았다. 준비가 덜 된 학인은 당황했지만 최대한 머리를 굴려 답변을 늘어놓았다.


“제가 생각했을 때… 중소기업도 여건이 좋은 기업들도 많을 텐데… 일단 현재 중소기업이 지닌 이미지가 청년들에게 부정적인 게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청년들은 직접 겪어 보지도 않은 선입견으로 애초에 지원을 꺼리다 보니 자연스레 구인 난을 겪게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학인은 담담히 답변을 마치고 다시 자신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다섯 명을 빠르게 훑었다.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에 메모를 남겼는데, 직접 질문한 실장이라는 면접관만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허공을 응시하더니 곧바로 여성 지원자의 답변을 요청했다. 아뿔싸! 솔직한 의견을 원한다고 했는데. 학인은 면접관들의 나이대를 고려해서 가식적이고 인위적으로 대답한 것을 후회했다. 그는 낙담하며 경쟁자들이 어떻게 대답하는지에 집중했다.


“솔직히 말해서, 중소기업의 구인난은 구직 중인 청년들의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간극에서 일어난다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여성 지원자가 간결하게 운을 띄웠다.


“정확히 어떤 기대치를 가지고 있는지 답변해 줄 수 있나요?”


실장이 궁금해하며 물었다.


“사실 연봉이나 복지 같은 것은 한 회사의 재정적 문제이기도 하니 논외로 하겠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중소기업을 가장 꺼려하는 이유는 대부분 업무 체계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이라고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회사 발전을 위해서 젊은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개선 사항을 건의하면 수용하기보다는 경력이 짧다는 이유로 의견이 묵살당하는 일도 잦다는 것도요. 청년들이 중소기업을 꺼리는 이유는… 단순히 중소기업이라는 일차원적인 이유가 아니라, 일하는 업무 환경의 눈높이가 맞지 않아서라고 생각합니다.”


학인은 솔직하면서도 현실을 꿰뚫는 경쟁자의 통찰력에 감탄했다. 무겁던 실장의 고개도 아주 천천히 위아래로 두어  움직였다. 그걸 보는 순간, 마음속에 남은 일말의 기대는 사라지고 짙은 패배감만이 남았다. 열다섯   오직  . 5 1 경쟁률인데    중에서도 승기를 잡지 못한다면 현실적으로 그에겐 가망이 없었다. 이제 학인은 어서 빨리  면접이 끝나기 만을 기다렸다.  


면접은 그 이후로 10분 정도 더 이어졌는데, 질문들이 크게 어렵지 않은 수준이었다. 전부 자소서에 기재했던 개인의 경험에 기반한 것들이었고 거짓으로 지어낸 게 아닌 이상 어렵지 않게 대답할 수 있었다. 학인도 마음을 내려놓고 대답하다 보니 어깨에 힘이 빠지고 아까보다 훨씬 차분하게 말할 수 있었는데 그게 그를 더 아쉽게 만들었다.


면접이 마무리될 무렵,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은 대머리 면접관이 불쑥 마지막 질문을 하겠다고 손을 들어 올렸다.


"혹시, 요즘 이런 질문 잘 안 하는 거 나도 잘 알지만… 사회생활에 또 필요한 상황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물어보는 겁니다.”


그러고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면접자들의 얼굴을 돌려보며 히죽히죽 웃었다. 이윽고 그의 질문을 들은  면접자들은 일제히 머리를 굴렸다.


“다들 주량이 어떻게 되시는 지요? 소주 기준으로 답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람은 적지 않게 당황한  보였지만 차례로 답변을 마쳤다. 여성 면접자는 배시시 웃으면서 술을   마셔서 소주  잔이라고 답했고 남자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소주 일곱 병도 거뜬하다고 허세를 부렸다. 전 질문에서 여전히 헤어 나오지 못한 학인은 별생각 없이 컨디션에 따라   반에서   정도 마실  있다고 솔직히 답했다.


"마지막으로 다들 할 말 있는 사람 있으면 하세요. 자신을 미처 어필하지 못해서 억울하다 하는 사람?"


모든 질문이 끝나고, 면접을 진행하던 두꺼비 면접관이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그의 농담에 면접장의 모든 이가 웃었다. 심장을 조여오던 분위기는 처음보다   풀어진 상태였다.  명의 면접자들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보았지만 추가 피력의 의지가 없어 보였다. 오직  사람만의 팔이 천장을 향해 높이 솟았다. 그건 학인의 것이었다. 면접관들을 바라보는 학인의 은 어떤 간절함과 열정으로 번뜩였다. 이윽고 바싹 마른 그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


핸드폰을 붙잡고 상념에 빠졌던 학인은 진동이 여덟 번이 울렸을 때야 가까스로 깨어나 허둥지둥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아, 네! 여보세요?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진학인 씨 본인 맞으신가요?"


수화기 너머에서는 중후함이 느껴지는 중년이었다.


"네, 맞습니다."


순간 대답하는 학인의 목소리가 사시나무 떨리듯 파르르 떨렸다.


"진학인 씨, 축하드립니다. 최종 합격입니다."


학인은 들려오는 말을 차마 믿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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