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루 Jan 25. 2023

H와의 연애

나는 조금 사랑해

만나기로 했던 날, 돌연 약속을 취소해도 되겠냐고 묻는 H.  집에서 쉬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약속을 취소하기 전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보고 싶은 마음보다 혼자서 쉬고 싶은 마음이 크다는 사실이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틈만 나면, 아니 틈을 내서라도 나를 보러 오던 그는 이제 없었다. 사랑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나의 말투는 냉소적으로 바뀌었다. 내가 단단히 화가 났으니 너는 내 마음을 알아채고 달래라는 의미를 내포한 것이었다.


그럼 그렇지. H에게 전화가 왔다. 못 이기는 척 전화를 받아 최대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런데 그의 목소리가 평소 같지 않았다. 나에게 사과를 해도 마땅치 않을 시점에, 본인이 준비하던 일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 속상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 그렇구나. 어쩔 수 없지”

그를 위로하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을 이해받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평소 같으면 안절부절못하며 내 기분을 풀어 주었을 그이지만, 웬일인지 그는 아랑곳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괘씸했다. 눈물이 났다.


잠시 후, 자고 일어났다며 연락이 왔다. 나는 아직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내 마음을 풀어 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자신이 서운했던 점(자신의 상황에 위로를 해 주지 않은 점)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제야 나도 사과를 건네고 위로를 해 주었다.


전화를 마치고 그가 연락을 남겨 놓았다.

“사랑해 많이.”


나도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나는 조금 사랑해”


괜히 그렇게 자존심을 부려야만 될 것 같았다.

작가의 이전글 H와의 연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