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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선 Sep 13. 2021

#5. 사원증이 주는 충성심

직장생활 탄원서



“안녕하십니까, 요번에 입사한 신입사원 이정윤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부서 순회는 휴게실과 문서 자료실인 6층을 제외하고 5층부터 거꾸로 시작했다. 기대로 흥분된 신입사원들과는 달리 직원들의 대부분이 힘없고 우울한 얼굴로 세 사람을 맞이했다. 일행이 4층을 지나 3층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마주했을 무렵, 정윤은 느닷없이 대학시절 사귀었던 남자 친구를 떠올리고 말았다. 같은 경영학도였던 그는 정윤과 사귄 지 1년 즈음에 입대를 결정했다. 그를 보내고 순번을 매겨가며 편지를 쓰던 정윤은 끄적이고 있는 편지지가 벌써 스무 번째라는 것을 깨달았다.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하루를 버텨내기도 버거운 마당에 당장 곁에 없는 사람을 위한 위로의 글을 적는 것이 너무 사치스러워서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정윤은 그래도 계속 편지를 썼다. 군대에서 받은 편지의 개수가 많을수록 위신이 선다는 것은 정윤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두 달이 훌쩍 넘어서야 처음으로 남자 친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가 통신병으로 자대 배치에 받은 직후였다. 그런데 간만의 전화통화는 재회의 갈망을 해소해주기는 커녕 그간 서로에게 쌓였던 서운함을 교환하는 창구가 되고 말았다. 근황을 전하는 남자 친구의 쉰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폐쇄적인 군 생활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고충을 위로받고 싶어 했지만 정윤도 딱히 남을 어루만져 줄 처지가 아니었다. 그 사이 많은 게 바뀌었다. 얼마 전까지 건강하시던 엄마가 갑작스레 병원에 입원한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3학년이 되면서 취직 준비도 시작해야 했는데, 병원비를 보탤 아르바이트에 몸이 불편한 엄마 간병도 병행해야만 했다. 하루에 두 세 차례 전활 걸어 열변을 토하는 그의 똑같은 군대 레퍼토리는 각박한 사회의 중심에 있는 정윤에겐 그저 따분한 이야기일 뿐이었다.


"가능하면 팀장급 이상은 미리 외워두는 게 좋아요."


엘리베이터에서 신명호 대리가 부드럽게 조언했다.


하지만 막 출근한 신입사원들이 고작 스침에 가까운 짧은 만남으로 전 직원들의 얼굴과 이름을 한 번에 매칭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부서와 직급 따위의 부수적인 호칭들도 곁들여 외워야만 했다. 정윤은 머리가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무작정 외우기보다는 상대방에게서 도드라지는 고유의 특징에 집중했다. 예를 들어 얼굴에 점이 많지만 머리가 한 올도 없는 재무회계팀의 40대 차장, 명품 슬리퍼에 최근 유행하는 유명 브랜드의 향수를 쓰는 일자리지원팀 소속 과장, 다크서클이 심하고 눈을 주기적으로 깜빡거리는 글로벌통상팀 주임 등등. 군기가 바싹 들은 정윤은 최소한 자신이 배치될 부서의 사람들 만큼은 나중에 절대로 되묻지 않으리라는 각오가 되어 있었다.



다른 부서들에 비교했을 때 사무실도 넓고 직원 수가 더 많은 경영기획실을 끝으로 긴 순회가 끝이 났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몰아서 만나다 보니 얼굴과 이름이 뒤죽박죽이었다. 동기들과 사무실을 나서던 정윤은 그 당시 남자 친구도 선임들의 얼굴과 이름 그리고 계급과 기수를 일일이 암기하는 것이 어렵다고 했던 것을 기억해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공감할 수 없었던 터였다. 그날 정윤은 심드렁한 태도로 그게 뭐가 그렇게 대수냐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곧장 주워 담고 싶은 말이었다. 무심한 정윤의 말을 들은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정적은 길어졌다. 수화기 너머로 그의 감정이 거친 숨소리에 담겨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리고 정윤이 사과의 말을 꺼내려던 그 순간에, 전화의 호흡이 그대로 끊어졌다.  


