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위 Aug 01. 2019

까미노 생각 없이 걷기_22

보행 중 금주 원칙을 다시 위배하다.

산티아고 순례를 프랑스 남쪽 마을 생장피드포르에서 했다면 첫날부터 산행을 경험해야 한다. 첫날 예약한 숙소는 피레네 산맥 중턱의 산장이었다. 그렇게 첫날 산을 넘고 내리 십구일을 평지와 약간의 구릉을 걷다 오늘 이십 일째 되는 날 다시 산을 넘는다.



산길 가운데 카미노 표지석에서 배낭을 고쳐매다가 이틀 전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중년의 신사 분과 인사를 하게 되었다. 짊어지고 온 견과류와 말린 과일을 나눠 먹다 잠시 동행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고한 첫째 형님의 고등학교 선배였다. 동남쪽 억양은 두어 마디에 금방 드러나고 경북에서도 대구 근처의 독특한 악센트는 동네 사람 말투이니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2003년이니 16년 전이다. 마치 어제 일처럼 형님 이야기를 주섬주섬하시는데 걷다 옛 기억이 폭포처럼 소환된다.



군대에서 다친 무릎을 작년에서야 수술을 하고 일 년을 기다리고 별러서 카미노 노정에 나섰다 하신다. 걷다 병 날일 없어야겠다 생각하여 다음 마을로 짐을 보내 놓고 가볍게 나섰다 하신다. 배낭을 보내셨다는 마을엔 금방 다달았다. 차나 한잔 하고 헤어지자고 바에 들어섰는데 맥주 디스펜서를 보시더니 이왕 이렇게 된 거 맥주 한 잔 하시잔다. 사양할 수 없지 않은가!
큰 거 두 잔을 마시고 다시 길을 나섰다. 길 위에서 만나는 인연은 한 없이 가볍기도 하고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기억이 소환되기도 한다.  
2019. 7. 30.



오늘의 사족 1. 카미노 구간에는 유독 먼저 간 사람을 기리는 표식이 많이 보인다. 오늘 만난 문장 앞에서 잠시 서 있었다.
“The boat is safer anchored at the port but that’s not the aim of boats.”
안전한 항구에 정박한 배, 그리고 항해를 위해서 떠나는 배. 나의 배는 지금 어디에?

작가의 이전글 까미노 생각 없이 걷기_2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