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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끼 Sep 30. 2021

가을밤

 비가 내리는 밤이었다. 현관을 열고 나오자 밤공기가 팔꿈치부터 시리다. 반팔을 입으면 몸이  익은 벼가 바람에 흔들리듯 떨리는 계절이 벌써 찾아왔다.  몸은 벼가 아니라 딱히 소리는 나지 않았다.

 집 옆에는 큰 아파트가 있다. 새벽 세시 수많은 아파트 창문 중 3개만 불이 켜져 있다. 창문을 반쯤 열어놓은 집도 있었는데, 그 위는 별로 춥지 않은 모양이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동안 멍하니 불이 켜진 창가를 올려다보았다. 전구 두 개가 창문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내 안경 위에서 반짝이는 것은 전구가 아닌 가로등이었다.

 귀뚜라미가 우는 소리, 어린 고양이들이 잠 못 이루는 소리가 멀리서, 또 가까이서 들렸다. 좀 전에 그친 비는 바닥에 머무르며 내 슬리퍼 아래서 바스락거렸다. 비에 젖은 마당에서 나는 한동안 빗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달을 구경할 수 있을까 해서 대문을 열고 나갔다. 팔꿈치에서 시작된 추위는 뒷목, 뒤통수를 타고 머리털 하나하나를 간지럽힌다. 전봇대에 매달린 줄에서 떨어진 빗물 한 방울이 내 정수리에 떨어졌다. 한참을 생각하다 다시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맞다, 달을 구경하려 했었지. 그런데 달이 떴었던가?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기에는 너무 추웠다. 나는 다시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돌아온다. 따뜻한 집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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