그 통화 이후로 한 달을 채 넘기지 못하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의외로 정윤의 결정이었다. 정말 많이 좋아했지만 그럴 처지가 아니었고 딱히 미련도 없었다. 다만, 방금 전까지 정말 열심히 머리를 굴려가며 머릿속에 새겨낸 경영기획실 직원들의 이름이 희미해져 가는 걸 깨달으면서 이제야 그의 고충을 헤아릴 수 있었다. 역시 겨울 계곡의 수온은 발을 직접 담가 봐야 그 차가움을 온전히 느끼는 법이었다. 정윤은 더 이상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그 아이에게 이제야 조금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래도 다시 연락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정윤은 당장 연애할 마음이 없었다. 지금 그녀에게 연애란 명품 같은 것이었다. 애초에 가질 수가 없는 상태라는 것을 깨닫고 나니 아예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은하수의 이름 모를 행성처럼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 실존하는지 확신이 안 서는 신기루이자 허상 같은 것이었다. 그동안 먼저 다가오는 남성들이 몇 있었으나 그녀는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았다. 비록 염세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정윤은 극도로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박재혁입니다. 반가워요.”


점심식사 전, 신명호 대리가 사무실에서 가져올 것이 있다며 잠시 자리를 비운 막간을 이용해 신입직원 세 사람은 마침내 통성명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까부터 직설적인 화법으로 사람들을 당황케 했던 동기의 이름은 박재혁으로 스물일곱 살인 정윤과 동갑이었다. 재혁은 키가 크고 어깨와 광배가 발달해 몸이 다부졌는데, 눈이 날카롭게 찢어진 데다 코와 귀가 엄청 커서 마치 사찰 안에 모셔놓은 황동 부처님 상을 연상케 했다. 어렸을 때 약 6년 간 보스턴에서 학교를 다녔다는 그는 겉으로 드러나는 최소한의 행동은 예의 바르고 깍듯했지만 가끔씩 던지는 시선과 말투가 뾰족한 창과 같아서 듣는 사람의 말문을 막히게 했다. 정윤은 재혁이 싫진 않았지만 그의 당돌한 태도가 언젠가 한 번쯤은 소란을 만들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저는 이정윤이에요!”


톤이 높아 전달력이 좋고 까랑까랑한 목소리. 흑발의 단발머리에 눈썹을 살짝 가리는 일자 앞머리와 검은 뿔테를 쓴 정윤의 첫 느낌은 작은 거인이었다. 평균 여성보다 약간 작은 신장이었지만 다이어트 복싱으로 단련된 체형 탓인지 단단하고 성숙한 여인의 인상을 풍겼다. 


그녀는 동기들 중에 학벌이 가장 좋았음에도 작은 지역 공공기관에 취직한 것을 너무나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사실 정윤의 어머니는 5년 전에 근육의 기능이 소실되는 희귀병 판단을 받으면서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그 아이와 헤어지던 바로 그 시점이기도 했다. 조금씩 악화되는 엄마를 곁에서 돌보려면 직장은 반드시 병원과 가까우면서도 워라밸이 좋아야만 했다. 자신과 엄마를 돌봐줄 가족 따윈 아무도 없었다. 세 살 터울의 오빠는 정윤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몇 달 뒤, 부엌 식탁에 쪽지 하나를 남겨두고 집을 나갔다. 머리를 좀 식히고 온다던 그는 10년이 넘도록 종적을 감췄다. 그때가 정윤이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그때부터 줄곧 정윤이 가장이나 다름없었다. 정윤은 점이니 사주니 하는 비과학적인 것들이 자기 미래를 멋대로 단정 짓는 것을 싫어했지만, 병실 침대 위의 엄마가 조금씩 쇄약 해지는 것을 목도할 때면 이 인고의 끝에는 결국 혼자가 되는 것이 팔자라는 의심은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정윤이라고 했나?”


