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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선 Oct 23. 2021

#18. 궁서설묘(窮鼠齧猫)



“5월 22일 오후 18시 09분. 홍민자 님 운명하셨습니다.”


정윤의 어머니는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바싹 마른 입술이 마지막 숨을 토해낸 건 정윤이 중환자실에 도착하기 3분 전이었다. 하얀 침대보 위에 누워 있는 50대 여성의 모습은 생전과 특별히 다를 게 없었다. 피부에 이식이라도 한 듯 너무 익숙하게 달려있던 호흡기만 떼어 냈을 뿐 잿빛의 얼굴은 사나 죽으나 초라하긴 마찬가지였다. 수 분동 안의 심폐소생술로 땀을 뻘뻘 흘리며 팔을 떨고 있는 의사가 넋이 나간 정윤에게 다가와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넸다. 정윤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말들을 뒤로하고 잠시 영혼을 잃어버린 엄마의 육신을 바라보았다. 아직 미세하게 온기가 남아 있을 텐데. 정윤은 마지막으로 피부를 맞닿았던 그 온도를 생각했다.


며칠 전, 병원에서 온수를 적신 수건으로 조각상처럼 굳은 엄마의 얼굴을 닦아내던 정윤은 곧 일어날지도 모를 상황을 염두하며 하나의 가설을 세웠다. 만약 엄마가 지금 당장 눈앞에서 생을 마감한다 해도 그다지 슬프지 않을 것 같다는, 혈육이라면 차마 해서는 안 되는 생각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운명이 장난이라도 치 듯 그 가설의 진위를 확인해볼 순간이 정말 닥쳐온 것이었다. 한숙자 팀장의 훼방으로 임종의 순간을 놓친 정윤은 엄마의 시신을 마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섣부른 짐작의 대가를 고스란히 치르고 있었다.


감정을 조절하는 세포들이 하나, 둘씩 끈적하게 녹아내리며 우화 속 마녀의 수프처럼 온통 뒤섞이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엔 실소가 피식 나올 만큼 어처구니없다가 공허함에 젖은 속이 뒤틀리며 메스껍다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과거날들이 후회스럽다가……. 이윽고 해양 한가운데서 거세게 휘몰아치곤 태풍이 순식간에 증발한 것처럼 소용돌이치던 감정의 바다가 덜컥 고요해졌다. 그리고 모든 게 무너져 내렸다. 어미를 잃고 홀로 남은 아기새는 그제야 애통해했다. 그리고 기억이 가물거릴 만큼 먼 옛날 길을 잃은 어린 자기 자신처럼 서럽게 흐느끼며 엄마를 찾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엄마!"


이미 이승의 기운을 잃은 엄마는 평소와 다를 게 없었지만, 정윤의 부름은 분명 달랐다. 불쌍한 아기새의 지저귐에는 어떠한 희망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간호사들은 익숙한 듯 무너지는 정윤을 부축해 병실 밖으로 옮겼다.


***


장례식장은 외딴곳에 위치했고 비용이 저렴한만큼 건물 역시 허름했다. 여섯 개의 빈소도 대부분 비어있어서 그 흔한 상주의 울음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다. 건물 관리인이 불이라도 늦게 켠 날이면 산 앞에 덩그러니 놓인 건물의 본새가 마치 오래전에 주인을 잃은 폐건축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빈소의 모습은 생전 고인이 얼마나 인정 있는 길을 걸어왔는지 확인할 수 있는 삶의 발자취라고도 했다. 끝없이 열을 이루는 화환과 많은 이들의 슬픔이 묻어 있는 빈소가 있는 반면, 조문객 하나 없이 파리만 날리는 빈소도 있다. 정윤의 어머니는 후자였다. 젊은 시절부터 팍팍한 삶을 이기려 인간관계를 단절하고 아등바등하게 산 홍민자를 기억하는 조문객은 거의 없었다. 모전여전이라 했던가. 그건 못지않게 치열하게 살아온 그녀의 딸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윤이 액정이 부서진 휴대폰으로 부고 문자를 보내려다 보니 연락처에 친구라고 할 사람은 세네 명 정도가 고작이었다. 심지어 그 친구들도 연락이 끊긴 지 2년이 넘었다.  


