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 이야기로 회사가 어수선한 때에 글로벌통상팀은 인도 아마다바드 지역 경제사절단의 내방을 앞두고 회의실에 모였다. 인도 사절단과 첫 접촉은 작년 가을에 일어났다. 두 지역의 경제 협력을 위해 진흥원을 방문하여 MOU를 체결하고 싶다는 공문을 주고받은 이후로 개괄적인 일정만 확정 지은 채 쭉 밀어두었던 터였다. 팀원들의 기억 세포에서 몇 개의 국경을 넘어야만 비로소 만날 수 있는 남아시아 국가와 이런 담화가 있었다는 것조차 까마득해졌을 때쯤, 막 자국의 협조 요청을 받은 주한 인도 대사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게 불과 열흘 전이었다.
“아 그러니까, 걔네가 오면 뭘 대접해야 되는지 한 번 아이디어를 제시해보라니까?”
반 팀장의 닥달에도 회의실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팀원들의 시선은 입을 꾹 다문 채 테이블 위에 놓인 자신의 수첩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글자 한 자 없이 텅 빈 종이만 바라보고 있는 직원들이 한심해서 도무지 봐줄 수가 없다는 듯 눈길로 테이블 전체를 아우른 다음 강하게 혀를 찼다.
“염병, 너네는 뭔 내가 질문만 하면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냐? 이렇게 무능한 부하들을 거느리고 있으니 내가 승진을 못했지! 못했어! 야! 구석에 김창희! 네가 한 번 말해봐. 식사 대접은 뭘로 해야 인도 사람들이 좋아할 거 같냐? 네가 좀 인도 사람처럼 생겼잖아?”
그는 종종 상대방의 외모에서 두드러지는 특이점을 꼬집어 비웃은 다음 유독 주변 사람들의 열렬한 호응을 바라며 목청을 높여 껄껄거리곤 했는데 역으로 자신이 같은 방식으로 놀림을 당한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묘지에 수북하게 자란 늦가을 잡초 같은 숱 많은 눈썹, 그리고 그에 못지않은 턱수염과 땅딸막한 키를 따서 록키산맥의 '빅풋'이란 변명이 붙기도 했고 광대뼈 근처에 살집이 부족하여 너부죽한 볼과 양 옆으로 고약하게 찢어진 입모양 때문에 두꺼비라 불리기도 했다.
“저 말씀이십니까? 에 그러니까... 인도 사람이니까 카레 어떻습니까? 회사 앞에 유명한 프렌차이즈인 돈가스 카레집이 있는데 싫어하지도 않고 다들 엄청 좋아할겁니다!”
“이걸 확 그냥! 인마,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냐? 거기서 여기까지 차 타고, 비행기 타고, 또 환승하고... 이동 시간만 못해도 스무 시간이라는데 너 같으면 그렇게 개고생 해서 여기까지 와서 자기들 나라보다 질 떨어지는 삼류 카레가 목구멍으로 넘어가겠냐? 오사카로 출장 갔는데 기무치 대접한다고 하면 좋겠어? 웃긴 놈이네 이거. 왜? 아예 오뚜기 3분 카레 선물로 준비하라고 하지? 입맛따라 간편한 한국 최고의 레토르트라고?”
“죄, 죄송합니다!”
김창희 주임은 즉각적으로 사과의 말을 외친 후에 앉은 상태로 고개와 허리를 꼿꼿이 세워 긴장된 자세를 유지하여 꼭 군기가 바짝 든 신병을 연상케 했다. 그는 늘 자신이 만든 어떤 실수를 맹목적인 충성심과 사건과 무관한 예의범절을 보임으로써 만회하려는 습성을 지녔다. 따라서 오늘도 어김없이 같은 방식을 취해 자신의 상사의 성을 녹이려 했는데, 주목할만한 점은 의외로 잘 먹힌다는 것이었다.
“진학인. 그럼 네가 말해봐. 너 영어도 잘하니까 그나마 외국 사람에 대해 잘 알 거 아니야?”
반 팀장의 다음 타박 상대는 김창희 주임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학인에게로 넘어갔다.
인도 사람을 위한 참신한 음식. 뭐가 있을까.
학인은 모두의 눈동자를 끌어안은 채로 고민에 잠겼다. 아까부터 참신함을 요구하는 것을 보면 분명 불고기나 비빔밥 같이 뻔한 건 아닐 것이다. 학인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불현듯 최근 영어 공부를 하다 본 워싱턴 포스트 기사 하나를 떠올렸다. 한류 열풍으로 외국인들이 다양한 한국 음식을 시도하기 위해 캘리포니아 주에 위치한 한인 타운을 자주 찾는다는 주제였는데, 특히 이 중에서도 한국식 시즈닝이 가미된 양념치킨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내용이 뇌리를 스쳤다.