정윤이 복도에서 신명호 대리를 기다리며 재혁과 학인과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 일자리지원팀의 한숙자 과장이 대뜸 뒤에서 나타났다. 정윤은 일자리지원팀에 배치될 예정이었고 한숙자 과장은 정윤이 명품 슬리퍼로 기억한 바로 그 사람이었다. 정윤은 한 과장을 향해 즉시 허리를 구십 도로 굽혔다. 시선 아래로 광택이 있는 검은색 가죽 슬리퍼가 보였고 로고를 치장한 수십 개의 진주가 그녀의 발에서 번쩍거렸다.


“아, 한 과장님! 네, 맞습니다. 이정윤입니다.”


정윤은 군기가 바싹 든 모습으로 자신이 과장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음을 아주 교묘하게 내비쳤다. 한 과장은 자신을 단 번에 기억해서 기쁘다거나 놀라는 기색 없이 그저 스모키 화장을 짙게 한 눈을 흘겨 정윤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새빨간 입술을 열었다.


“태도가 왜 그러지? 누가 보면 내가 너 잡아먹는 줄 알겠어…. 편하게 해, 편하게. 같은 여자끼리.”


“아, 네! 감사합니다.”


“다른 건 아니고… 아까는 실장님도 계시고 하셔서 제대로 말을 못 했는데, 착한 척하는 거 내 스타일 아니라서 같이 일하기 전에 미리 해주고 싶은 말 그냥 다 할게. 나 돌려서 말하는 거 못해.”


한 과장은 잠시 말을 멈추고 사자 갈퀴처럼 엉킨 파마머리를 쥐어뜯듯이 손으로 빗으며 건들거렸다. 그러다 살모사 같은 눈으로 한 발짝, 거리를 두고 서있는 두 남자를 째려보았다. 재혁은 휴대폰을 보고 있었지만 학인은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우리 팀 만만치 않을 거야. 몇 달 전에 바로 밑에 주임 한 명이 못 버티고 퇴사하는 바람에 공교롭게도 내가 네가 널 가르쳐야 해. 그러니까 내가 사수나 마찬가지인 상황이 됐어. 왜 퇴사했는지 궁금하겠지? 후, 정말 무능력한 애였거든. 걘 나무늘보처럼 느리고, 부탁한 거도 제때 처리도 못하고…. 또, 어쩜 그렇게 배가 자주 아픈지……. 아무튼 잘해주려고 해도 차마 잘해줄 수가 없는 애였어. 아랫사람이 못하면 결국 욕먹는 건 누구겠니? 나잖아? 무슨 말인지 이해 하지? 그러니까 서로 피해 가지 않게 잘하자고 말하고 싶었어. 아! 그리고 난 무슨 어린애처럼 약한 척 질질 짜고 빌빌대는 거 딱 질색이니까 불만 있으면 참거나 울지 말고 그냥 솔직하게 말해. 이해했지?”


한 과장은 직설적이었고 말미에 이해하냐는 말을 덧붙이는 버릇을 지녔다. 레이스가 치렁치렁 달린 화려한 블라우스를 입은 한숙자 과장은 팔짱을 낀 채 정윤이 대답하기를 기다렸다. 그 모습이 너무 권위적이어서 정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네, 한 과장님. 이해했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윤의 심정은 간절했다. 회사에서 정말 잘하고 싶었다. 나중에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정윤 씨 참 잘 뽑았어’라는 말이었다. 반면 가장 듣기 싫은 말은 ‘여자라서 안 된다’라는 말이었다. 정윤은 이성적인 사람이었고 만약 입사하고 그런 편견을 지닌 고지식한 상사를 만난다면 반드시 자신이 예외가 돼서 그 틀을 깨고 싶었다. 다행인 건 하필 한 과장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해줄 수 있는 같은 성별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녀의 호전적인 어투가 조금 염려되긴 했지만 그래도 선배로서 잘 이끌어 줄 것 같았다. 다만, 먼저 그만둔 주임과는 정확히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는 알고 싶어졌다.