그런 음침한 빈소에 제일 먼저 사람 냄새를 풍긴 것은 의외로 박대근 차장이었다. 서툰 다림질로 폴리에스테르 면이 번들거리는 검은 정장을 입은 그는 아무 말도 없이 절을 하고 정윤의 어깨를 다독여주고는 자리를 떠났다.


“미안해요, 정윤 씨. 미안해.”


그다음은 남경필 과장이 홀로 왔는데 그는 정윤과 마주하는 내내 시선을 피하고 미안하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다음 날이 돼서야 약속이라도 한 듯 한꺼번에 몰려왔다.


“고생 많지 정윤 씨?”


마케팅지원팀의 노미영 대리가 꺼칠한 정윤의 두 손을 붙잡았다. 단발머리에 얼굴이 뽀얗고 아주 얇은 티타늄 테 안경을 쓴 노미영 대리는 심성이 선하기로 유명했다. 정윤은 진심으로 안쓰러운 시선으로 자신을 어루만져주는 노미영 대리를 보면서 믿지도 않는 신을 원망했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운명을 나누었길래! 왜 저런 사람이랑 지낼 기회는 박탈당하고 악마 같은 한숙자 팀장과 엮이는 저주에 걸리고만 걸까? 믿으면 구원해준다고? 구원도 선불이냐? 개나 줘버리라 그래.”


정윤은 속으로 야속한 신을 욕하며 자신이 종교를 가질 수 없는 이유를 다시 한번 되새겼다.



오후 5시가 되자 빈소는 다시 오래된 아파트의 텅 빈 놀이터처럼 공허해졌다. 정윤의 짐작으로 웬만큼 올 사람들은 모두 다녀간 듯했다. 한숙자 팀장은 사과는커녕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정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윤은 하얀 페인트 칠이 된 벽에 기대 있었다. 이렇다 할 특색 하나 없는 빈소의 인테리어가 정윤을 더 초라하고 고독하게 만들었다. 정윤은 촛불 그림자가 넘실대는 엄마의 영정사진을 바라보았다. 턱선까지 오는 짧은 파마머리에 두툼한 입술을 앙다물고 어색한 입꼬리를 말아 올린 엄마는 꼭 웃는 법을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다.


“엄마…”


정윤이 갈아진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엄마는 당연히 나보다 더 외로웠겠지?”


정윤의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근데 나… 나도 너무 힘들어. 그만하고 싶어… 다.”


액자 아래쪽에 위치한 향로에서 연기가 곡선을 그리며 끊임없이 승천했다. 정윤은 피어오르는 한 줄기의 연기를 보면서 미약할 지라도 불쌍한 엄마의 영혼을 부디 좋은 곳으로 인도하는 길잡이 역할을 해주길 바랐다.


한동안 옅은 계피 냄새와 같은 향내를 맡고 있자니 아로마 향도 아닌 것이 온몸을 짓누르는 피로와 섞이며 솔솔 잠이 쏟아지게 했다. 정윤이 마지막으로 잠을 잔 것은 무려 36시간 전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정윤은 털썩 주저앉았다. 곧 최면술사가 최면이라도 거는 것처럼 머리가 묵직해졌다. 눈이 감김과 동시에 천천히 고개도 중력의 방향을 따라 기울었다. 잠시 후, 정윤은 짚 돗자리 바닥에 졸도하듯 쓰러졌다.


***


“정윤아. 일어나 봐.”


학인은 빈소에서 허리가 기형적으로 꺾인 채 잠들어 있는 정윤을 흔들어 깨웠다. 눈곱이 잔뜩 낀 정윤의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어? 학인 오빠? 언제 왔어? 아… 언제 잠든 거지. 미쳤나 봐. 나 대신 손님 봐줄 사람도 없는데. 지금 몇 시야?”


“저녁 8시 좀 넘었나? 음식 해주시는 아주머니한테 물어봤는데, 다행히 아무도 안 왔대. 괜찮아?”


정윤은 머리를 단정하게 매만지며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언제 왔어?”


“한 1시간 됐어. 신 대리님이랑 재혁이도 왔어. 잠깐 화장실 갔으니까 금방 올 거야.”