“요즘 한국식 치킨이 미국에서도 유행이라고 하던데... 외국은 보통 양념 치킨이란 개념이 거의 없고 KFC처럼 닭 튀김이 일반적이어서 시즈닝 된 치킨을 외국 사람들이 의외로 참신하게 받아들인다고 하더라고요? 특히 인도면 향신료를 많이 쓰기 때문에 매운 것도 잘 먹는 편이라 평범해보이지만 생각보다 괜찮을 지도......”
학인은 입술을 삐쭉 내밀로 기가 차다는 듯 다시 한번 쯧쯧 거리고 있는 반 팀장의 얼굴을 보고 그만 볼륨을 줄일 수 밖에 없었다. 반 팀장은 몸의 방향을 틀어 한숨을 푹 내쉰 후에 갑자기 좌우로 왔다갔다 거리기를 반복하다가 팔짱을 끼고는 다시 돌아서서 연설을 시작했다.
“뭐? 치킨? 참나. 참신한 거라고 했다고 또 그냥 막 던지시는 구만. 무슨 되도 않는 소리로 약을 그렇게 잘 팔아? 사기업가서 영업을 해야겠어, 우리 진학인 씨는? 이래서 너네들이 나한테 짬이 안 되는 거야.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아니지, 그 수첩 빈 공간에 빼곡히 적어! 다 나중에 어떤 국가에서 사절단이 오든, 통상 쪽 업무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이니까."
자신감 넘치는 그의 훈수에 학인을 포함한 모든 직원들이 펜을 들고 귀를 기울였다.
"한국 전통음식 하면 딱 떠오르는게 뭔지 몰라? 이 두 가지는 무려 한국관광공사에서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광고까지 해서 전 세계인들이 알고 있는 한국 고유의 음식이라고. 결론부터 말하지만 김치 절대 아니다. 바로......"
"비빔밥 하고 불고기 아니야? 니들은 이거 하나 떠올리는 게 그렇게 어렵냐? 맨날 휴대폰 게임만 하지 말고 신문을 좀 봐라.”
애초에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몇몇 사회생활에 능한 직원들이 작게 감탄하는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들의 할리우드 급 연기 실력은 또 한 번 반 팀장을 의기양양하게 만들었다. 한동안 자신의 능력에 한껏 심취한 반 팀장은 자신이 20년 회사생활 동안 이룬 업적이 얼마나 대단했는지에 대해 떠벌리기 시작했다. 그의 서사는 십 분이 넘도록 계속됐다.
“또 뭐가 남았냐......”
반 팀장은 누런 이로 볼펜 끝을 잘근잘근 씹으며 회의 자료를 살폈다.
“아! 통역. 어디 보자 통역 예산이...... 60만 원? 야, 홍성준이. 예산을 어떻게 짠 거야? 뭐가 이렇게 비싸?”
“그쪽에서 하원의원 하고, 경제단체장, 지역 기업인들까지 총 9명이나 오니까 전문 통역사가 최소 2명은 있어야 원활하게...”
김창희 주임의 사수였던 홍성준 과장이 설명했다. 그의 직급은 과장 대우로 신명호 대리보다 3년 선배였으나 늘 낯빛이 어둡고 모든 일에 의욕이 없어 촉망받지 못하는 직원이었다.
“전문 통역사? 인도면 영어 쓸 거 아니야? 그럼 우리가 뭔 전문 통역사가 필요해? 여기 진학인이하고 경영관리팀에 박재혁이하고 둘이 하면 되겠구먼. 어이, 진학인. 할 수 있지?”
“네? 제가요? 아무리 그래도 그냥 일상회화랑 전문 통역을 하는 거랑은 차이가......”
학인이 거절 의사를 에둘러 표현했다.
“거참! 그냥 ‘예, 알겠습니다. 어려워도 해보겠습니다.’라고 하면 되지 뭔 말이 이렇게 기냐? 이럴 때 써먹으려고 영어 가점 줘가면서 너네 뽑은 거야 자식아. 이거 사업비 남기면 회사에도 도움되고, 업무추진비랑 잘 조율해서 회식 때 보태면 소고기도 먹겠구먼 흐흐. 김창희! 네가 책임지고 상의하고 결정해서 오후까지 보고해. 한 번 보겠어. 자, 회의 끝!”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직원들이 회의실을 나섰다. 바퀴 달린 의자가 어지럽게 널브러진 회의실 안에는 김창희 주임과 학인 두 사람만이 남았다. 줄곧 뻣뻣한 자세를 유지하던 김창희 주임은 회의실을 둘러싼 유리창에서 반 팀장의 모습이 사라지자 곧바로 긴장을 풀고 짝다리를 짚었다.
