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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선 Sep 25. 2021

#8. 사내 따돌림의 원인 제공자

직장생활 탄원서


 “금요일에 마지막으로 퇴근한 사람 누구야? 어?”

      

끓어오르는 분노로 얼굴이 뭉개진 강 실장은 일자리지원팀 직원들의 인사도 받지 않고 문전부터 화를 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윤은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고 눈치를 살피다 의자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 제가 마지막에 퇴근했습니다, 실장님.”

     

“너야? 너 신입이지? 아무리 처음이라지만 퇴근할 때 불 끄고 퇴근하는 건 상식 아니야? 너는 너네 집에서 나올 때도 불 켜고 그냥 나오냐? 회사 전기세는 네가 안 낸다고 그냥 막 다니는 거야 뭐야?”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주말이 끝나고 4층 담당 청소부가 일자리지원팀을 찾아왔다. 경력이 20년이 된 이 노파는 평소에 오지랖이 넓고 자신의 관할 구역에 대하여 일종의 권력 의식을 지니고 있는 만큼 자칭 후배라고 부르는 직원들에게 ‘내가 전원 좀 신경 쓰라니까’라며 한참을 투덜거리더니 그대로 경영기획실의 강 실장에게 고자질해버렸다. 이 음흉한 노파는 자신의 충고에 대한 직원들의 반응이 탐탁지 않으면 늘 이런 식이었다.

     

‘하필 강 실장이라니, 또 한바탕 소란이 있겠군. 지겨워.’

     

총총 먼지가 붙은 빗자루를 들고 어딘가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사무실을 나서는 노파의 뒷모습을 보며 남경필 대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과거에 한 과장의 상사로 있던 강 실장은 고작 사소한 일도 일부러 크게 부풀려 꼬투리를 잡는 것으로 유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남 대리의 예상대로 그는 9시 1분이 되자 귀신같이 내려와 한 건 잡았다는 듯, 의기양양한 기세로 직접 범인을 색출하기 시작했다.

     

사자후 같은 갑작스러운 실장의 윽박지름에 정윤은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상식에서는 자신의 실수가 어찌 보면 지극히 사소한 일이었기 때문에 약간의 주의 정도로 끝날 줄만 알았다. 그러나 그건 아직 사회에 덜 찌든 풋내기의 안일한 착각에 불과했다. 손쉽게 범인을 알아낸 강 실장은 회색 골프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위협적으로 정윤에게 다가갔다.

     

“자네는…… 온 지 얼마 안 돼서 스위치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건가?”

     

“죄송합니다, 실장님. 그날 한 과장님이 출타하셨다가 다, 다시 들어오신다고 제게 말씀하셔서요. 제가 먼저 퇴근했는데 혹시 돌아오실지도 몰라서…….”

     

정윤의 대답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 과장에게로 쏠렸다. 갑작스러운 지목에 당황한 한 과장이 어이없다는 듯이 혀를 차더니 턱을 바싹 당기고 바닥만 바라보고 있는 정윤을 흘겨봤다. 그리고는 파마 기가 남은 자신의 사자머리를 긴 손톱으로 할퀴며 실장에게 변명하기 시작했다.

     

“하! 참나. 쟤, 쟤가 왜 저래? 실장님, 그게 아니라요. 제가 그날 산단에 있는 한 업체랑 저녁에 미팅이 있어서 나갔었는데, 들어오려다가 얘기가 길어지는 바람에......”

     

“한숙자! 너 씨! 팀장이 공석이라서 지금 이 따위로 관리하는 거야? 어? 내가 너 그렇게 가르쳤어? 말해봐!”

     

실장에게 뻔한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그저 적당한 화풀이 대상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대상으로는 아직 낯설고 어리숙한 신입사원보다 익숙하고 맷집이 강한 한 과장이 훨씬 만만했다. 입술 꼬리에 허옇게 버짐이 핀 강 실장의 입에서 연이어 거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 과장은 입술을 꾹 붙인 채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곧 강 실장이 나갔고 한 과장은 신경질 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머리를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입고 있는 화려한 블라우스에 달린 비즈들이 같이 흔들리며 찰랑거리는 소리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고압적인 눈빛으로 어쩔 줄 몰라하는 정윤을 노려보았다.


          

강 실장이 다녀간 이후로 일자리지원팀의 분위기는 한파가 불어 닥쳤다. 마치 꽝꽝 얼어버린 한강 같았다. 그 강에 빠진 정윤은 자의로는 절대로 깰 수 없는 두꺼운 얼음 아래에 갇혀 뼛속같이 시린 불편함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정윤 씨?”

     

마침내 한숙자 과장이 정적을 깨고 짜증이 잔뜩 서린 어조로 정윤을 불렀다. 