학인은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렸다. 정윤은 눈치채지 못하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저기, 정윤아 할 말이 있는데……”


결심한 학인이 조심스럽게 운을 띄웠다. 불행히도 그의 이야기는 한숙자 팀장에 관한 것이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어제 한숙자 팀장이 정윤을 경찰에 신고한 것이었다. 정윤은 한숙자 팀장이라는 단어에 반응하며 미간을 구겼지만 별 말없이 경청했다.


한 팀장은 피범벅이 된 얼굴을 닦기 전에 자신의 얼굴을 먼저 사진 찍도록 시켰다. 사진사 역할은 당연 윤수정 사원이 맡았다. 파출소에서 출동을 나온 두 명의 경찰관이 뒤늦게 상황설명을 듣고 정윤을 찾아 병원으로 갔을 때 정윤은 이미 장례준비를 위해 이동한 뒤였다. 우연히 병원 접수처에서 정윤에 대한 정보를 캐내던 경찰들은 오지랖 넓은 원무과 직원 덕에 정윤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젊은 두 명의 경찰관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가족도 없이 홀로 상을 치러야 하는 가엾은 소녀의 사정을 봐주지 않을 정도로 무정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경찰은 도주 우려가 없다고 판단하고 장례가 끝날 때까지 유예기간을 주었다.


“나도 대충 알고 있어. 경찰한테 연락 왔었거든. 어차피 이제 잃을 것도 없는데 신고를 하든 고소를 하든 상관없어. 아! 근데 오빠, 잠깐만 기다려 봐. 나 부탁이 하나 있어.”


정윤은 사이즈가 안 맞는 검은색 상복 치마를 질질 끌며 구석으로 갔다. 그 사이에 재혁과 신명호 대리가 돌아왔다. 정윤은 다 떨어진 자신의 인조가죽 가방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들고 왔다.


“이게 뭔데?”


학인은 처음에 돈인 줄 알았으나 형광등에 슬며시 비친 봉투 속에는 반듯하게 두 번 접힌 하얀 종이가 들어 있었다. 학인이 정윤에게 봉투를 건네받자마자 봉투를 열어 안을 확인하려고 했지만 정윤이 재빨리 팔을 붙잡아 말렸다.


“잠깐! 이거… 그냥 편지야. 근데 지금 말고, 나중에. 내가 보라고 알려 주면 그때 열어 봐. 약속할 수 있지? 믿어도 돼?”


학인은 이해가 안 갔지만 정윤의 표정이 너무 간절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네 사람은 접객실로 자리를 옮겼다. 상황은 완전히 달랐지만 오랜만에 다 같이 모인 모습이 신명호 대리가 처음 초밥을 사주던 때와 흡사했다. 음식을 퍼주시는 아주머니가 뜨끈뜨끈한 시래깃국을 내왔다. 국의 종류를 확인한 일행이 일제히 학인을 바라보며 가벼운 웃음이 터졌다.


“장례식 와서 투정하는 건 아닌데, 내가 여기서도 시래깃국을 먹을 줄이야.”


학인이 씁쓸하게 웃으며 식사를 시작했다. 여전히 싫었지만 시래깃국 맛이 아주 조금은 구수하게 느껴졌다.


“근데 한숙자 팀장한테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 아무리 네가 먼저 strike 날렸다고 하더라도 그동안 괴롭힘 당한 걸 생각하면 정방 당위라고. 아니, 더 두들겨 때렸어도 할 말이 없지.”


재혁이 수육 한 점을 욱여넣으며 분개하자 신명호 대리가 미세하게 고개를 저어 신호를 주었다. 굳이 지금 할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땐, 나도 내가 무슨 배짱으로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어. 평생 사람 한 번 때려본 적도 없는데 말이야.”


“궁서설묘라고 하잖아요?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죠.”


신명호 대리가 정윤의 행동을 두둔했다.


“일단… 엄마 장례식 좀 정리되면, 회사에 어떤 방식으로든 이야기하려고.”


“회사가 정윤이 말을 듣고 문제를 해결해줄 거라고 보세요 대리님? 그래도 대리님 인사담당이시잖아요.”


학인이 의문을 가졌다.


“글쎄요. 일단… 안 하는 것보다는 부딪혀 봐야죠.”