“진학인, 네 동기한테 인터폰 해서 5분 뒤에 옥상에서 보자고 해.”
학인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승모근을 수축시킨 채로 먼저 회의실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을 잠깐 관찰했다.
이번에도 김창희 주임은 학인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이야깃거리가 생기면 일단 흡연 구역으로 학인을 불러 내고 나서야 하고 싶은 말을 쏟아 냈다. 그러고는 대화가 끝날 때까지 콧구멍으로 매캐한 연기를 뿜으며 줄담배를 피워댔다.
그 버릇은 자신의 흡연하는 모습이 어떤 강인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고 굳게 믿은 데서 생긴 것이었다. 실제론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허세가 잔뜩 깃든 그의 천박한 품행은 멋모르는 학창 시절에나 먹힐만한 풋내기 방식에 불과했다. 여전히 회사가 또 다른 군대라는 착각 속에서 사는 김창희 주임의 장단에 맞춰 줄 사람은 불행히도 학인이 유일했다.
***
“얘는 왜 안 와? 야, 진학인. 선배 말 잘 들어. 솔직히 우리 같은 기관에서 외국어? 그거 얼마나 쓸모 있을 거 같냐? 공부해봤자 별로 쓸 일도 없어. 어차피 요즘 같은 세상엔 긁어다가 번역기에 돌리면 다 나온다고. 그러니까 네가 뭐 영어 조금 한다고 우쭐해할 필요 없어. 회사는 경력과 실전이야. 골프는 구력이다 뭐 이런 말 들어봤지? 같은 거야.”
김창희 주임은 열등감에서 비롯된 자격지심으로 먼저 올라온 자신의 후배를 깎아내리길 시도했다. 학인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런 선배를 둔 자신의 운명이 기구했다. 야윈 김창희 주임의 손가락이 구겨진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더 꺼냈을 때 멀리서 끼익, 녹슨 철문이 열리면서 재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재혁은 입사 당시와 비교하여 조금 살이 붙은 듯했다. 입사 초 보다도 더 커진 그의 몸집은 이제 옥상 문이 좁아 보일 지경이었다.
“재혁아. 선배가 부르면 빨리빨리 다녀야지. 안 그래?”
두리번거리던 재혁이 두 사람이 있는 흡연 부스 쪽으로 다가오자 김창희 주임은 목청을 높여 기선제압을 했다. 의외로 재혁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고 타고난 날카로운 눈매로 김창희 주임을 응시했다.
잠시 후 학인은 마주 서고 있는 두 사람의 체격 차이가 너무 커서 마치 초등학생과 운동선수를 보는 듯했다. 김창희 주임도 꽤나 의식한 듯 최대한 가슴 근육을 펴서 파리한 몸을 부풀렸지만 대적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형, 도대체 뭐 때문에 굳이 여기까지 부른 거야? 그냥 밑에서 얘기하면 되지.”
평소보다 훨씬 구린 표정의 재혁이 학인에게 물었다. 학인이 대답하려는 찰나, 김창희 주임이 뒤쪽 화단에 가래침을 뱉으며 말을 가로챘다.
“내가 불렀다. 너 나 누군지 몰라? 선배님을 봤으면 인사부터 해야지?”
김창희 주임은 건방진 후배의 코를 납작 누르려고 했지만 재혁은 학인과 달랐다. 그는 애초에 비합리적인 지시나 강요를 받아들일 여지가 없는, 자존감이 높으면서도 반항적인 인격의 소유자였다.
“누구신 데요? 저는 입사하고 처음 보는 거 같은데요.”
재혁은 알면서도 일부러 모른 척했다.
“처... 처음 본다고? 그리고 잠깐만. 요? 하! 가까스로 4개월 만에 진학인 사람 만들어 놨더니 또 일거리가 생겼네. 신명호 대리 밑에 있는 놈들은 하나 같이 정신 교육이 안 돼있다니까. 그래서 내가 너무 풀어주면 안 된다고......”
“아니, 그래서 형, 여긴 왜 오라고 한 건데?”
재혁은 이제 학인의 쪽으로 완전히 몸을 돌리고 이야기했다. 학인 역시 그 태도가 무례하다는 걸 알았기에 당황하며 표정이 굳어지는 김창희 주임의 눈치를 살폈다.
“야! 너... 나 지, 지금 무시하냐? 어? 이 새끼가 너무 물렁한 사람 밑에 있다 보니까 빠져가지고 말이야!”