      

“네!”

     

“회의실로 와.”

     

한 과장의 쌀쌀맞은 부름에 정윤은 서둘러 구두로 갈아 신었다. 히스테릭한 그녀의 상사는 슬리퍼를 신고 자신을 마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먼저 회의실로 들어간 한 과장의 눈은 역시나 유리창을 통해 걸어오는 정윤의 발을 향해 있었다. 정윤은 들어가기 전부터 숨이 턱 막혀 온 몸이 굳을 것만 같았다.

     

“문 닫아.”

     

기다리고 있던 한 과장은 마치 일부러 자신의 몸매라도 과시하듯 회의용 의자에 살짝 엉덩이를 걸치고 있다가 정윤이 들어오는 걸 보자마자 우아하게 다리를 들어 교차했다. 달라붙는 치마가 살짝 올라가면서 검은색 스타킹을 신은 늘씬한 다리가 드러났다. 비슷한 나이 대에서 보기 드문 각선미였다. 한숙자 과장은 애가 없는 돌싱이었고 꾸밈에 관심이 많았다. 외모 관리는 그녀에게 있어 부지런함의 상징이자 무기였다. 특히 인간관계에 있어 명품과 늘씬한 몸매라는 것은 그 대상과 성별에 관계없이 상대방을 기선 제압하기에 아주 유용했다.

      

한 과장은 안절부절못하는 불쌍한 양을 관찰했다. 그녀의 관점으로는 갓 입사한 후배의 모습은 여러모로 최악이었다. 머릿결이 상한 단발머리는 삐쭉빼쭉 지저분했고 입는 옷도 한결같이 구렸다. 어쩔 때는 전날 입은 옷을 그대로 입고 출근할 날도 있었는데 한 과장은 이 같은 천박한 행동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아무리 자신이 외박을 했다고 한들, 어떻게 그걸 회사에서 대놓고 티를 낼 수 있단 말인가? 갑자기 화가 더욱 치밀어 오른 한 과장은 이번에야말로 발랑 까진 후배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놓겠다고 다짐했다.

     

“정윤 씨, 내가 부탁한 건 도대체 왜 안 주는 건데?”

      

고요했던 회의실 안에 젊음의 일부를 상실한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무리 관리를 잘한 한 과장의 외모가 30대처럼 보였더라도 목소리만큼은 숨길 수 없었다.

     

“네? 아, 공모전 관련 건이요? 지난주 금요일에 과장님 책상에 출력물 올려드리고 퇴근했는데... 혹시 못 보셨어요?”

     

정윤의 대답에 한 과장은 기가 차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난 못 봤는데? 못 받았다고! 그러니까 상사에게 직접 전달하는 게 기본적인 예의 아니야? 넌 이렇게 기본적인 것도 이해가 안 가니? 그리고, 누가 함부로 파티션 넘어와서 내 책상 보라고 했니? 넌 파티션이 왜 있는지 모르겠어? 각자 자기만의 구역이 있는 거야. 설마...... 내가 너한테 자료 던져줬다고 너도 고대로 따라한 거야?”

     

“아니요, 그건 절대로 아닙니다.”

      

정윤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보고를 제대로 해야 될 거 아니야! 보고를! 어떻게 상사랑 얘기도 안 했는데 네 멋대로 갈 수가 있어? 전화 한 번 딸랑해서 부재중 남겼으면 되는 거니?”

      

정윤은 ‘일 하시는데 여러 번 전화 걸면 그게 더 결례일까 봐’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그대로 함구했다.

     

“진짜 웃기는 애네. 아, 금요일인데 눈치 없는 상사가 퇴근 못하게 해서 짜증 났겠구나? 남자 친구랑 데이트하기로 했는데 말이야? 그렇지?”

     

“과장님, 그게 아니고요......”

     

정윤은 아직까지 한 과장의 말에 토를 달아본 적이 없었다. 어쩐지 기가 센 한 과장의 앞에만 서면 자신도 모르게 주눅이 들어서 머리가 하얘지고 논리적인 답변을 할 수가 없었다. 입사 전 원래의 정윤이었다면 합리적이지 못한 일에 있어서 참지 않고 곧장 따졌을 터였다. 그런데 사무실만 들어서면 마치 마법이라도 걸린 것처럼 소심한 졸보가 돼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억울했다. 정윤은 본래 밝히지 않으려고 했던 개인 사정을 떠올리며 고개를 들고 바싹 마른 입술을 떼었다.

     

“사실, 어머니가 아프셔서요...”