회의적인 신명호 대리 역시 분명한 답을 하길 피했다.


“다들 만약에…… 무슨 일이라도 터지면 내 편이 되어 줄 거지? 조사하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증언도 해주고 그래야 되잖아.”


“그럼.”


“당연하지. 내가 인맥 싹 다 동원해서 도와줄게! Trust me.”


세 사람 모두 망설임 없이 대답했지만 정윤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학인은 이틀 째 제대로 잠을 못 잔 정윤이 너무 피곤해서라고 생각했다.


***

  

학인과 재혁 그리고 신명호 대리는 빈소를 나섰다. 세 사람은 자연스레 입구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주차장 구석으로 걸어갔다. 재혁이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뭐야? 이제 스트레스받는 병신 같은 회사도 안 다니는데 왜 아직도 펴? 그땐 회사 스트레스 때문에 피는 거라며?”


“아 형,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참냐!”


“재혁 씨 저도 하나 주실래요?”


세 사람은 한동안 연기를 뿜는 것으로 어딘지 모르게 막혀있는 내면의 답답함을 뚫어보려 했다.


“대리님, 아까부터 좀 걱정이었는데. 정윤이가 회사에 얘기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게 있을까요?”


신명호 대리는 잠시 우수에 찬 눈빛으로 담배를 깊숙이 빨았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담뱃불이 바람을 불어넣은 아궁이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솔직히...... 사측에선 뭐가 됐든 달가워하지 않을 겁니다. 최대한 조용히 끝내려고 할 거예요. 박상호 이사장이 어제 한숙자 팀장을 불렀어요. 회사랑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개인적으로 부하직원을 다이렉트로 신고한 결정이 일차적으로 마음에 안 든 거죠. 임기 시작하자마자 강 실장에 이어서 벌써 두 번이나 문제가 생기니까 화가 단단히 났더군요. 관련해서 기사도 났고요.”


“기사가 나갔으면 정윤이에게 좋은 거 아닌가요? 여론이 부하직원을 괴롭힌 상사를 좋게 볼 리가 없잖아요?”


학인의 물음에 신 대리는 입술을 삐쭉 내밀고 표정을 구겼다.


“당연히 기사는 한 팀장에게 아주 유리한 쪽으로 발행이 됐지요. <평소 악감정을 가지고 있던 부하직원의 상사 폭행> 이란 제목으로 말이죠. 신형섭 기자라고 로컬 신문사 소속 기자인데, 옛날부터 한숙자 팀장이랑 친분이 두터운 사람이에요. 한 팀장이 일부러 냈겠죠. 그런데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건… 회사 이미지에 타격이 가는 걸 걱정한 이사장이 인맥을 활용해서 오전에 기사를 내렸다는 겁니다.”


“이러다 모든 상황이 정윤이한테 불리하게 흘러갈까 봐 걱정이네요.”


“지인 중에 변호사가 있으면 좋을 텐데. 나도 근로기준법에 대해서 해박한 게 아니라서……. 일단 경우의 수를 생각해보면, 한숙자 팀장과 합의를 목표로 딜을 하려면 분명 자신의 괴롭힘 사실을 밝히지 않는 대가로 맞교환하려 들 텐데, 그러면 사실상 손해인 거래인 셈이죠. 그게 아니면 폭행은 폭행대로 처리하고 정윤이가 말한 대로 한숙자 팀장을 사측에 신고하는 수가 있는데, 아까 말한 것처럼 박상호 이사장은 김석규 이사장님과는 달라요. 자기 앞날이 가장 중요한 현실적인 인물이죠. 과연 그런 사람이 제대로 된 조사를 지시하고 한숙자 팀장에게 어떤 징계를 내릴 지도 의문이네요.”


“이래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하는 거군. If you can’t stand the heat, you must go out of the kitchen.”


재혁이 씁쓸하게 한탄했다.


“그렇죠.”


“Shit!(젠장!)”


재혁은 영어로 욕을 한 마디 내뱉었고 학인과 신명호 대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학인은 주머니 속에 든 정윤의 편지를 만지작 거리며 정윤이 어떤 방식으로 한숙자 팀장과의 일을 끝맺음 지으려는지 가늠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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