광대가 툭 튀어나온 김창희 주임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
"야."
재혁의 성대에서 평소보다 더 낮고 야생적인 음성을 만들어냈다. 그 바람에 놀란 김창희 주임의 숱 없는 눈썹이 씰룩했다. 재혁은 김창희 주임에게 한 발자국 다가갔다. 그 기세가 범인을 제압하는 베테랑 형사처럼 장중하여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야?"
김창희 주임이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학인을 포함하여 여태 길들였던 후배들과는 달리 유순하지 않은 재혁의 반응에 김창희 주임은 적지 않게 당황했지만 최대한 태연한 척 애를 썼다. 여기서 밀리면 지는 것이다. 나는 저 곰같이 덩치 큰 놈보다 한참 선배다. 주눅 들지 말자. 그는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최면을 걸듯 이렇게 되뇌었다.
둘 사이에 형성된 긴장감을 지켜보던 학인은 김창희 주임의 떨림이 분노인지 공포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학인의 이성은 앞으로 재혁의 회사생활을 위해서라도 말려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지만 본능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내버려 두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 상황은 지금 학인에게 대리만족을 주고 있었다. 언젠가 한 번쯤 상상 속에서나 그리던 장면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이 마약처럼 자극적이고 흥분감을 고조시키는 순간을 굳이 멈추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너, 너는 군대도 안 갔다 왔냐?”
"여기가 회사지 군대야?"
재혁이 김창희 주임을 비웃었다.
“이게 선배님한테 어디 감히 반말을......”
느닷없이 움직인 재혁의 발이 김창희 주임 옆에 있던 재떨이 통을 날려버렸다. 쾅 소리와 함께 그 안에 있던 쓰레기와 담배꽁초, 그리고 빗물과 섞인 오물들이 바닥으로 쏟아져 나왔다. 재혁의 우발적인 행동에 기겁한 김창희 주임은 창피한 줄도 모르고 비명 소리를 질렀다. 그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어안이 벙벙해진 나머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헤벌레 입을 벌리고 널브러진 재떨이 통에 시선을 고정할 뿐이었다.
“아니, 선배면 다짜고짜 반말해도 돼? 뭔 하인처럼 막 맘대로 갈구고 부려 먹기로 돼 있냐고! 시발, 여기 있는 새끼들은 하나 같이 멀쩡한 놈들이 없네.”
재혁은 이제 먹이를 빼앗겨 흥분한 고릴라처럼 씩씩 거렸다.
“아……”
“야, 너 계속 내 앞에 있으면 진짜 못 참을 거 같으니까. 당장 꺼져.”
“뭐라고? 이, 이게 미친 거 아니야?”
“I’m gon’ count 3. So get the fuxk out of ma face.(셋을 셀 거야. 그러니까 내 앞에서 꺼지라고.)”
“진학인! 쟤 뭐, 뭐라는 거야?”
재혁의 말을 김창희 주임은 당연히 알아듣지 못했고 다급히 통역을 바라는 눈길로 학인을 바라보았다.
“One.(하나)”
재혁이 손가락 세 개를 펴서 하나를 접었다. 김창희 주임은 본능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알아챈 듯 한 걸음 물러섰다.
“Two.(둘)”
재혁이 다시 거리를 좁혔고 그 기세에 눌린 김창희 주임이 서서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빨리 내려가시는 게 좋을 거 같네요.”
학인이 충고했다.
“Three!(셋)”
재혁의 우렁찬 고함과 동시에 김창희 주임은 헐레벌떡 출구를 향해 줄행랑을 쳤다. 가느다란 그의 팔이 허공에서 힘없이 팔랑거렸다.
“너네! 강 실장님 한테 내가 다 이를 거야! 케케. 회사에서 이런 하극상이 일어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절대로 그냥 안 넘어갈 거다, 이 놈들아! 케케. 징계 감이라고!”
문 바로 앞에서 멈춰 선 김창희 주임은 철문을 방패 삼아 마지막까지도 가벼운 입을 놀려댔다. 재혁은 결국 참지 못하고 초원 위의 성난 코뿔소처럼 전속력으로 뛰어가며 영어로 욕을 지껄였다.
"Hey! Listen to me, you sick. If you don’t shut the fuxk up, I'm gonna rip you off in half. Do i currently make myself clear?(야! 잘 들어, 이 새끼야. 다시 한번만 입 열면 내가 널 반으로 찢어 버릴 거야. 알아 들었어?)”
재혁이 네 발자국을 채 전진하기도 전에 김창희 주임은 사라졌다. 뒤에서 이 모든 걸 바라보던 학인의 마음에는 통쾌함과 우려가 동시에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