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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Jul 30. 2019

까미노 생각 없이 걷기_21

바람 안고 걷기

세상을 살며 얼마나 많은 것들을 안고 가야 할까?
며칠 전 구름도 없고 바람도 없고 햇빛만 화살처럼 대지로 내려 꽂히는 날엔 이런 날씨만 피하면 얼마든지 걸을 수 있겠다 싶었다.



비가 한바탕 뿌리고 지나간 다음 아침 기온이 7-8도에서 맴돈다. 한 여름 날씨라고는 믿기 어려운 이 온도에 도저히 오버트라우저를 입지 않고 새벽길을 나설 수 없다.
아침나절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좋은 소식이나 그렇지 않은 소식이나 걷는데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장거리 보행에는 역시 평정심이 우선이다. 아침에 오르비고 마을을 막 벗어나는 지점에 노란색 순례길 화살표가 두 방향을 동시에 가리키고 있다. 좀 짧은 길 그리고 더 길지만 마을을 거쳐 가는 길. 주저하지 않고 긴 길을 택했다. 어제 이 강물에 그리고 플라이 낚시꾼에 흔들리지 않고 계속 걸었다면 어땠을까? 과연 긴 길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서늘하다 못해 추위를 느낄 정도라 모자 대신 버프를 뒤집어쓰고 걸었다. 오후에 접어드니 바람이 더 강해져 모자를 쓸 수도 없다. 아스토르가 시내에 들어서 식수대에서 물 마시고 배낭을 고쳐 매고 있는데 우리말이 들린다. 이 마을에서 머무르세요? 아뇨, 전 조금 더 갈 겁니다. 머무르느냐 묻는 말이 순간 라면 먹고 갈래요 하는 줄 알았다!


가우디 선생이 서른다섯에 의뢰받아 설계한 아스토르가 주교관은 실용이 예술을 존중하여 기능은 정교하고 자태는 아름답다. 그가 창조한 주교관 입구 포치의 아치 형상은 왜 재생산되지 않는가? 혹여 내가 집을 짓게 된다면 (또는 어떤 건물을 짓는 일에 관여하게 된다면) 저 어여쁜 아치를 꼭 닮은 출입문을 복제하리라!



맞바람을 안고 오후 내내 걸었다. 아침에 받은 메일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이 바람은 내 대퇴이두근과 비복근에 지속적인 피로를 가져온다. 그리고 이 시간이 지나면 그 근육들은 통증을 동반할 것이지만 나의 뒤태를 매력적으로 변신시킬 것이다.
나는 이 맞바람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오늘의 사족 1. 남은 순례 구간 어느 알베르게에서 라면을 순례자 메뉴에 포함해 준다는 소식을 오늘 접하였다. 복음(Good News)과 다름없다.
2. 무심, 이 말을 오래도록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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