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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집 이야기 Aug 04. 2016

그 의자에 앉는 이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나는 아침 9시부터 6시까지 콜센터 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다른 직종에 비해 자주 구인공고를 내고

매번 사람을 채용하는  콜센터는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 간다. 이 센터 자체에도 20대 초반부터 50대까지 다양한 남녀가 있다.

(물론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이다)

휴학 중이거나 잠깐 아르바이트 중인 학생도 , 혼자 살며 자신의 생계를 챙기는 사람들도 있고, 가정을 이루고 보탬이 되기 위해 나와 일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위태로운 프리랜서로 안정적인 수입을 위해 하나의 직업을 추가한 나도 있다.


몇 년 전부터 불규칙하게 찾아오던 일로 나의 수입은 들쑥날쑥 해졌고, 그로 인한 나의 불안과 근심은 날로 커져가고 있었다.

매일 작업실에서 어딘가에서 걸려올지도 모를 의뢰에 전화기만 바라보다 하루를 무겁게 마무리하기가 일수였으며, 어떤 작업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부당한 대우도 감안하며 받아들였다. 그러나 실상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날들이 더 많았다.


나에겐 정기적인 수입이 필요했다. 대학 때부터

몇 번 콜센터 알바를 했던 나는 자연스레 이곳을 찾았다. 처음에는 5시간 파트로 시작했다. 

그곳은 너무나 버거운 곳이었고 일주일을 눈물로 보내고 5개월을 겨우 참아내다 결국 그만두었다. 그리고 몇 곳을 걸쳐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이곳에 출근하기로 한 전날 꾼 꿈이 있다.


방 같기도 하고 사무실 같기도 한 작은 공간의 콜센터에 나는 상담사로 일하러 왔다.

자리에 앉는데 의자의 상태가 좋지 않다. 싸구려 사무용 의자다. 겨우 앉아 있는데 옆자리 여자가 나에게 여기 의자는 불편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갑자기 나는 누군가를 따라 어느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그 건물 주인인 듯한 할아버지와 같이 우리 셋은 차를 마신다. 할아버지는 내게 차를 마시고 짹짹 소리를 내면 티백 안에서 새나온다고 한다. 티백에는 정말 작고 동그란 흰 알이 몇 개 들어있다. 나는 짹짹 소리를 내고 할아버지는 재미난 듯 웃는다.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고 나는 건물 위로 혼자 올라가려 한다. 너무 어두워서 눈을 감은 거나 마찬가지지만 어쩐지 나는 개의치 않는다. 끝까지 올라왔을 때 앞에는 두 개의 문이 있다.

나는 이 문을 너무나 열어 보고 싶다. 왼쪽 문을 먼저 여는데  조심스레 노크를 한다. 

안은 보일러실이다. 멈춘 지 꽤 된 것 같은 작은 보일러가 있다. 문을 닫고 오른쪽 문도 노크를 하고 연다.  안에는 주인 할아버지가 모아둔 작은 토기 인형이 몇 개 보이는데 깊고 어두워서 더 이상은 잘 보이지 않는다.


다시 나는 콜센터 책상 앞에 서있다. 자리에는 의자가 없다. 나는 뒤쪽에서 아무도 쓰지 않는 나무 의자를 가져와 앉는다. 그 의자는 사무용 의자가 아닌 내가 작업실에서 쓰는 나무 의자였다.


내가 이 일을 시작한 이유는 생계를 유지할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꿈속에서 나는 처음에 불편한 사무용 의자에 앉는다. 정말 불편했다기보다 내가 보기에, 내가 느끼기에 불편한 의자였을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 의자에 앉아서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하고 사무용 의자니 작업실 의자보다 더 적합하다. 그런데 내 안의 또다른 나인 옆자리 여자는 말한다. 이 의자는 불편하다고!


그곳에 앉아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다.

 

이전과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이제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누구나 이렇게 살아간다는 체념으로 모든 걸 놓아버릴것 같은 무력감을 느끼게 다.


그런데 내게 무엇을 할지 알려주려고 나를 이끈 이가 있다. 차분히 차를 마시며 내게 농담처럼 짹짹 소리를 내라고 내 안의 지혜로운 할아버지는 말한다. 그것은 내 소리를 내라는 것이 었다. 짹짹이라고 소리를 낼 수 있을 때 나는 한잔의  차로 우러날 수 있을 것이다. 작게라도 소리 낼 수 없을 만큼 나는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내 안의 에너지는 모두 소멸해 있었으며 나는 너무나 무기력했다. 나에게는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날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어두운 계단의 끝에는 두 개의 문이 있다. 지금 이곳에는 아무도 없고 이 건물 자체에 누군가 살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문은 보통의 방문이나 현관문이라기보다는 잘 다듬어진 나무로 만든 작고 긴 문이다.


나는 노크를 하고 문을 연다. 왼쪽 문안에는 작은 보일러가 있다. 이 보일러는 그동안 가동을 멈춘 나의 심장 이다. 오래간만에 문을 여는 나는 스스로에게 노크로 신호를 주고 있었다. 지금 내가 내 마음의 한 부분을 연다고 말이다.


이 곳은 오랫동안 방치되거나 내가 돌보지 않은 나의 일 이다.  이 건물도 나의 일부이며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보일러도 나의 일부이다. 이제 보일러는 이 건물을 위해 움직일 것이다. 뜨겁고 힘차게!


그리고 꿈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 내가 여기 있는 이유와 내가 앉아 있는 곳에 대한 이유를 의자로 설명해주면서 말이다. 꿈은 나에게 말하고 있다. 내가 직접 원하는 의자를 가지고 와서 이곳에 앉아야만 내가 그 자리에 앉는 이유가 설명이 된다고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스스로 앉아 먹고살기 위한 돈을 벌어야 한다. 그건 다른 누구의 선택도 아닌 내가 선택한 것이다. 


지금 어딘가에 앉아있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 이유가 어떤 이유이건 그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그 순간 본인의 몫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각자 자신의 일상 속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의 무게인지, 스스로에 대한 책임인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시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열심히 일하는 그 모습은 충분히 아름답다.


사람들은 그렇게 다른 의미의 의자에 앉아 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그 자리에 앉아있는 이유를 생각해본다면 그 자리에서 일어나고 나서 가야 할 곳이 사람을 만들기도 한다.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나는 그 자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면 내가 앉은자리가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그 자리에 앉아 받는 돈은 나의 도구이지 목적이 아닌 것이다. 꿈이 모두에게 같은 의미일 수는 없다. 그렇지만 꿈속에서 내가 앉은 의자가 있다면 지금 한 번쯤 생각해 본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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