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밤이었다. 현관을 열고 나오자 밤공기가 팔꿈치부터 시리다. 반팔을 입으면 몸이 잘 익은 벼가 바람에 흔들리듯 떨리는 계절이 벌써 찾아왔다. 내 몸은 벼가 아니라 딱히 소리는 나지 않았다.
집 옆에는 큰 아파트가 있다. 새벽 세시 수많은 아파트 창문 중 3개만 불이 켜져 있다. 창문을 반쯤 열어놓은 집도 있었는데, 그 위는 별로 춥지 않은 모양이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동안 멍하니 불이 켜진 창가를 올려다보았다. 전구 두 개가 창문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내 안경 위에서 반짝이는 것은 전구가 아닌 가로등이었다.
귀뚜라미가 우는 소리, 어린 고양이들이 잠 못 이루는 소리가 멀리서, 또 가까이서 들렸다. 좀 전에 그친 비는 바닥에 머무르며 내 슬리퍼 아래서 바스락거렸다. 비에 젖은 마당에서 나는 한동안 빗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달을 구경할 수 있을까 해서 대문을 열고 나갔다. 팔꿈치에서 시작된 추위는 뒷목, 뒤통수를 타고 머리털 하나하나를 간지럽힌다. 전봇대에 매달린 줄에서 떨어진 빗물 한 방울이 내 정수리에 떨어졌다. 한참을 생각하다 다시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맞다, 달을 구경하려 했었지. 그런데 달이 떴었던가?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기에는 너무 추웠다. 나는 다시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돌아온다. 따뜻한 집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