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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끼 Jun 30. 2021

결핍

 몸이 건장한 사내들은 사냥을 하러 나섰다. 몸이 약한 그는 그들이 항상 부러웠다. 사회에서 사냥을 못하는 남자는 남자로도 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굴 속에서 다른 남자들이 사냥하는 것을 보던 그는 자신이 사냥감이라도 좋으니 사냥에 참가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는 그런 열망에 사로잡혀 동굴 벽에 사냥하는 남자들을 그림으로 남긴다. 예술은 결핍으로부터 시작한다.

 지친 몸뚱이가 여기저기 거칠어진 정신을 이끌고 새벽달이 지붕에 걸린 시간, 집의 아가리로 빨려 들어왔음에도 펜을 잡고 글을 쓰게 된다는 현상은 결핍이라는 용어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내 속에는 무언가가 텅 비어있고 그 공간을 채워주는 것이 바로 글을 쓰는 행위이다. 글의 주제와 글씨체, 그리고 문체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결핍이다.

 낮부터 속이 쓰렸던 것은 속이 비었지만 채워 넣은 것이 도시의 공기뿐이었던 연유일 수도 있겠다.

 불량품 검사를 하듯 내 몸을 이리저리 흩어보았다. 무엇이 빠져 있고 무엇이 과하게 함유되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눈에 실핏줄은 과하게 상징적으로 나타났으며 잠이 부족함에도 정신은 쉬이 잠에 들려하지 않았다. 펜을 놓고 자리에 눕는 순간 바로 잠들어버릴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눕기를 거부한 채 내 속이 빈 퍼즐 조각을 찾아 헤매며 열심히 펜을 움직였다. 동굴 속에서 남들을 부러워하며 그림을 그리던 그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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