“어? 한 과장님? 식사하러 안 가세요? 벌써 열한 시 오십 분인데.”


계단으로 연결된 복도 끝에서 신명호 대리가 작은 쇼핑백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가아죠. 신 대리는… 애들 데리고 밥 사주려고요? 나도 좀 껴줄래요? 오늘 통상팀 반 팀장님 낀다는 거 같던데.”


“아… 반 팀장님이면, 필시 백반이겠네요?”


“뻔하죠. 그 양반 진짜 미쳤나 봐. 진짜 시래깃국 냄새만 맡아도 지겨워 죽겠어.”


“아, 죄송해요. 초밥집 벌써 예약해놔서.... 거기 인기 많아서 자리 없는 거 아시잖아요. 다음에 같이 드시죠.”


“됐어요. 그냥 해 본 소리니까. 저기, 신입사원님, 그쪽 미래예요.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시라고요.”


한 과장이 벽에 등을 대고 서있는 학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학인은 머쓱하게 웃기만 했고 한 과장이 건넨 말의 의도를 정확히 읽어낼 수 없었다.


“그럼 점심 맛있게들 먹어요. 아, 그리고. 정윤 씨…….”


“아, 네, 과장님?”


“방금, 그거.”


“네?”


정윤이 되물었다.


“말할 때마다 ‘아’ 하고 추임새 넣는 거 좀 뺄래요? 계속 듣기가 좀 거슬리네. 내가 뭐 하나 반복되는 걸 싫어해서. 그럼, 나중에 봐요.”


한 과장은 정윤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자신이 아끼는 슬리퍼를 지익 지익 끌면서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


신 대리, 학인, 재혁 그리고 정윤은 사람이 북적거리는 회사 앞 초밥 집에 나란히 앉았다. 미리 예약한 메뉴가 나오자마자 신명호 대리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광어 초밥을 가장 먼저 입으로 욱여넣었다. 그리고는 애정이 서린 목소리로 후배들을 다독여주었다.


“얼른 먹어요. 인사 다니느라 고생 많았어요. 궁금한 거 많죠? 일단 오늘 일정부터 간단히 말해줄게요. 오전은 이렇게 전 부서 돌아다니면서 직원들하고 인사 나누는 게 다였고. 오후엔 잠깐 계약서 작성하고 그다음에 한… 4시간 정도? OJT가 예정되어 있는데, 혹시 OJT 뭔지 알아요?”


신 대리가 물었다.


“아니요. 못 들어봤습니다.”


학인이 젓가락질을 멈추고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재혁이 대답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무슨 Job training? 직무 교육 같은 거 아니었나요?”


짧은 단어를 발음하는 재혁이 거의 원어민과 흡사했기 때문에 나머지 세 사람 모두 놀라며 감탄했다. 특히 영어라면 나름 자신했던 학인이 홀로 기가 죽고 말았다. 학인은 5일 내외의 해외여행을 제외하고는 외국에서 거주한 경험이 없는, 순순히 국내를 기반으로 외국어 실력을 향상한 케이스였다.


“오, 역시. 유학파는 다르네. 보다시피 우리가 엄청 큰 조직은 아니라서 전 직원이 정규직, 계약직 포함해서 한 백 명이 좀 안 돼요. 그래서… 미안한 말이지만, 막 교육이 다른 큰 기업들처럼 체계적으로 있지는 않아요. 채용규모가 워낙 작잖아요? 솔직히 나도 처음 들어왔을 때 주먹구구 식으로 운영되는 거에 진짜 엄청 실망했거든. 어쨌든, 그래서 도입된 게 OJT인데, <On-the-Job-Training>이라고 각 팀장이나 중간 관리자가 신입사원들 한테 자신들 업무에 대해서 개괄적인 부분만 교육해주는 거예요. 전반적으로 여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할 수 있도록……. 그나마 여러분 들어오기 전에 이거라도 생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신명호 대리는 신입사원들이 실망할 것을 예상해 차근차근 내부 사정을 설명해주었다.


“궁금한 거 질문해도 되나요?”


재혁이 신 대리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물었다.