     

떨리는 정윤의 세 마디가 한숙자 과장의 고막을 울리자마자 그녀의 커다란 입이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이 너무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힌다는 비아냥에 가까워서 정윤은 하려던 말을 끝까지 못하고 등을 들썩거리는 상사의 다음 반응을 기다려야만 했다.

     

“하! 어쩜 이렇게 어린것들은 변명하는 게 하나같이 다 진부하지? 아, 나 정말 화가 나서 미쳐버리겠어! 차라리 솔직하기라도 하면 너그러이 용서라도 해줬을 텐데. 그냥 주말이라 약속 있었다고, 남자 친구가 기다려서 갔다고 해! 어머! 그 놀라서 눈 커지는 반응은 뭐야? 내가 어떻게 알았냐고? 그렇게 티를 내기 싫었으면 평소에 옷부터 챙겨서 갈아입고 출근하는 치밀함은 보였어야 되지 않겠어? 넌 직원들이 모를 거라 생각하는 거니? 우리가 바보야?”

     

망상까지 곁들여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화를 내는 한 과장을 보고 있자니 머리에 뿌연 연기 같은 게 차면서 이마가 후끈후끈해졌다. 스트레스로 호르몬이 과하게 분비되면서 심장이 빠르게 뛰고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남자 친구라니. 정윤의 인생에 연애는 거의 없는 어휘에 가까웠다. 같은 옷을 입은 이유라고는 그저 병원에서 갈아입을 옷을 챙기지 못했을 뿐이었다.

      

“네? 과장님 저 남자 친구 없어요. 그날 일찍 간 거는 어머니가 병원에서 입원......”

     

오해의 골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깊어지는 것을 확인한 정윤이 다급하게 해명하려 했지만 과장은 애초에 이를 받아들일 마음조차 없었다.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했다. 한 과장은 스모키 화장이 짙은 눈을 질끈 감고 손바닥을 펼쳐 정윤의 말을 저지했다.

     

“제발, 제발. 내가 지금 많은 거 안 바라잖아? 지금 누가 너한테 남자 친구랑 모텔에서 자고 출근한 거 인정하라는 것도 아니고. 내 말이 정말 이해가 안 돼?”

     

더 이상 대화의 의지가 없는 한숙자 과장은 그런 정윤을 내버려 둔 채 회의실을 박차고 나섰다. 뒤따라 정윤도 자리로 돌아왔다. 말소리도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들 숨을 죽이고 있었다. 허름한 회의실 밖으로 대화 소리가 샜는지 다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것처럼 보였다. 사무실을 지배하는 묵직한 정적이 피부에 닿았으면서 정윤 주위의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뭐해 다들? 점심 먹으러 안 가?"

     

한 과장의 호통에 일자리지원팀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슬그머니 팀원들의 눈동자가 어정쩡하게 선 정윤을 향했지만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정윤은 차마 따라나설 수 없었다. 무리가 하나 둘, 망부석처럼 서 있는 정윤을 스쳐 지나갈 때, 문득 젊은 여성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아무튼 여러모로... 참 대단해요? 그만둔 최 주임도 정윤 씨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주근깨가 많은 윤수정 사원이었다. 놀란 정윤이 눈을 마주했다. 그녀의 입가에 조소가 흘렀다. 수정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커다란 눈으로 정윤을 비웃으며 무표정으로 앞서가는 남경필 대리의 뒤를 따랐다. 텅 빈 사무실에 홀로 남은 정윤은 마침내 무너지고 말았다.  참았던 눈물이 두 줄기로 나뉘어 흘렀다.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의 몸이 불규칙적으로 들썩였다. 정윤은 한동안 일어서지 못했다. 아니,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건너편 글로벌통상팀에 있던 학인 또한 알게 되었다. 한 과장과 정윤이 회의실에 들어갔을 그 시점에, 학인은 막 회의실 벽 옆에 설치된 복사기를 사용하던 중이었다. 투명한 회의실을 통해 내부 상황을 적당히 훔쳐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이고, 저기 벌써 다 나갔네. 우리도 가자. 뭐 먹을까?”

     

반일식 팀장이 기지개를 한 번 켜고 직원들을 향해 물었다.

     

“아, 오늘은 뭐 드시겠습니까, 팀장님?”

     

김창희 주임이 즉각 반응했지만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뭐 이 주변 먹을 거도 없잖아? 그냥 백반 먹자고. 나는 그 집 시래깃국이 그렇게 맛있더라? 안 그래, 다들? 약간 우리 어머니가 끓여준 그 맛이거든.”

     

입을 벌리고 목청껏 웃는 반 팀장을 제외하고 모두가 망연자실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가만히 복사기 옆에서 정윤을 응시하던 학인도 이내 팀원들을 따라 사무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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