“뭐든지요.”


신 대리가 미소를 지었다.


“휴가는 언제부터 쓸 수 있나요?”


질문을 들은 정윤의 표정이 일순간 찌푸려졌다. 시기상조의 부적절한 질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학인은 눈치 없는 재혁의 질문이 달가웠다. 다음 달에 친구들과 놀러 갈 일정을 짜고 있던 터라 학인 역시 궁금했던 점이었다. 자진해서 첫날부터 연차를 물어볼 용기는 차마 나지 않았던 터였다.


“아, 휴가? 근속연수가 1년 미만일 때는 한 달 일하면 유급휴가 하루 생긴다고 보면 돼요. 그러니까 1년에 총 11개. 다음 달부터 한 달에 하루씩 쓸 수 있네.”


“감사합니다.”


재혁이 고개를 숙이며 깍듯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저도 질문 있어요!”


이번엔 정윤이었다. 신 대리가 이번에는 연어초밥을 공략하려다 젓가락을 허공에서 멈추고 아쉬운 듯 정윤을 응시했다.


“직원 분들 인사 다닐 때... 성함이랑 직급을 다 못 외웠는데 어떻게 하죠?”


“지나가다 누구든 마주치면 그냥 인사만 드리고…. 나중에 조직 배치도 사진하고 같이 나와있는 거 뽑아줄 테니까 당분간은 파티션에 붙여놓고 봐요. 그건 사실…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아아, 잠깐만, 흐름 끊어진 김에 아까 줄게 있었는데….”


신명호 대리는 테이블 아래 두었던 쇼핑백에서 주렁주렁 목걸이가 달린 물건을 세 개 꺼냈다. 그는 뒤엉킨 파란 목걸이를 풀어서 테이블 위에 나란히 올려두었는데, 신입사원들의 얼굴이 담긴 사원증으로 신 대리의 목에 걸린 것과 같은 것이었다. 사원증을 본 학인은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던 아이처럼 기뻐하며 배시시 웃었다.


“아까 정신이 없어서 못 줬네. 출입하려면 필요하니까. 근데 우리는 민원 때문에 열어놓는 문이 더 많아서… 솔직히 안 매고 다니는 사람도 많아요.”


그릇 채 된장국을 마시던 재혁은 남은 한 손으로 자신의 사원증을 힐끗 보고는 곧바로 정장 안에 넣어버렸다. 학인도 감사하다는 인사와 동시에 자신의 것을 목에 걸고 게걸스럽게 식사를 계속했다. 오직 정윤만이 자신의 사원증을 손에 들고 한참을 관찰했다. 사원증에는 입사지원 시 제출했던 취업용 증명사진이 저화질로 프린트되어 있었다. 동네 미용실에서 육천 원을 주고 세팅한 올백머리가 촌스러워 웃음이 나왔다. 뽀글 머리를 한 중년의 미용사는 무조건 단정해야만 면접에서 붙을 수 있다면서 정윤의 머리를 쫙 넘겨 두피에 붙이고 그 위로 스프레이를 난사했었다. 작업이 끝나고 거울에 비치는 모습이 꼭 두피 문신을 한 수도승 같아 울상을 지었던 그 당시의 기억이 이제는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사진 아래에는 회사명과 정윤의 이름이 고딕체로 적혀 있었다. 정윤은 사원증을 통해 한 번 더 자신이 취업에 성공했다는 현실을 자각해냈다. 가장 먼저 병원에 있는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머릿속에 그동안의 고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조약돌 같은 눈에 눈물이 고였다. 정윤은 서둘러 갑오징어 초밥 위에 생와사비를 듬뿍 올려 입에 넣었다. 혀를 타고 전해지는 알싸한 자극이 코를 타고 넘어와 투명한 불을 뿜었다. 정윤은 왈칵 차오른 눈물을 냅킨으로 훔치며 말했다.


“와 여기 와사비 진짜 맵네요. 다들 조금만 넣으세요.”


신명호 대리는 아무 말 없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정윤의 컵에 물을 따라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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